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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광야에서 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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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석준 /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

 

윤석열 퇴진광장을 지키자,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거리에 살벌한 구호의 현수막이 나부낀다. 저게 말이 되나싶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내 고향 대구의 현실에 통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로 인해 대구의 정체성이 요즘 말하는 ‘과대표집’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세간의 시선보다, 우리의 생각보다 대구의 변화는 윤석열의 계엄령만큼 놀라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필 12월 3일 ‘대구민중과함께’ 집행위원장 인준을 받았다. 안건 중 제일 골치 아프고 막연했던 사안은 다름 아닌 “윤석열 퇴진광장을 지키자”. 대구지역 91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는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되기 전부터 정기적인 집회를 개최하고 ‘윤석열 퇴진’의 목소리를 냈기에 “열자”가 아닌 “지키자”를 굳이 강조하는 이유다. 모든 사업과 행사의 그렇듯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몇 명이나 모일까?’ 아닌가. 당위와 집행, 이상과 현실은 늘 부딪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느닷없는 윤석열의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으니 그것도 쓸데없는 고민이 돼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2024.12.3) / KBS뉴스 화면 캡쳐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2024.12.3) / KBS뉴스 화면 캡쳐

12월 3일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쉽게 수긍할 수 없는 현실로 와닿지 않는 영상과 음성을 접하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눈을 의심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가짜뉴스, 딥페이크가 아닐까 또 의심을 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현실이었다. 황당과 걱정, 조소와 두려움 그 어디엔가 있을 묘한 감정 속에 그날 밤을 꼴딱 지새웠다. 그 후로 우리는 종종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불면의 밤을 보냈다. 요새관저에 틀어박혀 선동하는 윤석열이 언제 체포될까? 설마 구속영장이 기각되지는 않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말이다.

12월 4일 첫 번째 시국대회, 생각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시민들의 분노와 의지를 모을 준비는 많이 부족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늘 했던 노래를 부르고, 늘 했던 구호를 외쳤다. 광장에 모이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인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으니까. 그렇게 매일매일 집회를 하며 준비하는 실무자를 자조 섞인 ‘하루살이’라 명명했다. 정해진 것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단체방을 헤매며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소통하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어느 날인가 함께할 노래가 마땅치 않아 그 옛날 ‘광야에서’를 소환해 함께 불렀는데 그 순간이 참 감동이었다.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광장에 다시 선 시민들도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다시 부른 눈물의 ‘광야에서’는 다소 진부해 보였지만 그것보다 지금 시국에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빼앗긴 민주주의를 우리가 되찾자 다짐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있다.(2024.1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있다.(2024.1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헌법파괴, 내란범죄자 윤석열은 퇴진하라" 현수막을 들고 대구2.28기념공원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2024.1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헌법파괴, 내란범죄자 윤석열은 퇴진하라" 현수막을 들고 대구2.28기념공원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2024.1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신인류 응원봉의 등장

12월 7일 운명의 첫 번째 탄핵의 날, 이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전에는 어디서 한번쯤 본 낯익은 제법 보였는데 낯선 훨씬 많았다. 본격적인 응원봉의 등장과 함께 ‘다만세’로 대표되는 K팝 민중가요가 등장했다. 신인류의 출연인가? 그들은 즐겁게, 때로는 진지하게 응원봉을 들고 단번에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신기방기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고 준비하는 그들은 준비태세는 완벽했고 철저했다. 탄핵안 부결소식에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투쟁의지는 타올랐다. 대회장에서 행진코스 대로로 향하는 행렬은 끝날 줄을 몰랐으며 수많은 시민이 국민의힘 대구시당에 모여들었다. 자유발언을 줄서서 신청했고, 병원에 있다 환자복을 입고 주사바늘을 꼽은 채 참가한 시민도 있었다. 가결과 부결에 따라 플랜A, B를 이미 궁리했지만 시민의 분노를 담기엔 어떤 것도 부족했다. 뭐 어쩌겠나, 될 때까지 모이자 다짐과 약속을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솔직한 고민은 앞으로 집회주기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지금처럼 매일 집회를 하는 게 가능할까 정도가 현실로 다가왔다. 

대구 동성로 광장에서 열린 제4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아이들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2024.12.7)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동성로 광장에서 열린 제4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아이들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2024.12.7)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체력은 바닥나고 긴장과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는 날들 속에 맞이한 12월 14일 두 번째 탄핵의 날. 생각도 못할 정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기세도 하늘을 찌를 듯 했다. 4만에서 5만 정도라고 하는데 흔히 말하는 '해방구'가 열렸다. 운집하는 인파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켜봤다. 박근혜 탄핵촛불 때도, 4.19혁명 시절에도 대구에서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적은 없었다고 하니 당연히 모든 게 부족하고 어수선했다. 준비한 것, 해야 할 것을 다 못한 미련가득 시국대회였지만 탄핵이 가결되고 결과가 좋았으니 다 좋았다.

탄핵의 순간 같이 부를 노래는 현장에서 급하게 결정했는데 세대를 초월한 모두가 알만한 노래 ‘붉은 노을’을 떼창했다.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엔 너뿐이야.” 그야말로 그 자리를 지킨 우리를 위한 가사였다. 역사의 순간, 민주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영광이었다. 그 이후 매일 하던 대구시민 시국대회를 일주일에 한번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니 숨통이 틔었다. 지난 집회를 평가하고 보완할 시간도, 신청 받고 섭외할 시간도 벌었으니 안도했다. 긴장감과 초조함을 드러내자 마음의 여유가 약간 생겼고 그제야 소통과 참여를 보장하고 만들어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나를 포함에 많은 시민들에게 매주 토요일 동성로 시국대회는 빠질 수 없는 주말약속으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2024.12.14) / 사진 출처. YTN 방송 캡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2024.12.14) / 사진 출처. YTN 방송 캡처
깃발과 피켓,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안 가결을 기뻐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습.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깃발과 피켓,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안 가결을 기뻐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습.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14)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시 만난 우리, 다시 만날 세계

돌아보면 2002년 미군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미선 집회 때부터 촛불집회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집회까지 촛불은 시민참여의 상징, 평화집회의 표현이었다. 그 시절 반짝이 옷을 입고 트로트 노래를 개사해 노래를 부르고 신나는 댄스곡에  춤까지 춰가며 시민과 함께하려 애썼다. 함께 한다는 것보다는 '맞춰가고 싶었다'가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광장의 학습효과일까. 아이가 어른이 되고, 학생이 직장인 되고, 광장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을 지나 변화하고 발전했다. 소속단체가 없어도 참여에 주저함과 어색함이 없다. 시민들의 선호와 요구에 따라 K팝을 틀자 소위 운동권들이 노래가사를 따라 배우며 응원봉을 주섬주섬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들이 어색함 없이 ‘투쟁’을 외치고 빨간띠를 깃발과 팔목에 묶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바위처럼’를 떼창한다. 이제 곧 그 옛날 율동과 대동놀이를 함께할 날도 머지않았다. 문화와 소비가 레트로가 유행하며 다시 돌아가듯 광장은 과거와 현재 조화 속에 하나 되고 있다.

윤석열이 구속됐다. 아마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접한 단어는 ‘헌정초유’가 아닐까. 역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도모했고, 역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이 체포됐고 구속됐다. 역사상 최초 대통령 부부 내외가 감방에 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기정사실 같다. 그리고 언제나 그 역사상 최초의 길은 민초, 민중, 시민이 만들었다. 그 옛날 결의대회가 촛불집회, 시국대회로 바뀌는 승리와 감동의 역사동안 말이다.

우리는 기로에 있다.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는 이제 곧 이 명칭을 바꿔야 할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윤석열을 넘어서고 법적처벌까지 하고 나면 이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분명한 것은 필요에 따라 과거를 소환할 수는 있어도 혐오와 차별, 폭력이 난무했던 반동의 역사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형형색색 응원봉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와 동지, 투쟁을 서슴없이 말하는 세계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광야에서를 부르며 다시 만난 우리가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다시 만날 세계는 이제 시작이다. 

[기고] 박석준 /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

대구시국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박석준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회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2025.1.4. 대구 동성로)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구시국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박석준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회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2025.1.4. 대구 동성로)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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