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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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국가폭력,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밀양, 경찰의 기획 체포·수사와 과잉대응

지난 10월 1일부터 강행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짐승 같은 시간’이라는 말로, 지금 밀양 주민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고통과 공포를 전했다.

신고리 3, 4호기에 사용된 위조부품(제어 케이블) 시험 결과 전량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준공시기가 당초 예정보다 훨씬 늦어지게 되면서 송전탑 공사의 유일한 명분이 사라졌다. 주민들이 그동안 간절히 요구해왔던 ‘TV 토론 등을 통한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 셈인데도, 정부와 한전은 송전탑 공사 강행 의지를 재천명했다. 이것만 해도 지금의 상황은 ‘불통과 야만’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는 민주적 토론과 타협의 가능성이 철저히 봉쇄된 일방적인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을 날마다 지켜보아야 하는 주민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송전탑 건설 반대"...밀양과 청도 할머니들(2013.10.7.밀양 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건설 반대"...밀양과 청도 할머니들(2013.10.7.밀양 금곡헬기장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런데 이러한 주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현재 밀양 현장을 새까맣게 포위하고 있는 3천여 명의 경찰들이 날마다 자행하고 있는 ‘기획 체포·수사’와 ‘과잉 대응’이다.

며칠 전 언론에는 “여경의 얼굴을 할퀸 혐의(공무집행방해)”로 50세의 여성 주민 A씨가 경찰에 입건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A씨는 지난 16일 오전 10시께 송전탑 공사 현장인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광주경찰청 소속 여경 두 사람의 얼굴을 할퀴었고, 이 ‘폭행’으로 인해 두 여경은 얼굴에 10~15센티미터 가량의 상처가 생겨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A씨의 진술은 전혀 다르다. 10월 16일 오전 9시경,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A씨가 금곡 4공구 헬기장에서 주민들이 모여 있는 바드리 입구로 식사를 챙겨 배달해 주러 갔는데, 5분만에 의경들에게 둘러싸여 버리고 말았다. 10여명의 주민들을 여경들이 에워싼 뒤 끌어내는 상황에서 A씨도 영문도 모른 채 사지가 들려 끌려 나왔다. A씨는 “나는 암수술 환자다(수술받은 지 2년 반 됨), 아프다, 짓누르지 말라”며 소리치며 발버둥쳤지만 자갈밭으로 끌려나왔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자신의 신발을 벗기라고 명령하여 신발 한짝을 잃어버린 상태로 자갈밭에서 신발을 찾아달라고 항의하였다.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도 않았고 체포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22일 A씨에게 경찰이 “당신 남편도 나와 같은 밀양 출신이며, 같은 고교출신”이라며 3~4차례 전화를 해서 연고를 강조하며 “불리하게 하지 않으니 사실만 말하고 조사받으면 된다”고 해서 22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조사에 응하게 되었다.

<국제신문> 2013년 10월 24일자 12면(지역)
<국제신문> 2013년 10월 24일자 12면(지역)

당시 자신은, 신발을 던지지 않았고, 자갈을 집어 던진 적은 있으나 경찰을 향하지 않았고, 돌이 여경에 맞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일 체포되지도 않았는데, 뉴스에는 “얼굴을 할퀴었다,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와 깜짝 놀랐으며, 밀양경찰서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하여 항의하였더니 “기자에게 확인하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꺼둔 상태라는 것이다.

A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 21일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 농성장 앞에서 열린 “경찰의 기획 체포 의혹 및 과잉 대응 관련 기자회견”에서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불상사를 방지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사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이 사실은 “불상사를 유발하고, 주민들을 자극하여 한 사람 두 사람 범법자로 만드는 존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지난 20여 일 동안 경찰이 나서서 주민들의 심리를 먼저 자극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한 정황들이 뚜렷하게 폭로되었다. 이는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경찰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꾸미고, 이것을 보수언론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넙죽넙죽 받아 보도하는 식의 비열한 심리전과 여론전을 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청도 삼평리, 경찰 감시에 미행까지

이러한 상황은 밀양을 거쳐 이어지는 경북 청도 345KV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월 13일 오후, 삼평리 주민들은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대구세계에너지총회’ 행사장인 대구 엑스코 앞에서 “한전과 정부는 폭력을 멈추고,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대구세계에너지총회’의 슬로건은 “내일의 에너지를 위한 오늘의 행동”이었다. 삼평리 주민들은 성명서를 통해 “당신들이 말하는 ‘내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내일’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오늘의 행동’은 도대체 어떤 ‘행동’인가. 그것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밀양과 우리 청도 삼평리 주민들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을 멈추고,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라. 그리고 우리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렇게 하지 않은 채 이 회의를 계속한다는 것은 너무도 뻔뻔스럽고 수치스런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적이고 지속불가능한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정책 규탄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과 '2013 대구세계에너지총회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2013.10.13.대구 엑스코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폭력적이고 지속불가능한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정책 규탄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과 '2013 대구세계에너지총회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2013.10.13.대구 엑스코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날 기자회견은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국내외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취재를 하기도 했다. 차량이나 사람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고, 에너지총회 행사에 방해가 될 만한 상황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시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의사표현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한 명실상부한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 이후 삼평리 주민들은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인권침해에 시달려야 했다. 정보과 형사들이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주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주민대표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일정을 캐묻는 등 심리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16일에는 볼일이 있어 대구로 외출하는 주민들을 차량으로 미행하기까지 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에너지총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한다).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13일 주민들의 기자회견에 앞서, 에너지총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일인 퍼포먼스를 하려던 행위예술가(마임이스트)를 경호팀과 경찰이 완력으로 제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한 예술가의 정신을 심각하게 모욕했다. 그 예술가는 혼자서 행사장 앞을 조용히 걸으면서 자신의 뜻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계획이었다. 통행에 방해가 되는 것도, 행사 진행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가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경호팀과 경찰의 제지에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를 법적 근거나 정당한 절차도 없이 경찰이 연행하기도 했다. 욕설을 한 경호팀 담당자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그 경호원이 인권활동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여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당사자가 곧바로 ‘고소 취하’함으로써 활동가는 풀려나기는 했지만, 공권력이 먼저 시민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또 자의적으로 체포하는 상황은 현재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폭력의 수법과 완전히 동일하다.

더욱 어처구니 없게도, 당시 인권활동가의 불법적인 체포에 항의했던 다른 활동가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그리고 그날 삼평리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회를 맡았던 나는 집시법 위반 혐의로, 각각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고 있는 상태다. 동료 시민이 불법적으로 체포되는 것에 항의하는 행동이나, 평화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모두 죄가 되는 ‘짐승 같은 시간’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이러한 국가폭력을 우리는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인가.






[변홍철 칼럼 25]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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