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투쟁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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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김선우 / "지금 필요한 건 우리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2011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현장' 활동가 4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사람들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가 남다른, 꽉 막힌 남북관계 속에도 '통일'을 꿈꾸는 김두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20년 긴 투쟁으로 '가야산 골프장'을 막아내고, 몸살 앓는 '4대강'에 가슴 아픈, 창립 20돌 맞은 대구환경운동연합 공정옥 사무처장 ▶'불모지' 대구에서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무상급식' 조례제정운동을 편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고엽제' 때문에 왜관 미군부대 근처에서 수 개월, 그리고 '한미FTA' 날치기에 분노하고 있는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김선우 집행위원장의 소회입니다 - 평화뉴스


2011년도 끝을 향해 간다. 올해를 돌아보았을 때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참 맞는 듯 하다. 1월부터 시작된 85호 크레인으로 상징되는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투쟁을 승리로 만들었던 희망버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평화 비행기, 왜관 캠프캐럴 고엽제 불법매립뿐만 아니라 전국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 4대강 죽이기의 대명사 댐(보) 건설, 결국 올해의 마침표를 찍은 한미FTA 날치기 통과까지...

사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많은 투쟁의 현장과 싸움의 공간에 서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늘 반복되듯이 1년의 스케줄에 따라 2011년을 시작하였으나 오늘 개인 달력을 보니 결국 2011년의 마지막도 투쟁과 함께 보내야 할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왜관 캠프캐럴 고엽제 싸움은 나 스스로 돌아보아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2011.5.25 캠프 캐럴 앞)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2011.5.25 캠프 캐럴 앞)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한나라당과 보수 일색의 칠곡 왜관 땅에서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마저 없었다면 참으로 외로웠을 것이다. 사무공간이나 일할 공간 하나 없는, 같이 의논할 사람 하나 없는 왜관에서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이렇게 수도원안에서 같이 밥 먹으며 의논하며 조금이나마 생활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다. 그러나 이제는 늘 엄숙할 것 같은 신부님, 수녀님들과 스스럼없이 인사하며 농담을 건넬 정도가 된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 놀래곤 한다.

처음에 왜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빨갱이’, ‘외부세력’ 이었다. 왜관 주민들 입장에선 당연히 그럴 법도 할 것이다. 그러나 왜관 고엽제 싸움은 ‘외부세력’인 우리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이 직접 나서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싸움이다. 결국 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직접 왜관 주민들을 만나면서 고엽제 싸움의 진심을 얘기하고 문화제도 같이 하고 유인물도 뿌리고...

그랬더니 ‘아! 이렇게 하니 간극이 좁혀지는구나.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대구에서 단체 상근자들과 회원들을 상대로 얘기하고 교육하는 것보다 좋았던 것은 매일 왜관을 갔을 때 무엇인가 할 일이 늘 존재하고, 내가 하는 만큼 일의 전진이 있는 것을 매일 확인하는 것이 좋았다.

낙동강변에 나가보기도 하고, 뙤약볕에 칠곡경찰서까지 집회신고를 하러 가기도 하고, 캠프캐럴 기지 둘레를 세시간에 걸쳐 걸어보기도 하고, 왜관수도원 미사에 참석도 해 보고... 물론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이 왜관에만 가 있으니, ‘왜관진보연대’, ‘칠곡진보연대’라는 호칭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왜관에서의 시간이 7개월이 흘러갔다.

'생명의 야단법석'이라는 주제로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에서 열린 주민문화제(2011.06.24)...종교인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지역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과 공연 순으로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 사진. 평화뉴스
'생명의 야단법석'이라는 주제로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에서 열린 주민문화제(2011.06.24)...종교인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지역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과 공연 순으로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 사진. 평화뉴스

왜관 캠프캐럴 고엽제 문제는 지역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는 문제이다. 한미관계의 불평등과 굴욕, 정부의 무책임성, 미군의 말 돌리기와 거짓말 등과 같은 정의의 문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엽제 그대로 묻어버리고 온갖 화학물질을 여전히 버리고 있는 미군들을 볼 때 생명의 문제,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우리 땅을 지키고 더 이상 미군은 이 땅에 필요없다는 평화의 문제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싸움이다. 이러한 관점에 처음에는 대구경북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정당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군의 시간 끌기, 주민의 결합이 떨어지는 상황, 왜관내에 투쟁을 만들어 갈 동력의 부재 등이 겹치면서 우리에게도 많이 힘겨운 싸움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2011년을 불과 3일 앞둔 12월 28일 한통의 문자가 왔다. 왜관캠프캐럴 고엽제 불법매립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한미합동조사단내에 정부합동지원반에서 캠프캐럴 고엽제 매립에 대한 최종결과 발표를 29일 오후 2시에 하니 참석해 달라는 문자다. 참으로 일 편하게 하는 정부다. 하긴 애초에 국민들의 힘으로 진상을 규명하기보다는 미국의 눈치만 보면서 조사를 진행한 정부이니 이렇게 보내준 문자마저 고맙다고 해야 할까? 왜관 캠프캐럴 기지내에 고엽제가 불법매립되었다고 알려진게 5월 19일이니 만으로 7개월하고도 9일이 걸려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단다. 이미 캠프캐럴 내에 고엽제가 없다고 미국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올해를 이틀 남겨두고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결국 고엽제 불법매립의 문제를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게 더욱 답답한 문제다. 늘 내 조직의 문제가 먼저이고 내 사안이 먼저이듯이 이렇게 왜관 고엽제 진상규명 싸움도 우리의 일정 속에,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사안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된 12월 22일 저녁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날치기 규탄' 집회...200여명의 시민들은 "한미FTA 무효"와 "이명박 정권 퇴진, 한나라당 해체"를 외쳤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된 12월 22일 저녁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날치기 규탄' 집회...200여명의 시민들은 "한미FTA 무효"와 "이명박 정권 퇴진, 한나라당 해체"를 외쳤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한미FTA 싸움도 마찬가지다. 한미FTA가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협상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물릴 수 없는 래칫조항(톱니바퀴의 역진 방지장치).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 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인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Trips+). 한국 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관세 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스냅백 조항(snapback).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Positive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네거티브 방식 개방(Negative List).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FTA에 소급 적용하는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Future MFN Treatment).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민간 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인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FTA를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 민간기구에 상대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비위반 제소.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제도인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인 공기업 완전 민영화와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등 도저히 국가간의 협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보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국가 주권을 팔아먹은 정권에 대한 분노, 우리의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를 국민들의 동의없이 날치기로 통과시키며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문제, 결국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런 문제다. 이런 시민들이 추운 겨울 거리로 나서고 있다.

왜관도 그렇고 한미FTA도 그렇다. 늘 우리의 기준과 잣대로 모든 것을 규정하는 순간 싸움은 힘들어진다. 나꼼수에 왜 국민들이 열광하는지, BBK 허위사실 유포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구속에 국민들이 왜 분노하는지, DDOS공격에 한나라당이 왜 지레 겁을 먹고 당 쇄신과 재창당까지 선언하는지... 이런 부분을 잘 알아야 한다. 물론 이런 싸움은 먼저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자리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이 우리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성경 창세기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청하기를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망을 면할 수 있었으나 의인 10명이 없어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2011 송년] ④
김선우 /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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