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의 진실과 종북 알레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상 칼럼] 양대 정당제와 대통령제가 비열한 정치의 원인


  진실은 외면해야 하나? 편하게 살려면 그래야 한다는 게 최근 NLL을 둘러싼 논란의 교훈이다. ‘종북’에 대한 국민의 (무)의식적 알레르기가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북한과 관련하여 약간이라도 후퇴나 타협으로 비칠 수 있는 일체의 언행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타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에게는 좋은 불쏘시개가 된다.

NLL이란 무엇인가?

  요즘 정치권의 설전이나 대형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는 NLL의 진실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NLL은 북방한계선의 영문 Northern Limit Line의 약어이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관심 있는 분은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지난 이야기부터 해보자.
  우선 반공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한다.

북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과 달리 정전협정에 따라 규정된 것이 아니고 지난 53년 [정전협정 한 달 후 8월 30일] 유엔군 사령부가 임의로 유엔군 측 함정에 대해 이 선을 넘어 북쪽으로 가지 말도록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은 정전협정 위반 행위는 아닌 것으로 간주되나 북한은 묵시적으로 이 선의 존재를 인정, 평상시에는 이 선을 넘어오지 않고 있으며 드물게 이 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일보, 1996년 7월 17일자)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쓴 배경이 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이양호 국방장관이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인 국민회의 의원으로부터 “4·11 총선 전 북한군의 DMZ 침범사건 때와 달리 총선 후 북한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해 우리 대응이 왜 소극적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북방한계선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조선일보는 정부 편을 들어주기 위해 보도 기사에 위와 같은 해설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되면 NLL의 진실 외면

  그러자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이 장관이 지난 50년간 남북이 모두 준수했고, 이를 넘어올 경우 교전사태가 빚어졌던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을 포기한다고 망언한 것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 사태”라며 이 장관의 발언 취소와 파면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 대변인의 발언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포기”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게 눈에 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11년이 지난 2007년 10월의 일, 당사자만 바꾼 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 간담회에서 “그 선[NLL]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며 “남북간 합의한 분계선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노 대통령은 조선일보나 이양호 장관과 같은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발끈하였다. 조선일보도 종전의 입장과는 달리 10월 12일자 사설에서 "노 대통령의 논리는 북측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상하지 않은가? 불과 11년 사이에 NLL과 관련한 상황이 변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정치권과 언론은 일관성이 없는 것일까?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지 집권 세력이 바뀐 것뿐이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부의 비중 있는 인사가 NLL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한다면 민주당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적용하는 검증 기준이 집권 여부에 따라 표변하는 것도 우리는 잘 보아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NLL 기준 등면적 지도 / 민주당 윤호중 의원 공개(2013.7.1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NLL 기준 등면적 지도 / 민주당 윤호중 의원 공개(2013.7.14)

소선구제, 양대 정당제, 대통령제를 바꿔야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걸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의 종북 알레르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부추기고 악용하는 정치 구조이다. 그런데 필자도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해 봐서 아는데 (제 말투가 누구 닮았지요?) 알레르기는 치료하기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종북 알레르기가 치료된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지역 알레르기가 있고 그 외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싶으면 정치권이 새로운 알레르기를 국민에게 심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개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정치 세력이 둘로 나누어져, 상대방을 흠집 내기만 하면 그 반사이익이 고스라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양대 정당제와 대통령제 하에서는 이런 폐단을 막을 방법이 없다.

  개혁의 방향은 우선, 국민의 표심을 왜곡하고 양대 정당제를 고착화하는 소선구제를 고쳐서 비례대표제 또는 그에 준하는 방식으로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양한 정당이 경합하는 건강한 정치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아울러 군주정의 유산인 대통령제를 버리고 여러 정당의 조합에 의해 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책임제로 가야 한다. 이런 개혁이 없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거꾸러뜨리려는 비열한 정치가 되풀이 될 뿐이다.

----- 심심풀이 퀴즈
이번에는 왜 여권이 물고 늘어질까?
읽어주신 독자를 위해 간단한 퀴즈를 하나 선사해 드리고 싶다. 요즘 재연되고 있는 NLL 논란은 전과 양상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전에는 정부나 여권에서 발언을 하고 야권에서 이를 물고 늘어졌는데 이번에는 집권 측에서 죽은 권력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왜 그러는 걸까? 다음 중 적절한 답은?
① 남북 대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타협의 여지를 보이면 안 된다는 나름 갸륵한 애국심의 발로다.
② 대선 때 다급해서 커낸 카드인데, 손발이 제대로 안 맞아서 마무리를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다.
③ 국정원의 범죄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이 생기자 국민의 종북 알레르기를 악용하는 것이다.
④ 정문원, 서상기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홍준표 지사처럼 그렇게라도 주목을 받으려는 것이다.
사지택일형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을 모르면 보통 3번을 찍는데, 이 문제는 어떨지.....






[김윤상 칼럼 53]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참고자료>
<조선일보> 1996년 7월 17일자 1면
<조선일보> 1996년 7월 17일자 1면
<조선일보> 2007년 10월 12일자 사설
<조선일보> 2007년 10월 12일자 사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