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의 79주년 광복절
올해 광복절은 이상한 날이었다. KBS는 광복절이 되자마자 기미가요가 나오는 ‘나비부인’을 방송하고, 일기예보 배경 화면에 좌우 뒤집힌 태극기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 생애를 다룬 영화 <기적의 시작>을 방영했다.
광복회와 야당은 정부가 주관하는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고 따로 기념식을 진행했다. 독립기념관은 87년 개관 이래 처음 광복절 경축 행사를 취소했고, 보다 못한 천안시가 급하게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밖에서는 독립기념관장 사퇴 촉구 집회가 열렸다. 언론에서는 이런 광복절 모습을 ‘갈라진 광복절’이라고 보도했지만 MBC 조현용 앵커는 ‘뜻이 갈라져서 분열된 것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정서는 그대로 이기 때문에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한 것은 일본 언급이 없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였다. 비판이 일자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은 "(과거사 문제 사과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과연 진정한가"라고 말해 논란은 더 커졌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원인은 뉴라이트의 귀환에 있다.
역사·역사교육 관련 기관 임원들의 뉴라이트화
사라진 줄 알았던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 들어 역사 관련 기관장과 임원 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역사운동 단체와 독립운동기념단체들은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폭발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역사·역사교육 관련 8개 기관과 위원회에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최소 25개 자리를 맡고 있다고 한다. ‘3대 역사기관’으로 분류되는 한국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독립기념관, 독립운동훈격 국민공감위원회, 국기기록관리위원회 등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다.(<경향신문> 2024년 8월 13일자. <뉴라이트, 윤 정부 '전면에'···역사 기관 25개 요직 장악> 참고)
문제시되는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국가교육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은 뉴라이트 인사이고,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뉴라이트로 지목한 인사이다.
이 중에서 이름도 생소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는 보훈부가 독립운동 연구자들로 구성된 기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가 있는데도 역사학자 외에 정치·사회·법조인 등이 참여하는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위원회 위원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인사거나 극우적 역사 인식을 보인 인물들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재심사하게 된 것이다.
일본 과거사와 친일행적은 지우고 독립운동은 삭제하기
역사·역사교육기관 임원들을 뉴라이트 인사들이 차지한 것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일본 과거사 지우기와 친일역사관은 논란이 되어 왔다. 일본의 책임은 없는 것으로 하고, 친일행적은 없애고 독립운동가의 업적은 지웠다.
많은 사람들의 귀를 의심하게 한 2023년 3.1절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 못해 국권 상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라 우리 탓이라는 것이다. 같은 해 8.15 경축사에서는 일본 과거사 언급 없이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했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일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법원이 인정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면제하고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대신 변제하는 ‘제3자 변제 배상’ 해법을 발표했으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친일 행위를 한 백선엽 동상을 세우고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기록을 삭제했다. 올해 7월에는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했으며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추진은 국민적 공분과 역풍을 맞아 겨우 중단된 상태이다.
윤석열 정권 속 뉴라이트 인물들
윤석열 정부의 이런 행보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원래 친일인지 찾아보았다. 윤 대통령의 부친은 일본에서 유학했고 뉴라이트 연합의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 기념 사업회 상임이사를 했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윤봉길 의사라고 한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대권 도전 선언을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했다. 처음부터 친일적 역사관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윤석열 정권에 뉴라이트 출신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과 교과서 포럼에서 활동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은 2008년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으며 윤석열 정부의 안보와 대북정책, 외교까지 실세로 불리우고 있다. 한동훈 대표가 임명한 국민의 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냈으며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내 생각은 뉴라이트로 바뀌었다”며 8월 15일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했다. 정권초기에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임헌조 시민소통비서관, 김성회 다문화비서관 등이 뉴라이트 인사였다.
뉴라이트 윤석열 정부여서는 안되는 이유
필자는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삼각 동맹을 중심으로 한 안보 논리와 이를 위한 한일관계 정상화 추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권에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배 합법화’의 전제가 되는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인사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니 건국절 제정을 우려하는 광복회의 우려가 현실로 느껴진다. ‘1948년 건국절’이 공식화되면 그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배는 당연한 것이 된다.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 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에 동의하기 어렵다.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을 기리고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과 일제시대의 만행에 대해 사죄받고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는 것, 모두 우리나라 정부와 관료가 해야 할 일이다. 자주권이 없는 국가가 어떻게 외교에서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 일본 내에서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일본이 한반도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위험한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할 일은 우리의 실익을 면밀히 계산하여 일본과의 관계 정립을 하는 것이다. 뉴라이트 인사의 임용과 뉴라이트 역사관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외교적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은주 칼럼 56]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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