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족 3대의 '간첩' 연좌제 굴레...80대 손자 "진상 꼭 밝혀달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2.09.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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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전쟁 후 '보도연맹' 몰려 끌려가 행방불명
조부 유족회 활동 중 잡혀가 숨져, 삼촌도 고문 의혹
사촌형 육사 합격, 신원조회 후 불합격 극단 선택
영장 없이 구금·고문...5.16 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신윤식씨 "70년 만에 낸 용기, 억울함 풀어달라"


아버지는 6.25 전쟁 직후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경찰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이 됐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위한 유족회 활동 중 삼촌과 함께 잡혀간 뒤 형무소에서 숨졌다. 
사촌형은 육군사관학교에 1차 합격했다가 신원조회 후 불합격 처분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손자는 어머니 고향 일본으로 유학가고 싶었지만 출입국 심사에서 탈락해 꿈을 펼치지 못했다.

70년 넘게 '간첩' 연좌제 굴레에 고통 받아왔던 대구지역 가족 3대의 이야기다.

신윤식(80.대구 중구)씨는 28일 오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사람들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처음이다. 어두운 역사가 짙게 드리운 가족의 이야기. 이미 고인이 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사촌형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꼬마는 어느덧 팔순이 됐다.
 
신윤식(80)씨가 진화위에 '진실규명신청서'(2022.9.28.대구 중구)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윤식(80)씨가 진화위에 '진실규명신청서'(2022.9.28.대구 중구)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근현대사의 잔혹함을 정통으로 맞은 가족의 아픔은 한국전쟁 직후 아버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7월 아버지 신현택씨는 일본인 어머니와 대구 동구에 자리를 잡고 과수원을 했다. 그리고 어느날 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으로 가입했다는 이유였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삼촌은 아버지가 잡혀간 곳이 어디인지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대구형무소였다. 이후 70년째 아버지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할아버지 신석균씨는 경북유족회를 만들어 1기 회장을 맡았다. 한국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유족들이 모여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정희가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전국의 모든 유족회 활동을 금지시켰다.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유족회 활동을 중단할 수 없었다. 끝내 할아버지와 삼촌 신현재씨도 경찰에 끌려갔다. 경상북도 경찰국, 혁명재판소, 혁명검찰부, 중앙정보부, 육군방첩대 등 국가 주요 공안라인이 움직였다. 할아버지와 삼촌은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잡혀갔다. 
 
전쟁 후, 5.16 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작 사건...진실규명신청서 / 자료 제공. 신윤식
전쟁 후, 5.16 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작 사건...진실규명신청서 / 자료 제공. 신윤식

경북도경이 당시 작성한 할아버지에 대한 송치의견서를 보면 혐의는 '간첩'으로 나온다. '4.19 이후 북한에서 간첩으로 국내에 침투해 경북유족회 수괴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대구 중구 동성로에 살던 시민으로 월북을 한적도 없고, 간첩도 아니라는 게 유족 설명이다. 

잡혀간지 몇달되지 않아 할아버지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손자 신윤식씨에게 사망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이미 시신은 염 처리된 상태였다.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얼굴 뿐이었다. 사망원인은 '폐결핵'이라고 했다. 하지만 함께 끌려간 이들의 주장은 달랐다. 고문과 구타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풀려난 삼촌은 '간첩', '반공법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얼마되지 삼촌도 숨졌다. 유가족은 '고문에 의한 후유증'이 사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모두 구속영장 없이 최소 100일에서 최장 5개월 가까이 구금됐고 이 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아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촌형 신원식씨는 1962년 계성고등학교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신원조회 후 가족 내 '간첩' 혐의가 나타나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후 집을 나간 사촌형은 행방불명이 됐다가 경북 문경 큰 할아버지 묘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억울함 꼭 풀어주세요"...연좌제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신윤식씨(2022.9.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억울함 꼭 풀어주세요"...연좌제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신윤식씨(2022.9.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팔순이 된 손자는 가족의 아픔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진상규명이 되기를 바랐다. 신윤식씨는 지난 4월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가족 3대와 관련한 '진실규명신청서'를 냈다.  2기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지난 여름 대구에서 신씨를 만났다. 현재 조사 개시 여부는 결정나지 않은 상태다. 조사관이 조사 검토를 마치고 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면 최종 조사 개시 여부가 확정된다. 

신씨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작 사건으로 우리 가족들은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났다"며 "평생 동안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 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팔순이 넘은 이제서야 용기를 낸다"면서 "빨갱이로 낙인 찍힌 가족의 억울함, 연좌제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잘 조사해 꼭 진실을 밝혀달라. 제가 죽기 전에 진실을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송장건 2기 진화위 조사관은 "조사 개시 결정 여부는 현재로선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며 "유족이 주장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영장 없는 수사, 고문 등의 의혹에 대해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더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를 개시할지 기각할지는 추후 결정나면 통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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