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고 힘들어 더 이상 살 수가 없겠어요.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살려달라 애원해도 들어주는 곳 하나 없고
저는 어느 나라에 사는 건지...
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도와주지 않는 이 나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유족이 공개한 유서 일부 내용 중>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서다.
대구 남구 대명동에 살았던 A씨(여성.30대)는 지난 5월 1일 세상을 등지면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A씨는 지난 2019년 5월 전세보증금 8,400만원을 내고 대명동 한 다가구주택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2021년 4월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났음에도 임대인은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다가구주택 후순위 세입자인데다 소액임차인에도 해당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조차 돌려받을 수 없었다.
국가를 찾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A씨는 지난 4월 12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 요건 중 경매개시요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 등'으로 분류됐다.
앞서 4월 9일 법원으로부터 거주하고 있던 집에 대한 경매개시 결정이 나온 사실을 확인한 뒤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A씨가 숨진 뒤인 지난 1일 오후가 돼서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했다.
해당 다세대주택 피해 가구는 모두 13가구, 피해 금액은 13억900만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말 임대인을 사기죄 혐의로 남부경찰서에 고소했고, 경찰은 지난 5월 1일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전세 사기로 A씨를 포함해 사망자가 8명이 발생하는 동안, 정부와 여당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세사기로 숨진 피해자는 대구에서 첫 사례다. 전국에서는 벌써 8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세사기 전국 피해자들은 국회를 찾아 피해자를 추모하며 국가를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8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 사기 방치는 사회적 타살"이라며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해당 법안은 오는 5월 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先) 구제 후(後) 회수(후 구상) 도입을 포함해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중 임차보증금 한도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 ▲신탁사기 주택인도소송 유예·정지 등을 내용으로 한다.
대책위는 "비참함에 절망하며 남긴 그녀의 유서는 잘못된 제도와 전세 사기를 방치하는 국가의 사회적 타살"이라며 "국가가 전세 사기 피해 구제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동안 고인은 대구지역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 활동까지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재산을 잃고 전세대출금 상환과 퇴거 압박에 시달리고,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에 정부와 여야는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 달라"며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용 가능한 모든 공적 자원과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대표는 "정부와 여당에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보살펴달라 외쳐 왔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결국 벼랑 끝까지 밀어넣었다"면서 "고인이 노력했던 모든 것을 이어받아 또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기자회견 뒤 A씨의 간이 분향소를 차렸다. 이들은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며 A씨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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