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 막바지 여야가 '고준위 핵폐기물 특별법'에 합의하는 기류를 보이자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북 경주지역 주민들을 비롯해 전국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은 "특별법 폐기"를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원전에 핵폐기물까지 떠안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는 21대 국회에서 고준위특별법 처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여야 의원들이 3건의 법안을 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이인선, 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각자 특별법을 발의했다.
법안 내용은 원전 운영 중에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중간 저장·영구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관리시설 부지 조사, 업무 수행을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설치 ▲관리시설 부지적합성 절차·평가 기준·지역주민 의견 수렴 방법 등 수립 ▲관리시설 유치지역 지원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해당 특별법들은 상임위원회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3년째 계류 중이다. 때문에 21대 국회는 22대 국회가 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상태다.
◆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윤재옥(대구 달서구을)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원내대표직 퇴임 기자회견에서 특별법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했는데, 야당 의원 일부 반대로 지난 5월 2일 본회의에 (특별법안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 등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국민의힘은 고준위 방폐장 수용 용량을 원전의 '운영 기간 발생량'으로, 민주당은 '원전 설계수명 기간 발생량'으로 하자며 대립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국회에서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시행계획까지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안덕근)는 지난 4월 15일 '2024년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행계획'을 승인·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술 개발, 실증에 필요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건설, 고준위 분야 전문인력 확보에 필요한 인재관리플랫폼 구축,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지능형 스마트 시스템 도입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핵폐기장으로 만들지 않게 하고, 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을 위해 고준위방폐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며 "방폐장을 따로 만들지 않는 한 사용후핵연료는 수조와 건식 저장시설에만 저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권의 요구대로 민주당이 합의에 동의한다면 5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다룬다.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22대 국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 원전 인근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경주 주민들은 불안하다. 원전과 함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는 경주에 특별법 통과로 원전 부지 내에 저장시설까지 설치할 수 있게 된다면, 핵발전소의 안전 위험과 함께 살아온 지역에 핵폐기장까지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16일 오후 경주시청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주민의 안전과 생명은 거래 대상이 아니"라며 "고준위특별법 폐기"를 촉구했다.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핵발전소지역대책협의회'는 지난 5월 9일부터 '고준위특별법 폐기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5월 16일 현재 전국에서 4,035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오는 19일까지 서명을 받은 뒤, 20일 국회 산자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들은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 방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서, 기존 핵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는 방안은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21대 국회 막바지에 졸속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준위특별법은 핵심 이해당사자인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도 법안 내용이 공유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공론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대로 법안이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국민을 배제한 밀실야합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제출된 특별법은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진흥 정책에 날개를 달아줄 뿐"이라며 "제22대 국회에서 지역 주민과 국민 목소리를 더 청취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특별법을 만들게 되면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핵발전소 부지 내에 만들 수 있는데, 지역 주민들이 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면서 "급하게 특별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지자체 입장은 시민사회와 엇갈린다.
경주시 원자력정책과 관계자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상 영구처분시설은 핵발전소 부지 내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영구처분시설이 경주로 들어올 우려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경주의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은 운영 중"이라며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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