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산소에 가면 꽃을 들고 가는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 묘소에 꽃 한 송이 심는다는 마음으로..."
나정태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장의 말이다. 유족들은 위령탑 뒤편에 심은 배롱나무 잎을 만지며 국가에 의해 희생된 부모님을 떠올렸다. 나무를 보며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 유해를 모시지 못해 원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이사장 나정태)는 지난 21일~22일 이틀간 경산시 평산동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주위에 유족들 사비 300여만원을 모아 배롱나무 80그루를 심었다.
지난해 9월 유족회 임원들이 심은 12그루를 합하면 현재 92그루가 심겨 있다. 유족들은 배롱나무를 심은 이유에 대해 "꽃말이 '떠나간 임을 향한 그리움'"이라며 "꽃이 폈다 지기까지 100일이 걸린다. 그만큼 부모님과 형제들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나무에는 희생자들의 위패를 달아 추모할 예정이다. 오는 10월 23일 열리는 73주기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이 직접 나무에 희생자들의 위패를 단다.
올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코발트광산 유해 수습은 종료됐다. 지난 3월 27일부터 7월 31일까지 수평굴 안에 있던 마대자루 2,500여개를 꺼내 네 달가량 유해 수습 작업을 진행했다. 1기 진화위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유해 420여구를 발굴해 밖으로 옮겼지만, 2009년 사업이 중단되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흙과 유해를 마대자루에 담아 보관했다.
그러다 올해 3월 2기 진화위가 '유해 발굴 지자체 보조사업'으로 코발트광산을 선정하며 14년 동안 흙포대 속에 갇힌 유해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2천여 점의 유해가 발견됐다. 남은 마대자루 2,500여개도 진화위로부터 교부금을 받아 이르면 내년 봄에 유해 수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발굴된 유해는 2기 진화위의 발주를 받아 유해 수습 작업을 진행한 '한빛문화재연구원'이 보관 중이다. 모든 유해 수습이 마무리되면 세종시 '추모의 집'에 함께 안치할 예정이다.
유족들은 추모의 의미를 담아 내년에도 배롱나무를 심기로 했다.
나정태 유족회 이사장은 "내년에는 수직굴로 올라가는 길목에 배롱나무를 심어 유족들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나무에 달 위패만 봐도 유족들의 한을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희 유족회 이사는 "유족들은 가족이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렵게 살아왔다"며 "어떤 유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가족 이름이 적힌 위패와 나무를 보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진화위에 따르면,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산·대구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대구형무소 재소자, 요시찰 대상자들이 코발트광산 등지에서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진화위에서 추산한 학살 피해자는 1,800명 정도이나 유족들은 3,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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