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노동' 윤석열 정부가 던진 근로기준법 개편안이 '과로사회' 화두를 불러왔다.
일하다 다치고 숨지는 노동자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년 동안 산업재해 사망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로 오명을 벗지 못했다. 최근 3위로 떨어졌다고 해도 일터의 부고는 끊이지 않는다. '사고사망만인율(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 비율)'은 OECD 평균 0.29의 2배 수준인 0.42이다.
대구지역 노동자들이 정부 근로기준법 개편에 반대하며 과로노동 현실에 대해 밝혔다.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본부장 이길우)는 12일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과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창률 공공운수노조 쿠팡대구물류센터분회장, 손영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대구경북지역본부 서부지부장, 박재현 공무원노조 대구지역본부 교육국장이 발제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과로 증언
"하루 평균 1만8,000보에서 2만보를 걷는다.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물품을 집거나 들어 토트에 담는 작업을 수행한다. 제대로 된 휴식시간 없이 집중노동을 하다보니 산업재해로 이어진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 이창률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대구분회장의 말이다.
쿠팡 물류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기준) 건수는 지난 2020년 239명에서 2021년 332명, 2022년 8월까지 373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산재 승인율은 2020년 224건, 2021년 297건, 2022년(8월 기준) 345건으로 같이 증가하고 있다.
119 구급 환자는 하절기에 집중됐다. 소방청이 제출한 '쿠팡풀필먼트 119 출동 자료'에 따른 분석이다. 냉방장치가 없는 쿠팡 물류창고 현장 특성상 노동자들에게서 잦은 온열질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 분회장은 "노동강도가 집중적으로 몰리는데 반해 휴식시간이 부족해 과로노동이 발생해 산재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 분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간을 개악하면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휴식시간이 부족해져 더 위험한 노동환경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물노동자 과로 증언
2021년 8월 11일 오후 2시 57분쯤 경북 칠곡군 동명면 중앙고속도로 부산방향 동명휴게소 인근에서 승용차와 승합차, SUV, BCT 등 8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에 이송됐다 2021년 중앙고속도로 8중 추돌사고다.
25톤 BCT(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화물 차량이 서행 중이던 차량을 들이받는 8중 추돌 사고다. 화물트럭의 과속으로 인해 전방 주시를 못해 사고가 났다. 지난 2020년엔 순천완주고속도로에서 화물 탱크트럭이 넘어져 31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5명이 숨지고 43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은 화물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지목됐다. 일의 특성상 일반 시민과 함께 공유하는 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대형 인명 사고가 많다. 주요 품목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14시간, 월 340시간이다. 고용노동자 실태조사 전체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의 2배다. '안전운임제도'가 시행된 컨테이너, 시멘트 품목을 빼면 나머지 품목은 전체 노동자 평균에 비해 월 175시간 더 일한다.
문제는 임금 구조다. 정해진 임금 없이 건당 운송료를 받아 한달 수입이 결정되는 '화물운송시장 운임구조'에서 건당 운임이 실제 지출되는 비용에 비해 굉장히 낮게 책정돼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 과속이나 졸음운전 등 위험한 운행이 만연한 이유다.
손영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대구경북지역본부 서부지부장은 "일상적인 과로에 시달리다보니 졸음운전 등 위험한 운행이 많다"고 밝혔다. 또 "화물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생계 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수입을 벌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운임제도 전면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노동자 과로 증언
경북 문경시 유통축산과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농업직 공무원 A(54)씨는 퇴근 후 집에서 잠을 자던 중 새벽에 위독한 상황이 되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지난 2022년 7월 5일 숨졌다. 사인은 급성심정지다. A씨는 숨지기 전 1년 동안 초과근무 시간이 600시간에 육박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렸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서 지난해 발생한 대형산불 지원 업무로 숨지기 전까지 5일 연속 비상근무를 선 소방경노동자 B(48)씨. 숨지기 전 2년간 월5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했다. 대구 성서우체국 집배송노동자 C(40대)씨는 설 명절 물량이 늘어나면서 지난 2022년 1월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2021년까지 5년간 공무원 재해 현황을 보면, 공무상 사망자는 341명이다. 과로사로 인정받은 사람은 113명으로 인정율은 33%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는 35명(10%)으로 적지 않다.
박재현 전국공무원노조 대구지역본부 교육국장은 "평상시에도 초과근무만 월 평균 150시간에 달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과로가 일상화됐다"며 "OECD 국가와 비교해 최저 수준인 공무원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업무 부담을 줄이고, 악성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 상사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또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주 69시간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공무원 과로사, 과로 순직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한국 사회를 과로사회로 만들지 말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안전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 의견
노무법인 '함께' 김세종 노무사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며 "예외적으로 당사자 동의를 얻은 경우에 주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법 하에서도 과로노동과 과로사가 발생한다"면서 "일부 회사는 주52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니 52시간까지만 기록하고 초과근로에 대해서는 별도 수당을 지급하는 탈법과 위법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장시간 노동, 집중노동이 가능해져 질병과 사망에 이를 수 있고 몰아서 쉬는 게 아니라 몰아서 병원에 가거나 귀가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면서 "연장노동을 부추겨 휴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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