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에서 오늘 하루 동안 400명 넘는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과대학 학생 수 정원을 오는 2025년부터 전국 의과대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천명 확대한다는 방침에 반발해 의사들이 줄줄이 가운을 벗고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광주, 대전, 제주 등 전국 곳곳의 병원에서 전공의들의 반발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대구경북지역 상급종합병원 5곳(경북대학교병원,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영남대학교병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 19일 확인한 결과, 병원 5곳 모두에서 전공의 418명이 이날 오전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다.
■ 경북대병원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전공의 193명 중 179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경북대병원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현황을 파악한 뒤 의료공백을 막기 위한 대책이 나올 것 같다"고 답변했다.
영남대병원은 이날 오전부터 일부 전공의와 인턴들이 임의 양식으로 사직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있다. 오후 2시 기준 전공의 6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체 전공의 161명의 40.3%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영남대병원 측은 사직서가 접수된 뒤 병원장에게 보고하고, 사직서를 다시 돌려준 뒤 양식에 맞춰 다시 작성해 각 진료과 과장에게 승인받아야 한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또 필수 진료과에 근무하는 전공의들에게 복귀해달라고 연락했다. 당직을 서는 10여개 진료과에는 당직자를 새로 구성하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도 전공의들이 오전부터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전 11시 기준 전공의 182명 중 21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병원 측도 의료 차질에 대비해 비상대책상황실을 운영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오후부터 사직서가 끊임없이 제출돼 실시간으로 현황 파악이 어렵다"면서 "아직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나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의 경우에도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공의 83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가대병원 홍보과 관계자는 "오전부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러 오가는 상황"이라며 "계속 집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칠곡경북대병원은 오늘 오전부터 전공의 87명 중 70명(80.5%)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칠곡경북대병원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내일(20일)부터 의료공백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이 필수·지역 의료인력 문제 해결의 대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에서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준비 중인 의대정원 확대 정책은 무너져가는 필수·지역 의료를 육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며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피분야에 대한 적정보상과 법적 부담 완화 등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환자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엄정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는 이날 오전 전국 221개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내렸다. 또 의료공백 방지를 위해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을 발표했다.
'진료유지명령'은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에게 현재 하고 있는 진료를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의료법' 제59조 1항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나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은 ▲중증도에 따른 환자 배정·이송지침 적용 ▲지방의료원 등 공공보건의료기관 중심 진료시간 확대 ▲국군병원 응급실 개방, 응급의료체계 유지 ▲보건소 연장 진료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등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도 병원에서는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와 의료 이용을 제때 하기 어려운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오랜 기간 모집 공고를 내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대구시(시장 홍준표)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비해 비상진료대책을 마련하고, 의료공백으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지난 6일부터 ▲시, 9개 구.군 보건소에 비상진료대책 상황실 운영 ▲공공·응급의료기관 중심 사전 점검 등을 실시했다. 집단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8개 구.군 보건소 진료시간 연장 ▲공공의료기관 평일 진료시간 연장, 전문의 당직체계 운영 ▲경증·중등증 환자 2차병원, 증상별 전문병원 분산 등의 대책을 시행한다.
홍준표 시장은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비해 비상진료대책도 철저히 수립하는 동시에, 대구시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지역 의료단체들의 의견을 면밀히 수렴하는 등 의료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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