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탄핵심판의 과정이 생중계되며 쏟아지는 뉴스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중에서 온 국민이 지켜본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의견 표명조차 하지 않던 국가인권위(이하 인권위원회)가 내란을 부정하고, 오히려 윤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권고했다는 소식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인권위원회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권력을 대변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계엄 선포한 대통령 방어권 보장하라는 국가인권위, 내란혐의자들도 긴급구제 신청
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에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상정하여 헌법재판소와 법원, 수사기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최종 결정문에는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로 봐야 하고 윤 대통령 등 계엄 관련 피고인들에 대해선 불구속 재판 원칙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탄핵 반대 측의 주장을 담은 인권위의 권고는 ‘존재가치 상실’, ‘인권의 보루가 권력자 비호기관으로 전락’, ‘인권위가 사망한 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권위원회가 내란 수괴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을 옹호하자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도 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을 냈다.
인권위원회 경로이탈에서 존재가치 상실의 과정
인권위원회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이 아니다. 2000년 12월 인권활동가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역사적인 노숙 단식농성을 했다. 이후 국회와 민주당사를 오가며 입법 투쟁과 다양한 노력을 하여 2001년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통과되었고, 11월25일 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인권위원회가 탄핵 심판에 ‘인권’을 들먹이며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권고하게 된 것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권위는 부침을 겪었지만 이번 인권위원회의 경로이탈은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의 임명에서 시작되었다. 2023년 12월 8일 전국 3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경로이탈 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약칭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그동안 인권위 김용원 상임위원과 이충상 상임위원은 공식 회의 석상에서 소수자들에 대한 비하, 차별,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인권위 조사관 모욕, 인권위원회의 합의제 원칙을 부정하는 소위원회의 운영과 의사결정방식을 주장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인권위원회가 변한 것은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진정건수에서 바로 드러났다. 2024년 8월 26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4년 상반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진정사건 처리 건수와 진정접수 건수가 23년 대비 각각 21.4%와 9.3% 감소했다. 권고와 징계권고, 합의종결, 조사 중 해결을 포함한 권리구제 건수는 508건으로 전년 856건에 비해 348건(40.6%)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감소세를 보인 것은 ‘침해 사건’의 권고 및 징계권고 건수로, 307건에서 85건으로 72%의 감소세를 보였다. 세 배 넘게 줄어든 것이다.
인귄위원회가 경로이탈에서 존재가치 상실까지 나아간 책임은 안창호 위원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임명된 안창호 위원장은 성소수자와 차별 문제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는 2020년 세미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했으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부모-자식 간 성적 행위, 소아성애, 짐승과의 성행위 등이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중앙일보 칼럼에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초·중·고교에서는 동성애자 채용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고 썼다. 오죽하면 칼럼을 게재하던 중앙일보도 인권위 위원장으로 부적격이라고 했겠는가.
그동안 침묵하던 안창호 위원장은 이번 윤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 안건이 통과되던 전원위원회에서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런 불신은 헌재 결정이 갈등과 혼란의 종식이 아니라 이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고 새로운 인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에 동의하는 의견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이번 윤대통령 방어권 권고에는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이충상, 이한별, 한석훈, 강정혜 위원이 찬성하였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권위원회의 부침은 있어 왔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권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가령 중요한 사안에 의견표명이 지연된다거나, 어떤 현안에 대해 조사·권고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받았을지언정, 최소한 왜 인권위가 본분을 망각하는 의결을 하느냐는 문제제기는 없었다. 완전히 자기 사명을 버리고 권력을 대변하진 않았다는 거다.”라고 했다.
논의되는 인권위원회 바로 세울 해법
이번 사태를 통해 인권위원의 성향에 따라 인권위원회의 본질적 정체성까지 왔다갔다 할 수 있음이 실증되자 인권위원 선출 과정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현재 인권위원회는 장관급인 위원장을 포함하여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이중 차관급인 상임위원은 3명이며, 비상임위원은 7명이다. 인권위원은 국회 선출이 4명, 대통령 지명 4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국회나 대통령실은 후보자를 공개모집하고,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 면접 등 절차를 거쳐 인권위원을 뽑고 대법원은 인권시민사회단체들에게 후보 추천을 의뢰하고 비공개 절차를 거쳐 지명자를 결정해왔다.
이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3~5배수의 인원이 추천되고, 추천단위들은 전문성과 적합성 보다는 보은인사로 인권위원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 기관의 인선 과정은 불투명하며 대통령·대법원장·국회 몫으로 인권위원 후보자를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 자체가 인권기구 고유의 독립성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권위원 선출과정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인권단체에서는 추천기관들이 서로 추천하는 위원 후보에 대해 상호비토권을 도입하여 부적격 인사가 인권위원이 되는 것을 막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인권위원회도 2018년 인권위원 인선의 문제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혁신위원회를 꾸려 권고 내용을 받았다. 혁신위는 △인권위의 책임 있고 독립적인 활동에 대한 인권위원 및 직원의 의지 표명 △인권위원 추천‧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독립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 강화 △대법원장의 인권위원 지명 권한축소 또는 폐지 △인권위원의 다양성‧다원성을 강화 △인권위의 조직과 예산에 관련한 독립성 보장을 권고 했다.
국회에서도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인권위원회법 개정안에는 인권위원을 탄핵 대상에 포함하고 무자격 인권위원 임명 방지를 위한 인선 절차 개선, 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및 상임위원회 회의 공개 의무화, 장애 당사자인 장애 인권 전문가 인권위원에 포함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인권위원회의 운영 문제를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점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야당은 이번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를 보고 인권위원회가 사망했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최후의 보루인 인권위원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왜냐하면 인권은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유예할 수도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은 수많은 희생 위에 조금씩 나아져 왔다. 지금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인권위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은주 칼럼 62]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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