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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후보 관련, 윤석열의 근거없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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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국회에 KBS 사장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하면서 밝힌 요청사유를 보고 나는 놀랐다. 근거가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인사청문을 요청하면서 제시한 이 부분, “(후보자가) 조직 내에서 신망을 받고 있다.”는 대목이다. 설득커뮤니케이션에서 핵심은 주장과 그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이다.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설득을 할 수 있을까. 설득할 의사가 없다는 것일까.

 KBS이사회가 신임사장 최종후보자로 지난달 23일 결정한 박장범 앵커에 대해 법에 따라 임명제청을 받은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청했다. 요청사유 서두에 박 후보자의 KBS 9시뉴스 앵커 경력을 넣었다. 서두는 무난했다. 그 다음으로 “(후보자가) 공영방송 KBS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회적 게이트키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지키는 공영방송 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했다. 과연 그러했을까. 그러했다면 뒤에 언급하는 KBS기자협회는 물론 각 기수 취재· 촬영기자들이 그렇게 반발했을까. 이 부분은 동의는 하지 않지만, ‘사회적 게이트키핑 역할’이나 ‘민주주의 기본가치 준수’나 ‘공영방송 기능 이행’ 등은 수긍하지는 않지만, 동의 여부나 수긍 여부를 떠나서 그런 논진도 주례사처럼 익히 들어온 터라 그냥 시시비비는 차치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의 주장, “(후보자가) 탁월한 친화력과 협상능력, 적극적인 자세로 조직 내에서 신망을 받고 있다.”는 요청사유는 뜻밖이었다. 아무리 겉치레라도 도저히 써서는 안되는 문구를 집어넣는 바람에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완전 허구였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전혀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라서도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조직내 동료 선후배들의 신망을 직간접으로 알아보고, 수집된 근거를 바탕으로 개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실이 아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 대해 말을 할 때에는 논리적으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근거가 없는데, 오히려 반대이며 일치되는 근거자료는 전혀 없는데, 그럼에도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기가 막히는 허위 그 자체였다. 아예 주장하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백지요청서였다면 더 솔직하지 않았을까. 이 요청사유서를 실제로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공영방송’, ‘정보’, ‘기능과 역할’, 그리고 언론용어가 된 ‘게이트키핑(gatekeeping: 수문장(守門將))’을 구사한 것을 보면 언론과 연관있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나, 대통령 이름으로 보낸 것이기에 책임을 분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박 후보자는 지난 2월 대통령과 특별대담에서 김 여사가 받은 ‘명품백’을 외국회사의 조그만 백 곧, ‘파우치’라는 이름으로 교체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파우치 앵커’라는 웃음거리가 된 기자 출신 앵커로 이번에 박민 사장 후임 최종후보로 선임되어 절차를 밟고 있다.

KBS 신년 대담, 윤석열 대통령과 박장범 앵커(2024.2.4) / 사진 출처. 대통령실
KBS 신년 대담, 윤석열 대통령과 박장범 앵커(2024.2.4) / 사진 출처. 대통령실
신년 대담 촬영을 위해 대통령실에 방문한 박장범 앵커와 윤석열 대통령(2024.2.4) / 사진 출처. 대통령실
신년 대담 촬영을 위해 대통령실에 방문한 박장범 앵커와 윤석열 대통령(2024.2.4) / 사진 출처. 대통령실

 실제로 KBS 조직내에서는 그를 반기고 있을까. 신망을 받고 있을까. KBS 기자 500여명은 박 후보자 임명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려 거부했다. 최고참급인 18기부터 지난해 입사한 50기까지, 현직에 있는 취재·촬영기자 모든 기수가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KBS이사회가 그를 사장후보로 선임한 다음날인 24일, KBS기자협회는 바로 “박장범 후보자를 사장 후보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박 앵커가 사장으로 취임한다면 그 이름 앞에는 영원히 ‘파우치’라는 단어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어떤 뉴스를 만들어도,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해도 용산과의 관계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공영방송 KBS와 그 구성원들이 왜 이런 오욕을 감당해야 하는가. 왜 부끄러움은 현장 기자들의 몫인가.”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2018년이후 입사한 KBS의 45기 취재기자 촬영기자 43명은 “‘파우치 앵커’ 박장범 후보자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며 “이제 더는 지켜보지만은 않겠다.”고 반발했다. 이들 45기는 “우리는 ‘KBS 기자’가 아니라 ‘용산방송 기자’라는 비판을 들으며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박 후보자가 신임 사장 최종 후보자로 낙점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언론 기사에는 ‘조그마한 파우치’라는 초유의 신조어가 꼬리표처럼 붙었다.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인 25일에도 15개 기수 기자들이 낸 성명서 10여 건이 KBS 사내 게시판에 나란히 붙었다. 팀장급인 37· 38기 취재· 촬영기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명품백 수수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취한 조치는 무엇인지? 대가성은 없는지? 등 정작 국민이 궁금해할 질문은 박장범 앵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며 “왜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모두가 안다.”고 했다. 39기 기자들도 박 앵커가 지난해 총선 출마설이 불거진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에 대해 “가는 곳마다 함께 사진 찍자는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특이한 장관, 역대 어느 법무장관과도 다른 장관”으로 칭한 사례를 들어 “공영방송 앵커 자리에 앉아서 그는 대통령과 여당의 시선에서 뉴스를 전했다. 그리고 여권 성향 이사들로부터 사장 후보자로 임명제청됐다.”고 지적했다.

46· 47· 48기 기자들도 “후보자가 앵커로서 ‘조공 방송’을 자처하는 사이 국민의 신뢰와 함께 기자로서의 자존감도 무너졌다.”며 “KBS 뉴스 ‘추락의 얼굴’이었던 그가 ‘KBS의 얼굴’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러나시라. 후배로서, 직원으로서, 공영방송인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우리는 박 후보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2024. 10. 25일자 등 참조) 

 KBS 조직내에서 기사를 다루는 선후배 취재촬영기자 등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박 후보자에 대해 배척하면서 “제발 그만두시라.”고 충고하는 분위기와 대통령의 요청사유에 적힌 주장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조직 내 반발이 극심한 후보자를 “조직 내에서 신망을 받고 있다.”는 사유를 내세우며 KBS 사장으로 앉히려 하고 있으니 그 의도성을 가름하기 쉽지 않다. 걱정스럽다. 박 후보자가 자발적으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진정 조직 내에서 신망을 받는 사람이 사장 후보자로 선임돼, 구성원들의 박수와 축복을 받으며 사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영철 칼럼 38]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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