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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공간' 대구 안심습지와 팔현습지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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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지윤 생명평화아시아 인턴

지난 1월 14일, 2024년 하반기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금호강 생태 조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대구 금호강 안심습지와 팔현습지를 방문했다.

안심습지와 팔현습지는 대구 달성습지와 함께 ‘대구 3대 습지’로 불리는 곳이다. 그 중 안심습지와 팔현습지는 대구권 금호강을 뿌리로 하고 있는 중요한 생태 공간이다.

자연의 공간 안심습지를 방문하다

우선 안심습지를 먼저 방문했다. 안심습지는 대구 동구 안심동에 위치한 습지이다. 안심동의 명칭은 다소 재밌는 일화를 담고 있다. 후삼국시대에 왕건이 공산동 아래에서 견훤과 전투를 벌이다 패배하여 견훤의 군대에 쫓겨 도망을 치던 중, 지금의 안심동까지 이르게 되어 비로소 적군을 따돌려 ‘안심(安心)’했다 하여 안심동이 되었다. 안심습지 역시 이 지역의 이름에서 따 온 이름이다.

안심습지에서 촬영한 큰고니떼와 물닭들 (2025.1.14) / 사진.이지윤

한겨울에 방문한 안심습지는 물가가 꽁꽁 얼어 있었다. 큰고니와 물닭들은 얼지 않은 곳을 찾아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큰고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종이지만 이곳 안심습지에서는 많은 수의 큰고니들을 볼 수 있다. 멸종위기인 큰고니를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안심습지가 고니의 겨울 서식처이기 때문이다. 큰고니의 대표적인 한국의 월동지로는 주남저수지, 우포늪, 낙동강하구, 진도해안, 천수만, 시화호, 금강하구, 경포호, 강진만 등지이며 그 중 낙동강하구는 매년 2,000개체 이상이 월동하는 최대 월동지이다. 출처: 천연기념물 조류의 세계 - 백운기

큰고니가 겨울을 보내기 위해 안심습지를 방문하게 된 건 90년대 중반부터이다. 

야생생물 2급이라 함은 이미 개체수가 멸종위기 단계에 진입한 1급과는 달리 그 개체 수가 ‘멸종위기인 상태’가 아닌 인위적, 자연적 위협 요인에 의해 멸종위기 상태에 진입할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위협 요인을 제거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멸종 위기 상태에 진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큰고니는 관심을 요하는 개체이며, 개인을 넘어 지자체와 국가가 주목해야 할 생명이다.

내가 방문한 안심습지는 한 개의 포장된 길을 빼곤 생물과 자연의 자취를 그대로 살려둔 공간이었다. 큰고니와 그 외의 생물들을 배려하여 인위적 개입을 하지 않는 듯했다.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려는 모습이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나에게는 습지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았다. 마치 공간 자체가 습지 생태계를 지키자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안심습지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은 저절로 습지의 중요성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 

다양한 생물군이 거주하는 팔현습지

대구 동구 호텔 인터불고 앞 팔현생태공원(2025.1.14) / 사진.이지윤
대구 동구 호텔 인터불고 앞 팔현생태공원(2025.1.14) / 사진.이지윤

안심습지를 방문한 후 점심을 먹고 팔현습지를 방문하였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어딘가 낯익은 풍경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동대구역에서 포항역을 가는 열차가 늘 이 곳 옆을 지나가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항상 ‘인터불고 앞’ 정도로만 인식했을 뿐 습지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팔현습지는 안심습지에 비해 사람을 위한 공간이 많이 조성돼 있었다. 습지 옆으로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습지 뒤로는 큰 호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한 켠에는 골프장도 위치해 있었다. 습지를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팔현습지 속 수리부엉이 / 사진.이지윤
팔현습지 속 수리부엉이(2025.1.14) / 사진.이지윤

팔현습지는 안심습지보다 규모가 컸기에 더 다양한 생물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식애, 좀목형군락, 청둥오리, 딱따구리, 왜가리, 백로 등등. 그중 내 시선을 이끈 건 단연 수리부엉이였다. 수리부엉이. 일상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동물이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드문 개체이고, 큰고니와 같이 야생동물 2급에 지정돼 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큰고니와 달리 수리부엉이는 혼자서 생활 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찾아보기 더 힘든 동물이다. 내가 본 건 한 마리였지만 팔현습지에는 희귀한 수리부엉이가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팔현습지에는 수리부엉이를 포함해 담비, 삵, 얼룩새코미꾸리 등 18종의 법정보호종들이 살고 있다. 큰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생물군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보호받아야 할 생물들도 다수 있다. 그만큼 팔현습지는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크며 보존에 힘써야 할 공간이다.

자연을 도구적 관점으로 보는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대구시가 추진하는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전단지(2025.1.14) / 사진.이지윤
대구시가 추진하는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전단지(2025.1.14) / 사진.이지윤

그런 팔현습지에 어쩌면 인간은 불청객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의 입장에서만 본 아주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현재 팔현습지는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개발사업 때문에 아주 시끌벅적하다.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사업의 핵심은 금호강 일대를 발전시키고 습지(팔현습지, 안심습지)와 금호강을 연결하여 생태 탐방로를 조성하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로 살아 숨쉬어야 할 공간에 인간을 위한 길을 깔아두는 것은 온전히 도구적 관점으로 자연을 보는 셈이다. 자연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가치가 있는 습지에 길을 까는 행위는 자연을 인간의 심미적 기쁨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치부시키는 행위나 다름 없다. 금호강에게 활기를 넣기 위한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은 오로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행해지는 ‘인간 르네상스’ 사업이다. 과연 금호강 르네상스에 찬성할 금호강 서식 개체군들은 얼마나 될까. 소리에 예민한 수리부엉이, 하천의 수달, 맑은 물에 사는 얼룩새코미꾸리는 금호강 르네상스에 찬성할까? 자신의 거처를 위협하는 금호강 르네상스, 인간 르네상스 사업에 환호할 생물은 한 개체도 없을 것이다. 

습지를 방문하고...

1월 14일의 방문은 내가 처음 습지라는 장소를 알게 해 주었다. 이전까지는 대구에 습지가 있는 줄도 몰랐으며, 팔현습지, 또 안심습지라는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내게 자연으로서의 가치를 풍부히 안고 있는 안심습지와 다양한 생물군을 포괄하고 있는 팔현습지는 단숨에 내가 자연을 바라보도록 해 주었다. 장소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생태계의 가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습지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수많은 생물들의 거주지이자 삶의 터전이다. 하나의 풍경으로 습지를 바라보기 보다는 한 발자국 떨어져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켜줘야 한다. 단순히 풍경으로서, 배경으로서 자연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떨어져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아직도 자연을 도구적 관점으로, 풍경으로 보고 있다면 한 번 대구의 습지를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생물군계를 묵묵히 아우르는 습지의 경외감,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이지윤 / 생명평화아시아 인턴 (19기 씨티-경희대 NGO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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