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19일 '대구광역시·대구광역시교육청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안(더불어민주당 김동식 대표 발의)'을 심의하기로 했다. 대구지역 공공기관이 세금을 사용해 물품을 구매할 경우 일제강점기 당시 전쟁범죄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제외시키자는 취지의 조례다.
하지만 조례 소관 상임위인 기획행정위는 이날 조례를 심사하지 않았다. 위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18일 오후 조례 상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다음 일정는 확정하지 않았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같은 조례에 대한 제정 절차를 밟고 있던 다른 지방의회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 17일이다. 이날 17개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회장 신원철) 제16대 후반기 회장단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후 의장단은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의장단은 일본 전범기업 불매 조례에 대한 모든 입법 절차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조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행정안전부 등 정부 각 부처가 '신중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WTO 정부조달협정 중 '내국민 대우 및 무차별 원칙'을 한국 지방정부가 위반해 차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비판하기 위한 조례가 오히려 한일 통상분쟁에서 한국 국가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자 의장단은 결국 조례 제정을 자제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결과 대구시의회는 상임위 상정을 보류했다. 상임위를 통과한 지역은 본회의 상정을 미뤘다. 지방의회 12곳이 절차를 멈춘 셈이다. 이미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한 서울 등 5곳은 공포를 연기했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한 관계자는 "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어서 통상분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뜻은 너무 좋지만 국익을 위해 모든 의회가 일단 조례 제정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 후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7월부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섰다. 한일 갈등이 석 달째 장기화되자 17개 지방의회는 최소한 지역 공공기관이 일본 전범기업 물품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 불매 조례 제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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