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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공화국
[변홍철 칼럼] 모두가 조금씩 '시인'인 나라를 꿈꾸며
2015년 01월 29일 (목) 13:20:12 평화뉴스 pnnews@pn.or.kr

직업이 뭐냐고?

‘공식 문단’에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내 직업이 ‘시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공식 문서가 있으니, 우습게도 그것은 이제 도대체 몇 건인지 스스로 헤아리기에도 지쳐 버린 검찰의 ‘공소장’들이다.

그 사연의 시작은 이렇다. 2013년 10월 3일, 밀양 금곡헬기장 앞에서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연대 시민들과 함께 한전의 송전탑 공사에 항의하던 중, 우발적이긴 했지만 나는 잠시 공사 자재 야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5분 정도 야적장에서 구호 몇 번 외치다 경찰에 끌려나왔는데 ‘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며칠간 유치장 신세를 지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때 경찰과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직업을 묻길래 불쑥 ‘시인’이라고 답했다. 그 후로 1심 재판을 받고 또 항소심을 거쳐, 지금은 대법원에까지 상고한 사건.

처음 내 직업을 가당찮게도 ‘시인’이라고 답했을 때에는, 솔직히 좀 ‘개기는’ 심정이었다. 이따금 시 비슷한 것을 긁적이기도 하고, 오래 묵혀둔 졸작 몇 십 편을 주물러 우격다짐으로 시집이랍시고 묶어낸 적도 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누군가 내 직업을 물었을 때 감히 ‘시인’이라고 답한 기억은 없다. 모든 ‘공식 시인’들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에게 시인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지, 내가 스스로 칭할 수 있는 이름은(더구나 직업의 이름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당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내 정체성을 우물쭈물 설명하는 것은 몹시 자존심 상하기도 해서, 그렇게 ‘질러 버렸다’고 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그후로도 이런저런 사건들에 연루되고, 급기야 청도 삼평리 투쟁 과정에서는 과분하게도 공안검찰로부터 ‘주동자급’으로 대접받으면서,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을 안방 드나들듯이 출입하는 와중에, 직업을 물으면 한사코 ‘시인’이라고 답하다 보니, 적어도 ‘법조계’에서는 확실하게 그렇게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누군가 ‘꽃’이라고 불러주면 ‘꽃’이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제라도 정말 시인다운 시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책임감 비슷한 것이 생기기도 했으니, 이것이 별로 달가울 것 없는 공권력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아무튼 스스로 직업을 ‘시인’이라고 칭하는 ‘허세’와는 별개로, 나는 송전탑 공사에 맞서 싸우는 청도 삼평리 할매들 곁에서, 특히 작년 7월 21일, 마지막 하나 남은 송전탑을 세운답시고 무슨 군사 작전하듯이 수백 명의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조그만 마을을 우악스럽게 짓밟고 들어온 그날 새벽 이후로 몇 달 동안, ‘시’ 속에서 살아왔고, ‘시’를 경험했다고 자부한다. 

   
▲ 송전탑 공사장 앞에서 "공사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삼평리 할머니들(2014.7.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숙영지 사건

가령 이런 것이다.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 수백 명 병력이 머물 ‘숙영지(宿營地)’를 만든답시고, 멀쩡한 논을 경찰이 ‘임대’했다. 작년 7월 말, 어느 일요일, 포클레인이 논바닥으로 밀고 들어가 첫 삽을 뜨기 시작했을 때, 할매들이 터뜨리던 그 통곡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쟁쟁하다. 그 통곡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설움과 분노, 고통이 응축되었다 터져 나오는 것이었고, 그때까지 저 숙영지 공사를 허용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우리들끼리의 갑론을박을 일거에 무위로 만들어 버렸다.

경찰은 앞서, 만약 숙영지 공사를 방해하면, 그때까지 우리가 머물던 그 옆의 천막 농성장조차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강제 철거하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농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숙영지 공사를 묵인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얄팍한 ‘계산’에 가로막혀, 꽤 여러 시간 긴박한 논쟁을 이어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포클레인이 움직이자마자 한켠에서 터져나온 할매들의 통곡 소리와 함께, 모두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어떤 껍데기가 한방에 쪼개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물리력에 포위되어 한 걸음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숨가쁜 싸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든 쫓겨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부질없는 계산에 빠져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할매들의 통곡 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형언할 수 없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참으로 거짓말처럼, 현장의 ‘기운’은 일거에 역전되어 버렸다. “우리는 송전탑도, 숙영지도 허락하지 않겠다!” 당시 경찰서장까지 현장에 나타나 지휘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껍데기가 쪼개져 버리는’ 경험을 공유한 주민과 연대자들(그래봤자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의 서슬에, 숙영지 공사는 그것으로 중단되어 버렸다.

그 뒤로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내가 이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때 그 순간 터져나온 할매들의 통곡이 가진 의미를 되돌아보고 싶어서이다. 당시 경찰이 숙영지로 삼으려던 논은 정작 그 할매들 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논을, 그것도 경찰들로서는 ‘합법적으로’ 임대한 땅이었다. 또 숙영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백 명 경찰병력이 마을에 며칠째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그리고 그 뒤로도 경찰은 아무런 지장 없이 교대해가며 한전의 공사 경비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에), 숙영지 공사 자체가 특별히 할매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을 땅에 엎드려 일하고 살아온 할매들로서는, 소유관계나 이해득실을 떠나, 함부로 손 대서는 안 되는 것을 짓밟는, 용납할 수 없는 불경(不敬)이었다. 아니, 그것은 땅과 이미 한 몸이 되어 살아온 할매들의 마른 살점을 찢는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그 일요일 저녁, 해거름의 삼평리에서, 할매들 통곡 소리를 함께 들었던 수십 명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과 분노, 설움이 전율로 육박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속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의연히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청도 삼평리 송전탑 공사 저지와 승리를 위한 투쟁문화제(2014.7.22.청도 삼평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 작은 마을에서, 불과 십여 명의, 그것도 주로 70~80대의 할매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싸워올 수 있었느냐고.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삼평리로 불러들이고, 또 끊임없는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느냐고. 나는 할매들과 주민들의 삶과 투쟁을 애써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게다가 그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송전탑은 완공되었고, 전선이 걸렸고, 주민들과 연대자들 앞에는 지금 한 가마니의 공소장이 쌓여 있다. (물론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그럼에도 의연하게 ‘시즌2’를 이어가고 있지만.) 

다만 나는, 논과 밭이, 은사시나무 숲이, 노인봉이라 불리는 작은 산봉우리와 우람한 당산나무, 그리고 그 아래 작은 마을이, 이미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보여준 힘과 통찰력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 힘은 때로는 통곡과 절규로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또 때로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해학과 웃음과 노래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 힘은 수시로 할매들을 레미콘 트럭 앞에 드러눕게 만들기도 했지만, 또 한편 손주뻘의 낯선 청년들과 밤늦게까지 손잡고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도록 이끌기도 했다. 그런 통곡과 절규, 웃음과 노래가 일으키는 파문(波文), 그리고 불가사의한 감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무 한 그루가 상처를 입으면 자기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서울의 방학동에서 오래묵은 은행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단식투쟁도 한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위대한 시인들의 마음이 대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위대한’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일반적으로 좋은 시에서 우리가 느끼는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종철 <시의 마음과 생명공동체> 중에서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삼평리 투쟁’의 비밀은 바로 그 동네 할매들이 보여준 ‘위대한 시인들의 마음’에 있다고 믿는다. 아니, ‘좋은 시’ 앞에서 감동을 느끼듯, 사심 없이 그 할매들의 마음에 감응한 우리 모두의 힘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삼평리 법률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프로젝트에 전국에서 십시일반 보태어지는 우정과 연대의 힘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그것을 실감하고 있다.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시인의 마음’이라면, 적어도 삼평리를 기억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다들 조금씩은 이미 시인임에 틀림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모든 위대한 투쟁 속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이 사회 전체의 부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의 준동이 아무리 거세다 한들, 우리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조금씩 시인인 나라, 그것의 다른 이름이 바로 ‘공화국(共和國)’ 아닐까? 아직 우리가 이르지 못한, 그러나 우리 속에서 계속 자라나 언젠가 껍데기를 깨고 일어설.

저 이슬방울,
정씨 아저씨 과수원
사과열매에 매달린 작은 물방울에도
건너편 산 위, 송전탑이 비친다.

이것을 눈여겨보지 않고서
그 서글픈 반영(反影)을 읽지 않고서
더불어 살 수는 없다.

송전선로 가선작업, 와이어 추락!
삼평리 은사시나무 희디흰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 들린다.

성곡댁 아지매는 오늘도
소리소리지르다 쇠붙이의 침묵에 떠밀려
도랑에 처박히고 병원에 실려갔다.

나락은 익어 가는데

추수를 기다리는 저 논의 메타포를
이해하지 않은 채로는
불가능하다.

공화국은 시다.   

-- 졸시 <詩와 공화국> 부분


   





[변홍철 칼럼 35]
변홍철 /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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