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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시장도, 지도자 아닌 심부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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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정책 결정과 갈등 해결에 국민 결정권 확대해야

해방 80년, 대의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

오는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이 되는 광복절이고 정부가 수립된 지 76년이 되는 날이다. 1948년의 제헌헌법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가 제2조에 명시되었고(현행 헌법에는 제1조 제2항),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보통선거로 뽑았을 때, 당시 국민은 자긍심에 가슴이 뿌듯했을 것이다.

그런데 80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면서, 주권재민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대의민주주의의 결함 때문에 수시로 나라가 망가졌고, 국민이 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회비용을 치러왔다. 1960년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월 혁명, 군사독재 정권에 맞섰던 험난한 저항, 2016년 박근혜 정부를 퇴진시킨 '촛불혁명'이 그 증거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대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17번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대구시국대회' / 사진·편집. 평화뉴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대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17번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대구시국대회' / 사진·편집. 평화뉴스

선거를 통해 성립된 정부가 국민과 괴리되는 원인을 두 가지만 꼽자면 공직자 선출 방식의 문제와 ‘주인-대리인 문제’를 들 수 있다. 둘 중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1등만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 및 다양한 정당의 등장을 가로막는 정당제도가 선출직의 국민 대표성을 해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가 다른 칼럼(<윤석열 1년, 국민의 실망>)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주인-대리인 문제: 위임자를 존중하지 않는 수임자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란 업무 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이 위임자의 의사와 이익을 존중하지 않는 문제를 말한다. 이 용어를 ‘위임자-수임자 문제’라고 번역했다면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주인-대리인의 예로, 정치·행정 분야에는 국민-선출직·행정관료가 있고 다른 분야에도 주주-CEO, 환자-의사, 의뢰인-변호사 등이 있다.

지난달 필자의 칼럼[참고 칼럼 2]에서 다루었던 박정희 동상 관련 갈등은 위의 두 가지 원인을 잘 보여준다. 대구시장은 물론이고, 시의회 의원 32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선출직의 구성이 대구시민의 정당 지지율과 매우 다르다. 동상 건립을 제안한 홍준표 시장은 이런 의회를 통해 근거 조례를 제정해놓고는 합법성을 갖추었다고 자만한다.

현재와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는 효율성과 전문성 때문이라고들 한다. 국민이 매번 직접 모여서 국정을 논의하기 어렵고, 실무는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처리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국민이 온·오프라인으로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국민의 교육 수준과 사회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더구나 공공 업무 중에는 전문성보다 상식적 판단이 더 중요한 의제가 많다. 선거로 당선된 시장과 의회 의원이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낡은 대의민주주의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대구시에서는 <민선 8기 2주년 시정 성과: 대구 혁신 100+1>이라는 백서를 7월 1일 자로 펴냈다. 홍준표 시장 취임 후 시정 전 분야에 걸쳐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100가지 ‘성과’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자랑하는 내용이다. 백서의 ‘성과’ 중에 논란이 많은 정책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대구경북행정통합 외에도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제2 대구의료원 설립 포기, 맑은 물 하이웨이, 금호강 르네상스, 군위군 소형 원자로 도입 등이다. 이런 정책은 그 수혜/피해의 직접 당사자인 시민이 결정해야 하지 않나.

"군위 소형원전 SMR 건설 계획 철회하라" 기자회견(2024.6.19.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군위 소형원전 SMR 건설 계획 철회하라" 기자회견(2024.6.19.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공론화위원회와 시민참여단

새로운 시대에 맞춰, 정치·행정 분야에서 대표성 문제와 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아이디어 하나를 필자가 지난달 칼럼(<박정희 동상’ 건립 갈등, 공론화위원회로 풀자>)에서 제시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박정희 동상 건립을 강하게 추진하고 시민사회가 이를 거세게 비판하는 상황에서, 갈등 해결을 위해 시민 중 무작위로 100명을 뽑아 숙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자고 제안하였다.

사실은 지금도, 필자의 제안처럼 중요 정책 방향 결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제도가 있다. 대구시는 2015년에 <대구광역시 공공갈등 관리 및 조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고, 2019년에는 이를 개정하여 ‘공론화위원회’의 근거를 명시하면서(제18조)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을 구성할 수 있게 하였다(제27조). 필자가 지난달 칼럼에서 제안한 바로 그 방식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성과를 낸 좋은 예가 ‘대구시 신청사 이전’ 문제다. 이에 대해 공론화위원회 김태일 위원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이 십수 년 이상 미루어졌던 것은 갈등 관리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극적으로 해결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대구시민 전체가 일 년에 걸쳐 숙의, 공론을 한 후, 시민을 대표하는 평가단이 매듭을 지었다. 그 결론의 수용성은 놀랄 정도였다. 경쟁 지역 어디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회통합적 의사결정이었다."(출처: 김태일, "대구시 신청사 건립에 다시 힘을", <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2023년 10월 25일)

필자도 이 평가에 동의한다.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이 시대의 선출직 공무원은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받드는 심부름꾼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여 공직자 구성이 국민의 선택에 비례하도록 만들고, 아울러 중요한 정책 결정과 갈등 해결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참고 칼럼 1] <윤석열 1년, 국민의 실망><평화뉴스>(2023.5.1)

[참고 칼럼 2] <'박정희 동상' 건립 갈등, 공론화위원회로 풀자>(2024.7.1)

 

[김윤상 칼럼 141]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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