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시민들의 윤석열 정부 2년에 대한 심판은 매서웠다.
먼저 민주당에 대해서는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하고도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선거 막판에 여러 가지 설화와 문제가 드러난 후보가 있음에도 지지했고, 창당 한 달 만에 12석을 차지한 조국혁신당에 대한 지지는 ‘뭐가 문제인지 알겠는데 중요한 건 심판’이라는 민심이다.
뜨거운 민심은 투표율로 표출되었다. 가장 먼저 치러진 재외선거 투표율은 62.8%였고, 사전투표율은 31.3%로 이는 모두 역대 최고치이다. 최종 투표율은 1992년 14대 총선 투표율(71.9%) 이래 32년 만에 가장 높은 67.0% 였다. 총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175석, 국민의힘·국민의미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으로 민주당은 과반을 넘었고 범야권은 192석을 차지하였다.
국민의힘 총선 실패 이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퇴하면서 선거 실패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근본원인은 2년간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왔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에서 보여준 내로남불,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 대사 임명과 사퇴의 과정은 국민들의 인내를 넘어서는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워 선거를 치루고자 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을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전날까지 240개의 정책 과제를 남발한 24차례의 민생토론회, 투표를 10일 앞둔 시점에서 51분간 혼자 말한 의대 증원 관련 대통령 담화 등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간판을 바꾸어 총선을 치르고자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더욱이 국민의 힘 선거 전략은 운동권 청산론, 이조심판론 이후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전략이 없는 전략’이라고 까지 했다. 여당으로서의 유리한 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이미 심리적으로 패배를 전제로 선거를 치른 것이다.
'대파'가 총선을 관통한 이유
이번 총선에 가장 이슈는 ‘대파’일 것이다.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시민들의 심판 욕구에 불을 지폈다. 사과는 1년 전 보다 88.2%, 배는 87.8%, 대파는 23.4%가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은 연간 0%에서 1%대 오갔으며 7년간 누적해서 오른 것이 7.5%이다. 그런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사이에는 누적해서 11% 넘게 올랐다. 7년 동안 오른 것 보다 더 많이 오른 것이다.(MBC 스트레이트 <대파가 뒤흔든 총선-위기의 중산층과 한국 경제>(2024.4.14) 참고)
물가 상승의 원인은 기후 위기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의 감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 등 다양하지만 물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 총선에서 ‘대파’로 상징되며 심판의 이유가 된 것이다.
물가가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더 문제는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2023년 노동자들의 명목소득은 2.5% 올랐고 물가는 3.6% 올랐다. 실질임금은 평균 355만 4천원으로 1년 전보다 오히려 1.1% 줄었다. 물가뿐만 아니라 금리가 오르자 대출이 있는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게 되었고 소비심리의 위축은 700만 자영업자들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이다.
민생이 어려운 이유 '한국 경제의 빨간불'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로 3년 연속 OECD 평균을 밑돌았으며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도 역전당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대한 외부 충격이 가해진 예외적 시기(1998년, 2009년, 2020년)를 빼면 한국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출처: 시사IN 「경제성장률 1.4%의 한국 경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2024.03.27)
경제성장률이 낮은 이유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문제,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화의 퇴보현상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연결되는 자본과 노동 부분만 유지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황폐화되는 현상, 국내 자산(부동산) 및 노동소득 격차의 심화, 수도권 집중, 산업도시의 퇴락,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 세계화 시대 모순의 심화 등 복합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정시한을 넘겼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총선 이후 발표한 2023년 나라살림 결산은 윤석열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도 관리재정수지가 87조원의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 때를 빼면 역대 최대라고 한다. 역대급 적자에도 정부는 빚을 내지 않고 돈을 아껴 썼다고 자화자찬했다.
돈을 아껴 썼다는데 적자가 난 것은 세금을 56조원이나 덜 걷었기 때문이다. 수출 경기 부진으로 법인세 24조 원, 소득세 16조 원, 부가가치세도 9조 원 넘게 줄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감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늦추면서, 종부세 대상자가 3분의 1로 줄었고, 종부세도 2조 원 넘게 줄었다. 정부가 돈이 없으니 내수를 진작할 수도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더욱 문제는 윤석열 정부는 ‘정책 비전의 체계화를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정부’라고 한다.( 출처: 시사IN 「한국형 성장체계의 위기와 한계」 2024.3.27)
시민이 바라는 정치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포인트)에서 21대 국회 역할 평가를 물은 결과 ‘잘못했다’ 80%, ‘잘했다’ 13%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민들의 평가에서 거대야당이던 민주당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잘해서 표를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 동시에 ‘야권’에게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21대 국회 때처럼 ‘책임은 지지 않고 싸움 걸기만 하는 야당’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독선과 불통을 돌려세우고 시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하라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이다. 위기는 눈앞에 다가와 있고 풀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이제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와 함께 한국 경제의 위기와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당과 야당의 정치가 펼쳐져야 할 때이다.
[남은주 칼럼 52]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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