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처리' 데드라인이 이틀 지났지만 대구 5개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터로 복귀한 전공의는 0명이다.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사직서 처리 마감 시한은 지난 15일, 전공의들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지역 병원들도 고민이다. 복귀 마감 시한까지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처리하지 않거나, 처리 여부를 유보하는 등 병원들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5개월째 이어진 의료대란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 피로감도 올라가고 있다. 응급의료센터에서도 "이대로는 유지가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구지역 5개 상급종합병원(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에 17일 확인한 결과, 영남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사직서 처리를 유보하기로 했고, 칠곡경북대병원 등 3곳은 사직서를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경북대병원은 아직 논의 중이다.
각 병원은 정부 요청에 따라 7월 15일까지 미복귀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처리한 뒤, 오늘까지 전공의 결원 규모를 확정해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들은 전공의들에게 복귀나 사직 여부를 물어보려 해도 연락이 닿지 않기 때문에 사직서 처리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하거나 사직 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때문에 영남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진행했던 올해 전공의 모집 인원 중 미달 인원에 대해서만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 15일 정부의 사직 처리 마감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 5개 상급종합병원에 복귀한 전공의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사직서를 내고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경북대병원 193명 중 179명 ▲영남대병원 161명 중 130명 ▲계명대 동산병원 182명 중 175명 ▲대구가톨릭대병원 97명 중 94명 ▲칠곡경북대병원 87명 중 81명이다.
영남대병원 혁신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사직서 수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보 결정을 내렸다"면서 "전공의 모집 인원 정원에 맞춰 모집할 수 없기 때문에, 지난해 모집을 못해 정원이 생긴 진료과에 대해서만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명대 동산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사직 여부에 대한 병원 측의 물음에 응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직을 희망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에서 미응답 인원에 대한 지침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전달받은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오는 22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며,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끝내지 못한 병원에 대해서는 내년도 전공의 정원 감축도 검토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공의 복귀 여부 확인 결과, 사직 의사를 표명해 사직 처리된 전공의들도 일부 존재하나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으며, 무응답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를 완료하고 결원 규모를 확정해 오는 22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모집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 사태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의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다.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 본원 응급실 앞은 17일 오전 "의료진 인력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평상시의 응급의료센터 진료 기능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안내문에는 "중증응급환자가 아닌 경우 응급실 진료가 제한됨을 미리 알린다"면서 "신속한 진료를 위해 인근 병원 응급실 또는 외래 진료를 권고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병원 곳곳에는 "의사들의 진료 거부는 정당하지 않다", "명분없는 집단휴진 즉각 철회하라"는 내용의 대자보와 현수막도 붙어 있었다.
경북대병원은 지난 5월부터 진료 공백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마이너스 통장 규모를 10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2배 이상 늘리고, 병상 수 조정과 병동 통합, 무급휴가 도입 검토 등을 내용으로 한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은 "피로감이 늘고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만 "적응이 돼서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북대병원 한 의사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적응이 된 것 같다"며 "피로는 진료 거부 사태 초기보다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호사 A씨는 "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는 들어와 인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병동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보내기도 하는데, 갑자기 업무가 바뀌니 힘들 것"이라며 "피로감이 배로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호조무사 B씨는 "환자가 들어와야 병원 수입도 느는데, 계속 줄고 있어 걱정"이라며 "인력 부족 문제도 항상 있지만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조중래 공공운수노조 경북대병원분회장은 "의료진들도 본인이 하지 않던 일을 하고, 다른 부서로 파견도 가니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병원도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빨리 정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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