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석학 4인이 대구에 모여 일본의 '위안부·강제징용' 전쟁범죄 해법을 모색했다.
최근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내리자, '역사적, 정치적, 법적'으로 남은 과제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과 동북아평아센터(North Asia Peace Center),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16일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법원 확정판결 이후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열었다.
백태웅(60)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김영호(83.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 동북아 역사 전문가인 알렉시스 더든(53.Alexis Dudden)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교수, 대표적인 지한파 역사학자와다 하루키(85.和j 田 春樹) 일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가 각자 30분씩 발제를 했다. 이정우(72) 경북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4시간 넘게 진행됐다. 세미나에는 대구의 유일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이자 인권운동활동가인 이용수(95) 할머니를 비롯해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최근 법원 판결 후 앞으로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앞서 11월 23일 서울고법 민사합의 33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부장판사)는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과 유족 등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선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 중 하나인 '태평양전쟁((1941년~1945년)' 당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에 대해 1인당 2억원씩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주권면제'를 이유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2021년 1심 판결을 뒤집고 광복 후 78년 만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무대응' 원칙으로 상고하지 않았다.
무력 분쟁 중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한다는 법적 주장을 깨부순 것이다.
◆ 백태웅 교수는 법적 의미를 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제시했다. 백 교수는 "최근 한국 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 사법부를 통해 인권보장을 실현하기 위해 피해자들이 계속 노력한 산물"이라고 격찬했다. 또 "인도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 '반인도적범죄'에 대해서도 일본 주권면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그 동안의 한국 법조계의 보수적인 접근법 한계를 넘었다"고 해석했다.
이어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강점기 하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여러 손배소송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최종적으로 법적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주권면제를 보장하는 것은 국제관습법의 구시대적 시각"이라며 "위안부, 징용 등 전쟁 당시 국가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새로운 판례. 뉴렘부르크, 유고 ·르완다 전범재판소 등 피해자 인권보호 판례 등) 이어 "국제법 차원에서 국가면제는 더 이상 절대적일 수 없고 인권침해와 관련해 국가 책임은 부정될 수 없다"면서 "현대의 국제인권법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확대되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을 이정표로 오랜 미완의 과제인 태평양전쟁 당시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의 실제적 해결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는 '아시아 인권협약' 채택을 추진하고, 아시아 여러나라의 힘을 모아 '아시아 인권재판소'를 추진해 과거의 고리를 끊고 미래로 나아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호 교수는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서 발제했다. 김 교수는 "식민지주의 청산과 민족자결주의를 기치로 탄생한 UN(국제기구)은 일본 침략주의 최대 피해국 한국, 중국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9월 8일.San Francisco Peace Treaty)' 48개 서명 국가에서 제외했다"며 "게다가 식민지주의범죄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없고, 피해자중심주의 원칙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의 목표와는 정반대로 간 '한일청구권협약'은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한일 국토의 지리적 분할에 따른 민사적 재산청구권문제에 국한시켰다"면서 "식민지범죄에 따른 위안부, 강제징용 인권 피해는 역사적·법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조약을 체결했다"고 아쉬워했다. 그 탓에 "65년 간 체제 근간은 한일기본조약, 한일청구권협약이 됐다"며 "식민지 범죄와 관련해 인권유린을 추궁하지 못하게 하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도 불허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적 근거가 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빈 협약(비엔나 협약.1961년 4월 18일)'에 위배된다"면서 "피해자중심주의는 지난 2005년 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중요한 원칙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과는 정면 배치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1963년 UN 총회에서 국제조약으로 인정할 수 없는 없는 국제조약들을 무효 결의한 것처럼 세계 지식인 1,000인 공동성명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대체할 '동아시아판 샌프란시스코 시스템', 더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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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법원 확정판결 남은 과제' 세미나(2023.12.16.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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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일본의 '버티기 전략' 배경에 미국 정부의 책임을 따졌다. 그는 "1945년 동북아시아의 공산주의를 축출하고 '팍스 아메리카'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 전략으로, 태평양전쟁의 영원한 법적 뒷받침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됐다"며 "공산주의에 맞설 전략으로 일본을 이용한 지역구도를 만들어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일본 오키나와(1945년~1972년 미국 점령) 사례를 들었다. 그는 "오키나와는 미국뿐 아니라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 지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한편, 미군기지 배치에 대한 책임을 일본 중앙 정부에 묻는 지역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해 반인권적 전쟁범죄에 대해 시민들이 그 책임을 묻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고노담화'에서 책임을 인정한 것처럼 확실히 전쟁범죄를 사과하고, 생존자들에게 대해 배상을 해야 한다"면서 "젊은 세대들을 위해 교과서에도 분명히 기록을 남기고,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철거하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 와다 하루키 교수는 한일 관계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인권운동 등 맥락을 짚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견인한 것은 한국 피해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이 30여년간 적극적으로 운동을 벌인 결과"라며 "노태우 정부 당시 피해자들은 한일 정부에 ▲조선인 여성들에 대한 위안소 사실 인정 ▲공식 사죄 ▲일본 정부 진상규명 ▲희생자 위령비 건립 ▲생존자·유족에 배상 ▲역사 교육 등 6개 요구를 전달했고 이후 고(故) 김학순 할머니 등이 첫 증언을 하면서 역사적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 그리고 일본의 자민당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서면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졌다"면서 "앞서 협약, 합의는 깨졌고 배상과 사죄, 책임자 처벌 약속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와다 교수는 "일본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세운다는 그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수 할머니도 세미나 마지막 세션에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이 할머니는 "법적으로는 이겼다. 그에 따르는 법적인 배상과 공식적인 사죄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아직 한마디도 잘못했다고 한적이 없다"면서 "제가 법적으로 당당하게 이겼으니, 일본 정부는 거기에 따른 법적 배상과 공식 사죄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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