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습지식물원을 만들려고 우포늪 사지포 쪽에 있는 물꽃식물원을 찾았다. 이 식물원은 가꾸신 김용원 교수님은 계명문화대 원예학과 명예교수시고 창녕에서 10여 년 동안 습지식물원 가꾸셨다. 원예치료의 지평을 열고, 수많은 식물도감을 펴내셨고 대구수목원에 유명한 빅토리아 연을 심으신 분이시다. 물꽃식물원을 걸으면서 생태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962년 출판된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이 마지막까지 완성하고 싶었지만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망한 후 출간된 책 [센스 오브 원더]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어릴 때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평생 아이들을 지켜 줄 ‘착한 요정’을 곁에 두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생태적 감수성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이나 교사, 부모가 귀를 쫑긋해야 할 대목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무려 2시간 반이 넘도록 식물원을 다니며 식물 이야기를 들으며 경탄했다. 정작 학교 고무 함지박에 심을 습지식물 이야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도 나지만 요즘 온갖 식물을 구해서 베란다에서 키우는 아내가 더 경탄했다. 선생님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 성직자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강의를 듣고, 우포늪을 걷는 연수를 하시도록 부탁드렸다.
집으로 돌아와 책의 서문을 읽어보았다. '카슨은 이 시적인 산문을 통해 우리가 평생에 걸쳐 놀라움의 감정을 어떻게 길러나갈 수 있는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연에 대해 느낀 생생한 감동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자연과 거리가 멀어진 채 지내기에 십상인 일상에서 자연에 대해 놀라움과 경외감을 어떻게 잃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전해준다'라고 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랫동안 생태교육을 실천해 본 초등교사라면 알고 있다. 나도 말과 글로 자주 쓰는 말이다.
카슨은 자연을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연과 사귀라고 권한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한 풍부한 정서는 자연에 대한 지식과 지혜로 확장되는 씨앗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린이 시절은 그런 기름진 땅을 준비할 시간이다. 카슨은 조카의 아들과 함께 밤바다에 나가고 울창한 숲속을 따라 산책하고, 야생동물이나 이름 모르는 식물을 관찰하고, 밤하늘을 천체를 바라보고 폭풍우를 감상하고, 덤불 속 벌레의 ‘생생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어릴 적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우리 삶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강조했다.
이런 경이의 감정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지가 어린 시절에 판가름 난다고 믿었다. 그걸 카슨은 아이들을 평생 지켜줄 ‘착한 요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착한 요정, 수호성인이 있어서 늘 나를 지켜준다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카슨은 어린이에게는 자연에 대한 경이의 감정을 함께 나눌 어른이 필요하고, 어른에게는 그 감정을 되찾게 해줄 어린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 어린이를 평생 지켜 줄 ‘착한 요정’을 만들어주는 생태교육을 할 어른이 필요하다. 생태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가 필요하다. 특히 그런 교사 어른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를 겪고, 기후위기가 우리 코앞까지 닥친 것인지 모른다. 이 모든 위기는 레이첼 카슨이 책을 낸 지 60년 동안 우리가 카슨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도시의 학교에서 이런 ‘착한 요정’을 만들어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안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서는 생태전환교육과정을 적용하고, 학교 주체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고, 대구에서 한 번도 실시해 보지 않은 학교혁신 모델을 만들어 보자고 십수 년째 주장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작은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며칠전 밀양 밀주초등학교읫 생태운동장 사례가 교육방송 뉴스로 보도되었다. 밀양 구도심 6학급 학교가 2년만에 11학급으로 늘었다. 어떤 공동주택이나 도시계획 같은 개발이 없이 단지 교육과정 혁신으로만 학급이 늘어났다고 한다. 대구에서도 그린스마트미래학교, 대구미래학교, IB학교 등을 적용하고 있으니 이런 모델학교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팔공산 파계사 아래, 마을회관에 서촌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비상하게 모였다. 자녀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를 교육청이 폐교하겠다는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우동기 교육감 8년 동안 행복학교 모델로 자랑한 3개의 학교가 가창초 서촌초, 유가초였다. 그중 유가초는 신설 학교로 교명을 옮기며 폐교되었고, 지금 유가초는 대구에서 가장 큰 초거대과밀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대동초를 폐교해서 교육박물관을 만들고, 조야초는 작년에 분교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다시 대구교육청이 작은 초등학교를 차례로 폐교하거나 분교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기본적으로 통학 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중학교 통폐합은 대부분 가까이에 있는 학교를 남녀공학으로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크지 않아 저항이 거의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마을의 중심이고, 삶의 기억이 담긴 역사박물관이고, 아이들을 키우는 미래이다. 그런데 도심도 아니고 대구 변방의 작은 학교를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통폐합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천박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작은 학교를 유지하려는 것은 또래 형성(놀이, 다양성, 사회성)이라는 학부모들이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활동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다. 교육(시설)환경이 나쁘다. 교육청의 예산 지원을 제한받을 수도 있다. 학교가 작아서 우수한 강사진을 구하지 못한다. 동학년이 없어서 교사들의 협력할 수 없다. 한 교사가 여러 교과를 지도하게 되어 전문적 지도를 받기 어렵다. 교사들의 업무량이 많아서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없다.'
이런 논리는 금방 반박당할 수 있는 수준 낮은 논리이다. 거꾸로 작은 학교여서 좋고, 가능한 장점을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장단점이 있다. 어떤 곳에 살지,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는 학생 교사의 몫이다. 학생이 어디 살든지 국가는 학생에게 최적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런데 교육청은 이미 폐교 아니면 분교라는 것을 결정해 놓고, 학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결정을 전달하고 폐교로 몰아가고 있다. 폐교가 안 되면 분교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을 텐데 그래도 좋으냐? 서른 명으로 교육력을 높일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것은 학부모들에게는 협박으로 들릴 것이다.
어설프고 천박한 논리를 펴지 말고, 솔직하게 교육재정이 어려워서 본교로 유지하기가 어렵다거나, 교육부가 신설 학교 승인 조건으로 폐교를 강제하고 있어서 버티기 어렵다고 말해야 한다. 설사 분교나 폐교로 가더라도 몇 년의 시간을 두어 학교를 되살릴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래도 어려우면 학생들의 교육권은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말해야지,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을 텐데도 고집할 거냐고 말하는 것이 어찌 교육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더구나 대구교육청의 정책을 믿고 이사까지 온 부모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이 교육자인 양 말한 것이 천박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같은 대구지만 달성군의 읍면이나 팔공산 아래 학교 같은 경우는 농어촌 지역임에도 획일적인 도시학교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군위군이 대구에 편입되면 도시 기준을 적용해서 모든 학교를 통폐합할 것인가? 군위군 학부모들이 불안해서 대구 편입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인가?무엇보다 우동기 교육감은 유가초, 대동초 통폐합으로 홍역을 앓고 난 다음 통학 거리나 학부모 찬성이 없으면 초등학교 통폐합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더구나 통폐합을 한다고 손 치더라도 3년 예고제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강은희 교육감이 전임 교육감의 행복학교 정책을 뭉개고,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에 대해 강 교육감이 정책 판단을 했는지 묻고 싶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적정규모 학교라는 기준을 만들어 작은 학교 통폐합 정책을 밀어붙일 당시 나는 국회 토론 등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적정 학교 규모라는 말은 타당할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적정규모라는 것이 학자에 따라 그 차이가 엄청나다. 300명 이하라는 연구와 400명 이상이라는 연구의 극단적인 차이는 결국 학교라는 곳은 퍼덕거리는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며,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 학생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곳으로 획일적인 적정규모라는 것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임의로 ‘적정’하다는 기준을 정해서 모든 학교를 그 기준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은 교육계 4대강 사업일 뿐이다.
흰수마자 물고기는 내성천 모래 강에서 살아야 하고, 잉어는 3급수 물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살지 않지만 강 생태계는 핏줄처럼 서로 이어져 하나의 공동의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다. 교육을 획일화하면 인간의 생태계는 심각해진다. 학교의 크기와 상관없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여도 각자 지구별에서 서로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하나의 생태계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삶은 이어져 있다. 작은 학교 통폐합에 앞서 작은 학교에 대한 교육철학을 점검하고 확인해서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단지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다."
나는 유가초와 대동초 통폐합을 막으려고 엄청난 논쟁과 물리적 충돌을 겪는 일에 앞장섰다. 그래서 제안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방식을 충분히 적용해야 한다. 교육감이 나서서 얼마나 절박했으면 교육청 정책을 믿고 이사까지 가면서까지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했었는지에 대해 학부모들의 호소를 듣기 바란다. 그리고 공청회, 전문가 토론회 등을 열어서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전국적인 성공사례를 연구해서 대구에도 적용해 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다시 논의하자. 이게 어려운가? 교육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임성무 칼럼 4]
임성무 / 대구 화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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