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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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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희년의 '평등지권'은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법

총규모 31조 8천억 원의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7월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중에는 국민 1인당 15만 원에서 최대 52만 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이 들어 있어 전국민이 소비쿠폰을 신청하고 있다. 또 추경에 포함된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예산에도 눈길이 간다.

오늘날 희년의 핵심 요소는 부채 탕감 + 토지 반환

이 프로그램은 7년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채무를 지고 있는 취약계층의 빚을 탕감한다는 내용이다. 정부 예산 4천억 원과 민간 금융사들이 출연하는 4천억 원으로 운영할 예정이며,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채무 조정기구인 '배드뱅크'가 금융사로부터 장기 연체채권을 인수하여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배드뱅크'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에 공동은행장이었던 '주빌리은행'과 비슷하다. '주빌리'는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禧年, jubilee)이라는 뜻이다. (희년에 대한 설명은 칼럼 끝 [부록]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소통 행보, 충청의 마음을 듣다 '충청의 꿈 다시 키우다'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부채 탕감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025.7.4.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 /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소통 행보, 충청의 마음을 듣다 '충청의 꿈 다시 키우다'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부채 탕감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025.7.4.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 /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은 추경이 통과되던 날 대전에서 "과거 실수로 생긴 빚의 족쇄를 대물림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면서, 희년을 언급했다. 희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저선을 50년마다 회복시키는 제도로서, 그 3대 요소는 품꾼 해방, 부채 탕감, 토지 반환이다. 희년이 되면 종의 신세에서 풀려나고, 빚도 사라지고, 사정상 자신의 토지를 매각한 사람도 조건 없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추구하는 '기본사회'와도 맥락이 닿아있다.

노예제도나 신분제도가 사라진 오늘날, 3대 요소 중 '품꾼 해방'은 울림이 별로 없다. 나머지 두 요소 중, 심각한 부동산 불평등에 시달려 온 우리 사회에서는 '부채 탕감'보다 '토지 반환'이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구약 시대와는 삶의 방식이 달라진 현대에는 문자 그대로의 '토지 반환'은 적용하기 어렵다.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했고 농지보다는 개발된 토지가 많아서 원 상태의 토지를 돌려주기 어려운데다가 본래의 연고지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 반환'의 근거 원리인 '평등지권'(平等地權)은 여전히 유효하다.

'토지 반환'의 현대판은 토지가치 공유

19세기 미국의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평등지권'을 현대 사회에 맞게 새로 설계하였다. 토지 자체를 되돌려주는 방식 대신 토지가치를 국민이 공유하는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 방식을 제안했다. 지대조세제는 토지소유자에게서 토지의 임대가치 즉 지대를 매년 보유세로 징수하는 세제이다. 그러면 희년이 아니어도 상시적으로 '평등지권'이 구현된다.

대구 동구 아파트촌(2025.7.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동구 아파트촌(2025.7.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래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려 왔다. <토지+자유 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부동산 불로소득의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18.3%에 이른다. 더구나 최근에는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상승하여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출을 규제하는 '6.27조치'에 의해 상승세가 다소 수그러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출 규제는 수도관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샐 때 구멍을 수리하는 대신 유입되는 물의 양을 줄이는 대책이다. 정공법이 아니어서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부작용을 낳는다.

부동산 투기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자이므로 그 정공법은 당연히 부동산 불로소득을 없애는 것이다.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로 구성되는데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므로 결국 건물 아닌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만 없애면 된다. 헨리 조지가 제안한 지대조세제를 도입하면 토지가치가 소유자에게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동산 투기라는 병폐가 근원적으로 치유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이재명 대통령이 4년 전 2021년 제20대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일 때 발표한 부동산 공약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토지거래세를 줄이고, 0.17%에 불과한 실효보유세를 1% 선까지 점차 늘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 차단 목적의 교정 과세인 국토보유세를 부과하면 반발이 따르므로 이를 전액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해 조세저항을 줄여야 합니다." 이 국토보유세는 완화된 지대조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랬던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21대 대선에서는 서울 강남지역 유세에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모든 시장 참가자가 완전한 정보를 공유하는 교과서 속의 시장에서는 투기가 없으므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잡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실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세금으로 투기 이익을 차단해야 집값의 부당한 상승을 막을 수 있다. 즉,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교과서 속의 시장에서는 적절하지만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인 강남에서는 선거용 감언으로 들릴 뿐이다.

헨리 조지 사상의 전파를 사명으로 하는 미국 <진보와 빈곤 연구소>(Progress and Poverty Institute)의 스티븐 호스킨스(Stephen Hoskins)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조지스트인가?"라는 칼럼을 발표하였다. Stephen Hoskins, "Did South Korea just elect a Georgist?,"in Newsletter of Progress and Poverty Institute. 영문 칼럼의 번역과 원문 출처 링크 참조.

 '조지스트'란 헨리 조지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제 한국이 토지세를 부과하고, 주택을 공급하며, 천연자원 지대를 재분배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에 주빌리은행의 공동은행장이었고 이번 추경과 관련해서도 희년을 언급하였으므로 ‘토지 반환’과 ‘평등지권’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이 대통령이 20대 대선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온 부동산 투기를 근절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주빌리은행' 출범식에 참석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2015.8.27) / 사진.성남시청 홈페이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주빌리은행' 출범식에서 은행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2015.8.27) / 사진.성남시청 홈페이지 

[부록] 성경의 희년과 토지제도

남기업 "희년과 한국사회" 김근주 외 『희년, 한국사회, 하나님 나라』, 홍성사, 2012: 252~256면.

1. 자유와 해방의 해, 희년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 음력 7월 10일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품꾼 해방, 부채 탕감, 토지 반환이 그것이다. 얽매여 있던 품꾼이 자유를 얻고, 갚아야 할 빚이 사라지고, (경제)생활의 터전인 토지를 되찾게 된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실질적인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된다.

상상해 보라. 신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거기에다 빚도 사라지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까지 돌려받는다는 사실을. 설움 많은 품꾼살이, 한 많은 소작농의 삶, 빚에 짓눌려 늘 답답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희년은 감격과 환희 그 자체다. 이처럼 희년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건에 정의와 자비가 조화되어 있다. (생략)

4. 토지 반환은 정의와 자비가 조화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의와 자비가 조화된 토지 반환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희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 즉 토지신유(土地神有)를 언급하는 동시에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평등지권(平等地權)의 정신도 강조한다(시 115:16). 풀어 말하면 토지가 하나님의 것임을 구현하는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략)

성경은 이러한 평등지권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세 가지 규정을 두었다. 첫 번째가 토지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지계표(地界標) 이동 금지 규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네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 27:17)라고 말씀하셨다. 지계표를 옮기는 행위는 앞에서 다룬 토지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자유,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규정은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레 25: 23)는 '토지 영구 매매 금지 규정'이다. 본래 성경은 토지매매 자체를 금하지 않았다. 한시적 매매는 허용했다. 개인 사정에 따라 토지를 팔 수 있었는데, 그 방식은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까지의 사용권만 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50년이 희년인데 어떤 사람이 가세가 기울어 2011년에 소유 토지를 판다면 39(2050-2011)년 동안의 사용권만을 파는 것이다. 매수자가 그때까지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매매 대상 토지의 1년 임대 가치가 쌀 1가마라면 39가마 정도를 한꺼번에 받고 사용권을 넘겨주고 희년이 되면 돌려받는 것이다.

세 번째 규정은 희년이 돌아오기 전이라도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무르기 규정이다. 이는 근족(近族)이 대신 사 주거나, 그럴 만한 친척이 없을 경우에는 가족 스스로 열심히 저축해서 다시 살 수 있는 장치다. 앞의 예대로 희년이 2050년이고 2020년에 스스로 무르기를 한다면, 30가마를 주고 자기 땅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영구 매매를 하게 되면 그 땅을 되찾아 오기 어렵다. 토지를 산 사람이 팔기 싫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를 다시 사려면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무르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지계표가 옮겨지는 것이다.

[김윤상 칼럼 153]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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