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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헌법재판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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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시민의회'로 국민의 상식을 국정에 반영해야

 

불법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국회가 작년 12월 14일 의결한 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린 4월 4일까지 111일 동안, 좋든 싫든 거의 매일 헌재 소식을 접해온 국민은 헌재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면서 동시에 현행 제도에 아쉬움과 의문도 느꼈을 것이다.

세 가지 의문: 탄핵 결정 정족수, 재판관의 정치 성향, 재판관의 자격

첫째로, 헌재의 탄핵 결정 정족수에 대한 의문이다. 헌재에서 법률의 위헌, 탄핵, 정당해산,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헌법 제113조). 따라서 심리에 관여한 재판관 수가 9명이면 4인(44.4%), 이번처럼 8명이면 3인(37.5%), 7명이면 2인(28.6%)이 반대하면 인용이 안 된다.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은 대통령 탄핵소추가 재판관 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반대로 무산되고 마는 제도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재판관의 정치 성향에 대한 보도와 추측이 많았던 점도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하는데(헌재법 제4조), 재판관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향성 시비는 재판관 임명 방식 때문에 생긴다.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헌법 제111조).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3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중에서도 적어도 1인은 여당 몫이다. 또 3인을 지명하는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쪽으로 기울어진 재판관이 7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각 재판관의 임기 만료 시점에 차이가 있으므로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만으로 채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더라도, 정치권이 헌법재판관 인사에 개입하는 한 편향성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2025.5.5 현재) /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헌법재판소 재판관(2025.5.5 현재) /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셋째로, 법률 전문가들이 탄핵 결정을 좌우한다는 점에도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헌재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는데(헌법 제111조), 법관의 자격이란 변호사 자격과 같은 뜻이다(헌재법 제5조). 그런데 헌재의 재판은 민·형사 재판과 달리 법률 지식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윤석열 탄핵 선고 요지의 끝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법 위반행위’는 법률 지식으로 판단하더라도 ‘헌법 수호의 이익’이나 ‘국가적 손실’은 법률 지식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으로 판단할 문제다.

대통령 탄핵 사건 외에도 법률 지식보다 국민의 상식적 판단이 더 중요했던 과거 사례에는 행정수도 위헌, 종합부동산세 위헌, 미디어법 합헌, 간통죄 위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헌재는 행정수도 사건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라고 했고, 교원노조법 사건에서 “해직교사나 구직자가 교원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현직 교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했다. 국민의 상식으로도 같은 결론을 내릴지 의문이다.

시민의회로 직접민주주의 강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족수 문제는, 탄핵소추도 법률의 위헌 결정처럼, 국회의 의결을 뒤집으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고치면 된다. 그러나 재판관의 정치 편향성과 자격에 대한 시비는 해법이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구도에서 길이 안 보일 때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다음 개헌 때 ‘시민의회’를 신설하여, 국회의 탄핵소추를 헌재가 기각하면 시민의회에서 최종결정하도록 하면 된다.

헌법재판이란 무엇인가? /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헌법재판이란 무엇인가? /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시민의회’란, 선거로 대표를 뽑아 구성하는 국회와 달리, 시민 중 추첨으로 구성하는 의회를 말한다. 시민의회는 정치 중립성이 필수적인 안건, 헌법 기관 간 또는 정당 간 의견이 심히 엇갈리는 안건, 헌법 기관의 이해충돌 안건 등을 국민의 상식에 따라 판단한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국민 중에서 무작위추첨으로 100명 이상을 선발하여 구성하고, 의원들이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면서 신중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린다. 무작위추첨에서도 생길 수 있는 우연한 편중성을 막기 위해 의원을 반년마다 4분의 1씩 교체한다.

헌법재판관 인사를 시민의회가 결정하면 재판관의 정치 성향에 대한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국회의 정치적 판단과 헌재의 법률적 판단이 엇갈릴 때 시민의회가 상식적 판단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헌법재판관이 법률 전문가라는 점도 문제가 안 된다.

시민의회를 도입하면 단지 헌재만이 아니라 다른 정치제도의 결함도 보완할 수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과 법률안 거부권의 행사,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기관장의 인사 등에서 시민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해소된다. 국회에서 의결한 안건에 대해서도 국회의원 일정 비율 (예를 들면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할 때 시민의회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면, 이번 계엄 선포의 핑계였던 여소야대 국회의 ‘횡포’도 근거가 사라지고, 국정을 농단해온 거대 양당의 카르텔도 막을 수 있다. 국회의 이해충돌 사항인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국회의원에 대한 처우도 국회가 아니라 시민의회에서 정한다.

우리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선출된 대표 또는 전문가가 일반 국민보다 더 우월하다는 전제 위에 정치제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국민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비대면 토론도 쉽게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이런 엘리트 중심의 간접 민주주의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직접 참여를 대폭 늘려서 상식이 우선하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보완 설명] 거대 양당이 정치권을 복점(複占)하고 그로 인해 국민 여론도 양극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시민의회에서 숙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이성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합니다. 필자의 다음 칼럼을 참고해 주십시오. <계엄-탄핵 사태, 정치개혁이 더 절박해졌다> 평화뉴스 2025년 1월 1일. https://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467

[김윤상 칼럼 150]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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