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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쓸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캠퍼스 청소부'
강의실 화장실 화단, 8시간 일해도 7시간 임금만..."점심ㆍ휴식시간도 못쉬어"
2013년 04월 22일 (월) 09:26:26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수업이 끝나자 학생 수십 여명이 강의실에서 몰려나왔다. 막 청소한 복도와 계단에 또 발자국이 찍히고 모래가 떨어졌다. 쓰레기통은 과자봉지와 A4용지로 가득 찼다. 다시 청소할 시간이다. 분홍색 고무장갑과 토시를 끼고 학생들 틈바구니에 서서 빗자루로 쓰레기를 치웠다. 허리 펼 시간도 없다.

학생들이 지나가면 길을 비켰다 다시 쓸기를 반복했다. 1, 2 층을 쓸고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가지고 나왔다. 로비부터 2층까지 깨끗이 닦고 발자국이나 먼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청소용구를 정리하고 100l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쓰레기통에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를 모두 꺼내 담았다. 가득 찬 봉지를 끌고 내려와 건물 뒤편 분리수거장에서 하나하나 분리수거를 했다.

18일 오후 1시.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9년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숙(59.경산시 하양읍)씨는 인문관을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전 내내 푸른색 청소복을 입고 40여개에 달하는 강의실과 화장실, 교수실을 쓸고 닦았다. 하지만 항상 학생들과 외부인이 드나들어 오후가 되면 청소는 다시 반복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비질하고 걸레질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 학생들 사이에서 비질을 하는 김미숙씨(2013.4.18.대구가톨릭대 인문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학에서 청소부는 안보이는 존재에요. 눈에 띄지 않죠. 언제나 묵묵히 내 몫을 일할 뿐이에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죠.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참 힘들어요. 매일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고 청소만 하니까 얼굴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고...그냥 바쁘게 청소만 하다가요"


복도와 계단 청소를 끝낸 뒤 화장실로 향했다. 비품 창고에서 퐁퐁과 락스를 꺼내 두 세제를 섞었다. 물을 흥건하게 바닥에 뿌리고 쪼그려 앉아 시커멓게 변한 타일 틈새를 솔로 문질렀다. 일명 '줄질'이다. 벅벅 긁자 타일에서 까만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8칸짜리 화장실 바닥을 청소했다.

수세미로 화장실 거울과 세면대도 닦고 솔로 변기도 청소했다. 각 층에 있던 쓰레기통도 모두 비웠다. 화장실에 락스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청소하는 동안 화장실을 찾은 학생들이 신발에 물이 묻어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화장실 청소가 끝났다. 고무장갑을 탈탈 털어 비품 창고에 말렸다. 화장실 한 칸에 서서 퉁퉁 부은 손가락 관절을 주무르며 허리를 잠깐 폈다.

"줄질이 제일 힘들어요. 한번 하고 일어나면 하늘이 노래요. 또, 쪼그려 앉아서 1시간 넘게 바닥만 문지르다 보면 내가 여길 청소했는지 안했는지 나중에는 구분도 안돼요. 타일 틈을 매일 하얗게 만들어야 하니까 진짜 스트레스 받아요. 다른 대학은 이렇게 안해요. 그냥 물청소만 한번 하고 말지"


   
▲ 김씨가 화장실 타일 때를 벗기는 이른바 '줄질'을 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화장지가 떨어진 칸에 비품을 채우고 복도로 나왔다. 2-4층 빈 강의실로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책상과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비질을 했다. 대걸레로 책상 사이를 닦고 흐트러진 책상 줄도 맞췄다. 그때 강의실 앞을 지나가던 미화원 동료가 '인문관 화단 잡초 많다고 소장이 뭐라 카더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강의실 청소를 끝내자마자 부리나케 비품 창고로 가서 호미를 꺼냈다.

화단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잔디와 진달래꽃 사이에 솟아난 잡초를 캐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아 일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나 책잡힐 곳은 또 없는지 건물 안팎을 다시 둘러봤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30분. 퇴근시간은 이미 30분이나 지났다.

하지만, 소장이 매일 각 건물 '미화업무 점검표'에 A부터 D까지 점수를 매겨 평가가 나쁘면 청소하기 힘든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해고 이유로 들기 때문에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힘들다. 또, 오전과 오후에 각각 30분씩 휴무시간이 있지만 언제 소장이 나타나 점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쉴 수도 없다.

   
▲ 로비에 서서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김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생들은 끊임없이 오가지 바닥에는 발자국 남지 소장은 소리도 안내고 조용히 오지...쓰레기통은 또 어찌나 금방 차는지 쉴 틈이 없어요. 쉴 틈이. 햇빛에 반사되는 부분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해야 하니까 언제나 긴장한 상태로 있어야 해요. 휴식시간 다 쓰는 사람 없어요. 좀 무섭죠?"


김씨는 1970년대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우체국에서 일했다. 그리고, 20대 후반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대구로 이사를 와 두 아들을 낳고 20년 가까이 살림만 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집을 팔고 경산 시댁으로 이사를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생업에 뛰어들었고 미화원이 됐다.

첫 두달은 중앙도서관 지하1층과 지상1층을 혼자 청소했다. 지금보다 1시간 더 많은 9시간 동안 서서 청소하느라 두 달 만에 허리디스크에 걸렸다. 남편은 일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달 정도 쉬고 다시 일을 갔다. 도서관보다 쉬운 곳에 배정받았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 쓰레기통을 비우고 쓰레기봉투를 새로 갈아끼우는 모습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진짜 열심히 했어요. 몸 아픈지도 모르고 뼈 빠지게 했죠. 그리고 아프고 나니까 '내가 아니어도 이 자리는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멍했어요. 용역업체 직원이니까 더 그랬죠"


특히, 2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 내 모든 조경을 80여명의 미화원들이 동시에 관리했다. 때문에, 이틀에 한번 호미를 들고 잡초를 캤다. 또, 가을철에는 은행나무에서 다 익은 은행을 따 씻고 말려 포장했다. 모든 교직원에게 선물로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을 털고 까느라 몸에 독이 올라 짓무르고 고름이 흐르는 동료들도 많았다. 게다가, 대학 근처 교수 아파트 청소도 했다. 지금은 미화원들의 거센 항의로 하지 않게 됐다.

   
▲ 3-4월 인문관 '미화업무 점검표'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지금도 대학부설 유치원과 어린이집, 연구소, 수련원은 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또, 하루 8시간을 일해도 점심시간 1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치지 않아 7시간만 임금으로 지급받고 있고 식대비나 연장근무 수당도 없다. 김씨의 지난달 월급은 93만원. 연차수당 4만원을 빼면 89만원이다.

"점심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휴식시간이라도 다 쓸 수 있게 해주든지요. 대학이면 최고로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에요? 왜 자기들이 만든 규칙을 제대로 안지키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용역업체에 고용된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해요. 학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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