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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국의 확장과 망국(亡國)의 정치
[김문주 칼럼]
2023년 11월 13일 (월) 15:55:47 평화뉴스 김문주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먼 곳으로 도망가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했다. 그리하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들이 돼버릴 뿐이다. (…)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번 멀리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譯)중에서

정약용이 유배지 전남 강진(1801∼1818)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서울 근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그 이유를 들고 있다. 정약용이 시골살이의 문제로 든 것은 '햇볕'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심성이다. 그가 말한 "그들의 견문"의 '실속 없음'이란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견문"이 아마도 후일의 모색(?)을 위한 이로움과 무관하다는 판단이 담겨 있는 듯하다. 아들들에게 보내는 사신(私信)이라는 점에서 이 글의 내용은 정약용이 생각하기에 가장 핍진(逼眞)한 현실적 판단에 기초한 조언인 것이다. "그들"이 보게 되면 아주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중앙관료 출신의 정약용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220년 전의 편지글의 내용이지만 여기에 담긴 조언이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판단의 현실성은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다.

교통과 정보통신 수단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가 거의 장애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울의 구심력은 여전히, 아니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정약용이 문제로 삼은 ‘견문’의 협소함, 그것의 물리적 원인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로 집중되는 현실은 그가 시골 사람들에게 없다고 지적했던 ‘실속’이 여전히, 아니 더 확실하게 서울(사람)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속’이 있으니까 너도나도 서울로 가겠지만, 서울 집중이 수많은 폐해와 국가 발전의 장애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정책,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실행할 정치인들이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소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서울 집중이 개인적으로(!) ‘실속’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그들의 말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허구’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중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연고로 둔 121명을 제외한 나머지 132명이 비수도권 국회의원인데도 서울 집중을 막아서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자는 찾아볼 수 없으니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지역’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사회에서 점점 깊어지는 어둠이다. 11.8%의 면적을 가진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2022년 한국은행조사국 통계, 50.6%)이 살고 있고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영역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다. 내 전공 영역과 관련한, 90%의 언론출판매체도 서울에 모여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양적인 수치보다 그러한 현상의 내적 의미로서, 부정적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적 동력이 지역에는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의 핵심은 인적 자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자기 지역의 청년 유출률이 가장 높다며 심각하게 개탄한다. 2022년 기준 수도권 증가인구의 79%가 15∼34세로, 유출된 지역에서 볼 때는 가장 활력 넘치는 인력들이 지역을 떠난 셈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대학입시와 취업 시즌이 지나면 대규모의 엑소도스(exodus)가 일어난다. 지역의 능력 있는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올라간다’. 당연히 지역에 남아있는 청년들은, ‘남겨진’ 자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든 지역의 교육당국이 서울 주요 대학 진학률에, 목숨을 건다.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갈리는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지역은 남겨진 사람들의 공간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역은 그곳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해온 중년 이상의 사람들과 몇 차례의 탈출 행렬에서 잔류(殘留)한 청장년들로 구성된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역 대학의 약화된 위상과 위태로운 현실은 기업의 수도권 집중화와 맞물려 지역의 위기를 웅변하는 상징적 현상이다. 지역이 갖는 역량이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일 텐데, 그 역량을 만들어낼 적잖은 주체들이 빠져나간 지역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구조에 놓여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비수도권 지역이 인재들의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상황은 자신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보다 지역 출신의 서울 인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 사진 출처. KBS뉴스 <[대담한K] '메가 서울' 논란…실효성 있나?>(2023.11.07) 방송 캡처

지역의 쓰임새가 자연과 축제를 통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전락한 것처럼, 지역은 출향(出鄕) 인사들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이력을 관리하는 데 유용한 징검다리로 활용된다.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가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가 되는 일은 정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확인되는 사실이다. 게다가 서울에 종속된 인적 네트워크는 지역의 인사들, 지역의 토호들에게도 자신의 위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한다.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과 종속된 인적 관계는 지역을 서울의 내부식민지로 정초하게 하는 핵심적 환경이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또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서울로만 접속하는 지역(들)의 종속된 현실과 내면의 구조는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조·동화되는 스톡홀롬 증후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 포로가 된 지역(들)의 현실은 중앙 정치와 지역 구성원들의 이해-내면과 맞물려 서울제국을 떠받치는 구조의 일부가 되어 있는 셈이다.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 그 외의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비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지역 간의 위계질서는 오랜 시간 동안 적층된 복합적인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정책 방향의 대전환 없이는 서울제국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지역의 불평등 구조의 해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40년을 살고 대구에서 15년을 산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대구에서의 삶은 서울보다 훨씬 여유롭다. 이는 현저하게 낮은 인구밀도와 도시의 규모에서 기인한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도로 정체로 인한 주말여행 스트레스도 거의 없으며, 생활물가도 서울보다 저렴하다. 작품과 담론 중심으로 해왔던 공부는 이곳에 와서 역사적 현장과 현실의 사람들에게 돌려지고, 공부의 주제는 현실의 문제의식과 더불어 확장되고 있다. 괜찮은 직장인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나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곳에는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직장이 드물다는 것, 서울로 대학을 보내는 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에게도 벅찬 일이라는 점, 특히 서울로 취업한 청년들은 높은 거주비와 생활비 등으로 인해 서울에서 난민처럼 산다. 서울제국을 떠받치는 식민지 청년들 같다. 이들에게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매우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잖은 사람들이 이곳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실속’을 희생하며 참으로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지만, 이곳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목소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실속과 무관한 ‘비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능이 끝나면 이곳의 청년들 중 일부는 집을 떠나 서울로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 일부도 고향을 떠나 난민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서울은 미어터지고 지역은 텅텅 비어가는 현실, 이 현실이 국가 전체로 볼 때 방치할 수 있는 일인가. 출생률이 국가 존망(存亡)의 문제라고 떠들고 수십조의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서울 메가시티를 주장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정치하는 자들의 무치(無恥)와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 정치가 망국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

 
   
 








[김문주 칼럼 4]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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