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방향을 소상히 우리에게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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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정치의 실종과 고단한 국민의 삶

현실은 혼란스럽고 삶은 너무 고단하다. 봄이 왔는데도 일상에 화사함이 돌지 않는 듯하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적잖은 사람들이 빚으로 쓸 돈이 말라버리고 고물가로 삶은 팍팍해진데다 연일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강대강 대치 뉴스가 창궐하고 있어 일상의 불안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형국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정치가 완전히 실종되고 법과 원칙을 앞세워 행정부가 특정 직역(직군)이나 대상과 돌아가며 쟁투를 벌이는 듯하다. 행정부가 광범위한 사법-공권력의 기관으로 돌변한 모양새이다. 권력이 사납고 험하니 국민의 삶이 편할 리 없다. 국정이 험악한데도 현 상황을 숙고하는 모습이 대통령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분야의 원로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모습도 없고 국정의 주요 과제들에 대한 소통과정도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읽은 책 목록조차 공개된 게 없으니 현실 위기에 대해 대통령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헤아릴 도리가 없다. 

국무회의를 비롯해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대통령의 말만 무성하니 난마처럼 얽힌 상황들이 해결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대통령에게 입만 있고 들을 귀는 없는 듯하다. 기업의 법인세나 종부세 등의 감축으로 인해 세수가 대폭 줄어 국가 경영이 험난한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하는 대통령의 저 화려한 말풍선은 그 어조의 단순명료함만큼이나 참으로 공허해 보이는데, 어쩌면 저렇게 가는 곳마다 쏟아내는 대통령의 해맑은 말의 전시와 자신감을 어찌 보아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들이대는 저 맨몸의 전시가 딱하다 못해, 너무 썰렁하게 느껴진다. 끔찍한 블랙코미디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정책 입안 과정의 부재와 부실한 정책의 현실들

문제는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매우 근본적인 것들이어서 우리 공동체를 매우 위험한 상태, 어쩌면 회복불능 상태에 빠뜨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꼽자면 끝도 없겠지만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공공성의 영역인 교육이나 의료 등의 분야는 그 영향이 심대해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관련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해 정부가 내놓은 학교 돌봄 정책으로 인해 현재 일선 학교는 난장(亂場)이다. 기존 어린이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돌봄을 초등학교로 확대하려는 정책은 아무런 준비 없이 발표되고 시행을 급하게 밀어붙인 탓에 이를 수행할 인력조차 구하지 못한 채 학기가 시작되어 일선 학교와 교사들은 과부하가 걸린 상태이다. 

'늘봄학교 졸속 도입을 반대" 대구 3개 교육단체 기자회견(2024.2.2.대구교육청 앞) / 사진. 전교조대구지부
'늘봄학교 졸속 도입을 반대" 대구 3개 교육단체 기자회견(2024.2.2.대구교육청 앞) / 사진. 전교조대구지부

문제는 이러한 돌봄 정책에 ‘교육’이 빠져 있다는 점, 돌봄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더 빨리 학교에 오고 모든 친구들이 돌아간 후에도 학교에 남게 된다는 점이다. 돌봄 인력의 부재나 프로그램의 문제는 차치하고 돌봄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교실에 저녁까지 남게 되는 아이들에게 돌봄의 확대는 과연 좋은 정책인가.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저녁까지 학교에 남게 하려는 것인가. 돌봄 정책의 확대보다 먼저 고민하고 숙고해야 하는 것은 OECD 최하위 수준인 한국의 장시간 노동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가 정책의 주안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녁까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사회를 국가가 권장하는 꼴이다. 부모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학교가 아이들을 붙잡아 놓겠다, 전제가 잘못되어 있고 번지수를 전혀 잘못 짚었다. 출생률을 높이고 국민들의 삶을 증진시키고자 한다면,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과 환경을 제고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과격한 의사 정원 확대 정책과 의사단체의 오만함, 그리고 착오

윤석열정부가 참으로 용맹하게 밀고나가고 있는 의사정원 확대 정책은 의사단체 집행부의 판단착오, 오만함과 맞물려 날개를 단 상황이다. 총선을 앞두고 급발진하고 있는 의사정원 확대 정책은 일부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지지율의 상승을 견인하는 핵심 사안으로, 아마도 정부는 총선 때까지 관련 내용을 고수·강행할 것이다. 의사들을 때릴수록 지지율은 오를 것이고, 이를 위해 어쩌면 새로운,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은 뉴스들이 소환될지 모른다. 이전 정부마다 의사단체 집행부는 환자를 볼모로 의사정원 확대나 의료 관련 정책의 개선 문제를 가로막아 왔다. 지난 정부에서 설립하고자 했던 공공의대와 의사 수의 점진적 확대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좌초된 바 있다. 

의사 직군의 사적 욕망은 차치하고, 국가의 의료정책이 어찌 의사들만의 영역인가. 그것은 비상식적이고 오만한 처사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겪고 있는 의사 가뭄 상태, 높은 연봉을 주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지역의 의사난(醫師難)을 어찌 의사단체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 해결하라는 것인가. 한국의 고령화, 저출생률, 그리고 지역의료의 붕괴와 의사 직역의 쏠림 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의사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의사단체가 진정성이 있었다면 환자 곁에 머물면서 현 정부의 의료정책의 허구성과 위험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알리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다.  

의사정원 확대와 흉흉한 전망들

더 큰 문제는 의료정책과 관련한 국가 중대사를 제대로 된 숙의 과정 없이 진행한 정부의 태도이다. 정부가 추진한 2,000명의 의사 수는 어떻게 산출된 것이며, 그렇게 증원한 의사들이 한국사회의 고령화와 저출생률, 지역 의료난과 의사들의 특정과 기피 현상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정부는 2,000명의 의사 증원만을 강행하고 있고 의료 개혁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래서 의사 정원 확대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급여/비급여의 혼합진료 금지, 의료사고 특례법, 지역필수의사제 등)이 한국사회의 불합리한 의료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영남대병원. 의사들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2024.2.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영남대병원. 의사들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2024.2.23)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정부와 의사 단체의 대치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확대되고 있고 관련 기업의 주가는 연일 급등하고 있으며, 경상의료비 총액이 210조를 상회하는 한국의료시장에 대한 자본의 욕망과 관련한 소문들이 무성하다. 그러한 소문 중 일부는 한국의 의료시장이 미국처럼 양극화될 것이며 의료자본에 의해 한국의 의료제도가 포획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코로나 기간을 통과하며 급부상한 배달플랫폼이 식당(종사자)을 통제하게 된 작금의 현실처럼, 거대한 의료자본과 플랫폼이 한국의 의약(醫藥) 시장을 장악·통제할 수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음모와 사실은 구분되어야 하고, 그 위에서 진단과 해결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전망도 투명하게 공개되고 충분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난 의사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정한 증원 규모에 대한 판단 능력은 내게 없다. 다만 한 해 의대입학정원 3,058명을 단번에 2,000명 증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정원의 65%를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갑자기 증원하는 것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무지한 일이며, 대학 교육을,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의학(교육)을 우습게 보는 처사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의료개혁의 방향이 될 수 없다. 이는 재정지원사업을 미끼로 대학의 무전공 입학정원을 25%가량 증원하려는 무도한 교육부의 반교육적인 작태처럼, 정부가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의료 정원 확대 역시 그 과정을 놓고 볼 때 전혀 개혁적이지 않다.   

국민 없는 의료개혁과 총선

그러나 이러한 모든 문제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돌봄이나 대학정책에 정책 목표인 아동/학생-교육이 고려되지 않은 것처럼, 현 정부의 의료정책에 의료개혁의 중요한 목표-주체인 ‘국민’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의료개혁의 목표는 국민들의 의료 받을 권리를 제대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하며, 이러한 원칙은 그 과정 속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마치 검사와 의사가 대결하는듯한 현 시국에서 어떤 생명도 죽음으로 몰리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되며, 한국의 의료체제가 거대 자본에 포획되는 방향으로의 선회 역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냉철하게 살피고 우리 공동체가 함께 고민할 문제이다.  

윤석열정부는 국민들에게 설명하라.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의료개혁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점에서 우리 공동체의 의료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의대입학 정원을 확대해서 우리의 의료 문제 상황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정부는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 수립 과정에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주체들을 다양하게 포함하여 함께 논의하고, 그 과정과 내용들을 낱낱이 공개하라. 

개혁, 특히 국민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혁은 결코 검사가 피의자를 수사하듯, 몰아가고 압박해서 성공할 수는 없으며, 관련 전문가와 국민 의견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주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 때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의사정원의 증대가 고물가로 팍팍한 삶을 사는 국민들과, 제때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 그리고 가족들 모두를 여러모로 괴롭게 하는 참담한 봄이다. 신분사회인 저 중세시대의 힘없는 백성으로 돌아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떠오르는 참사들이 빼곡한 봄이 선거가 있어 국민들에게는 이만저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참으로 가혹한 봄이다.         

 

 

 

[김문주 칼럼 8]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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