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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과 기억의 정치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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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동상이 한 집단에 의해 특정 장소에 건립되는 것은 동상이 지역성을 획득하는 일임을 뜻한다. 더욱이 건립되는 동상의 대상 인물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란을 유발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대구와 박정희 동상

최근 대구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동대구역 광장과 남구 대명동 미군기지 반환 부지 내에 건립 중인 대구도서관 앞 박정희 공원 등 두 곳에 14억 5천만 원을 들여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역사적 인물들의 조형물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몇몇 지자체에서 이와 관련된 작업들을 모색하는 중에 대구시가 일거에 처리한 동상 건립 건은 대구 지역의 특수성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국민의힘’ 단체장일지라도 다른 지자체에서는 언감생심 추진하기 쉽지 않은 동상 건립을 대구시장과 대구시 의회는 전격적으로 의결·처리함으로써 대구의 독보적인 지역성을 대내외적으로 현시하였다. 

호남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이 곳곳에 있는데 대구·경북에는 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가라는 홍준표 시장의 발언에서 시작된 동상 건립 건은 시의회의 전적인 동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결의되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공과(功過)를 논해야 하고 과(過)만 보는 것은 옳지 않은데다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는 홍준표 시장의 논리는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사안을 지극히 단순하고 협애화하는 그의 정치적 논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는 그의 발언은 매우 엄중한 내용이어서 별도의 자리에서 좀더 상세히 다루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터에 있는 박정희 동상 / 사진. 평화뉴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터에 있는 박정희 동상 / 사진. 평화뉴스

동상 건립과 고통의 감수성 

홍준표 시장의 발상과 대구시의회의 전격적인 처리는 최근 한국사회의 시민들이 보여준 고통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공감을 완전히 거스르는 반시대적인 행태라는 점에서 매우 엄중한 사안이다. 박정희의 통치 기간 중에 벌어진 치명적인 인권 침해 사례는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부족하지만, 그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인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1975년 4월 8일에 인혁당 관련자들의 항고를 기각함으로써 8명의 사건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확정하고 그로부터 불과 18시간 뒤인 4월 9일 새벽 4시에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재심청구권마저 박탈한 ‘사법살인’이자 ‘기획살인’이었던 인혁당 사건의 8인의 희생자 모두는 영남 출신이었다. 더욱이 유족 중 상당수가 여전히 대구·경북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홍준표 시장과 대구의 정치인들은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어찌 또다시 그 유족들을 참혹한 고통 속에 몰아넣을 일을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가. 저들에게는 수십 년 동안 참담한 지옥 속에 있었을 유족들의 고통과 아픔은 전혀 감안할 대상이 아닌가. 참고로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으며,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재건위 사건재심 선고공판에서 인혁당 사형수 8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바 있다.        

지난 해 경북 칠곡에는 그간 세울 곳을 찾지 못한 2기의 동상, 이승만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 기존에 있었던 백선엽의 동상 옆에 건립된 바 있다. 트루먼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승만, 백선엽 그리고 박정희까지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들의 동상이나 조형물이 대구와 경북에 모두 건립되게 생겼다.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지면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2023.7.27 제막) / 사진 출처. 다부동전적기념관 홈페이지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2023.7.27 제막) / 사진 출처. 다부동전적기념관 홈페이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과 남산의 이승만 동상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신사의 총본산, 조선신궁을 경성 남산의 회현 자락(한양공원)에 세우기로 결정하고 1920년에 착공하여 5년 후인 1925년 말에 완성한다. 광복 직후 조선 전국 각지에 세워졌던 신사가 파괴되었고 남산에 건립되었던 조선신궁과 경성신사는 광복 직후인 8월 16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신령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승신식(昇神式)을 비롯하여 10월 중순 무렵까지 여러 절차를 거쳐 처리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주지하는 것처럼, 조선신궁과 경성신사가 있던 자리에 이승만의 동상이 건립된다. 김구, 안중근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우국지사의 동상 건립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논의와 작업들이 무성했지만 모두 무산되고, 1956년 8월 15일 오후4시 이승만 대통령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 건립 제막식이 대통령 본인을 비롯하여 3부 요인과 각국의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남산에서 거행되었다. 물론, 그러나 놀랍게도 살아있는 대통령의 동상이었다. 기단 17.6미터, 본체 7미터로 모두 합하면 높이 25미터가 되는 거대한 조형물이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 건립된 것이었다. 연인원 7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10개월 동안 무려 2억 600만환이 든 거대한 공사였다. 2만 600만환은 당시 2만 명의 1개월 치 식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동상은 4년 뒤인 1960년 4월혁명 때 파괴되었다.

동상의 정치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현재 위치인 세종로 광화문에 건립함으로써 동상의 정치를 시작하였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첫 번째 대상 인물은 이순신 장군, 두 번째는 세종대왕이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동상 건립비용은 박정희가, 세종대왕의 경우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헌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통해 구국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투영하고자 하였지만, 재임 중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지는 않았다.

「당신들의 천국」이 던지는 동상의 위험성

1976년 발표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당대 우리의 정치 현실과 개발 독재의 실상을 알레고리 형식으로 형상화한 소설로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색 과정의 방향과 절차 등의 문제들을 심도 있게 그려낸다. 소록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 인물을 모델로 창작된 소설은 나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병원장으로 부임한 조백헌 대령이 환자들을 위해 시작한 간척사업의 과정과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직 군의관 출신으로 병원장으로 부임한 조백헌 대령은 나환자들을 위해 간척사업을 진행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환자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그 갈등은 일제강점기 나환자들의 낙원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였던 주정수 원장의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기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백헌 원장의 오랜 동안의 헌신과 진심을 확인한 나환자들이 그가 추진한 간척사업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소설의 핵심 인물인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원장의 우상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조원장에게 섬을 떠날 것을 권한다. 소설은 병원장인 조백헌 대령이 나환자들을 위해 진행하는 사업과 함께 나환자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일제강점기하 주정수 원장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낙원의 내용과 더불어 권력의 우상화에 관한 내용을 묻는다. 이전 병원장인 주정수의 수하들이 주원장의 업적을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면서 섬에서 벌어진 내용을 소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상이 세워지고 나서 원생들에게는 또 한 가지 새로운 부담이 늘어났다. 매월 20일을 새 ‘보은감사일’로 정하고, 이날이 되면 병사지대의 모든 원생들은 공원광장에 도열해 서서 동상 참배를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20일만 되면 원생들은 남녀노소나 병세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공원 광장으로 모여와서 살아 있는 주정수와 그의 동상 앞에 경례를 바치고 훈시를 들어야 했다.” 

도시의 미래에 대한 기획과 동상, 그리고 광장 

누군가를 기념하고 어떤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은 지나간 시간을 현재에 고착화시키는 작업이다. 동상은 그것이 놓인 장소를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고 과거를 특정한 방향으로 기억하게 한다. 주정수 원장의 동상이 세워진 이후에 섬에서 벌어진 일들은 동상 설립이 단순히 누군가의 업적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들을 교육하고 순치하는 작업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당신들의 천국」의 비판적 지식인 이상욱과장이 조원장에게 섬을 떠날 것을 권한 것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과거 섬의 큰 상처가 되었던 동상을 세우는 일, 결국 섬사람들의 주체성을 지우고 권력자에 대한 우상화의 과정으로 나아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천국」이 대통령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대구시가 추진한 동상 건립 건과 관련하여 이 소설은 많은 사유지점들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준표 시장은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고 강조하였다. 박정희 동상이 동대구역 광장에 건립되는 것은 동상의 상징성이 대구의 지역성을 획득하는 일이며,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기리는 일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광장(廣場)에 동상을 세우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대 대통령인 박정희가 건설하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목도하면서 유신시대의 이청준이 제기했던 질문 ‘우리들은 어떤 공동체를 세울 것인가?’하는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관련 내용은 다음 칼럼에 이어서 게재할 예정이다.

[김문주 칼럼 9]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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