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째 고문 악몽"...대구 5.18 피해자들, 국가 상대 손배소송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1.11.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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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민주화 운동 대학생들, 영장 없는 불법구금·고문
5.18유공자 인정에도 '정신적 피해' 배상 없어...헌재 "위헌"
16명 대구지법서 소송 "전두환·정부 공동불법, 국가 책임"


"각목을 잘라 무릎 뒤에 끼워 고문수사관들이 위에서 눌렀다. 손가락에 불펜을 끼워 짓이겼다. 대공분실에 끌려가 마구 구타했다. 가족들, 친구, 친구 가족 할 것 없이 주변인들을 잡아가 괴롭혔다"   

1980년 5월 대구 계명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김진태(67.대구 수성구)씨는 복학생으로 대학에 돌아와 학내 민주화 운동을 했다. 학내 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번졌다. 김씨와 계명대 학생들은 5월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총학생회장 등 관련자들은 현장에서 잡혀 제50사단 합동수사본부(합수부) 끌려갔다. 김씨는 피신했지만 6월 경찰에 붙들려갔다. 
 
대구 5.18 피해자 김진태씨의 5.18민주유공자증(2021.1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5.18 피해자 김진태씨의 5.18민주유공자증(2021.1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3일 김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먼저 잡혀간 친구들과 본인 모두 신세는 같았다. 영장 없이 끌려가 최장 2개월 가량 경찰의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 속에서 자백 강요를 받았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가담했다거나, 대구지역 시위 관련자들을 모두 불라는 핍박이었다.  

구속 영장은 7월에서야 나왔다. '계엄포고위반', '소요죄' 등 혐의가 재판에서 인정돼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수감됐다. 불법구금과 고문은 인정되지 않았다. 80년 5월 전두환 군사정부의 탄압은 광주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갓 스무살이 된 대학교 1학년을 포함한 대구지역의 많은 청년들은 40년 지난 지금도 5월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감옥은 24시간 365일 불이 켜져있다"며 "지금도 그 악몽을 꾼다. 끌려가서 맞고 소리지르고.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면 불 없는 깜깜한 방을 보고 안도한다. '아 감옥이 아니구나'하고. 빛이 없는 어둠에서 안정을 느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40년째 똑같다"고 말했다.  
 
김진태씨가 1980년의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2021.1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진태씨가 1980년의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2021.1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5.18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선다. 김씨를 포함한 대구 5.18 유공자들과 가족 등 16명은 25일 손배소송을 한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맑은뜻'의 김무락·김승진·강수영·정성윤 변호사가 맡았다. 피고는 대한민국, 법률상 피고는 박범계 법무부장관이다. 이들은 오는 26일 대구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장을 접수한다.

'5.18보상법(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이들은 고문 등으로 인한 물질적 피해에 대해서는 이미 보상 받았지만,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받지 못했다. 법률 항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손해를 온전히 보상받지 못했다는 게 이번 소송 배경이다. 이에 대해 전국 5.18 피해자들은 위헌법률심판제청(5.18보상법 제16조 제2항)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국가배상청구권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5.18보상법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가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5.18 피해자들은 대구지역에서만 100여명, 전국에서는 수 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대학교와 경북대학교 등 대구·경북지역의 다른 5.18 피해자들도 비슷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정신적 손해 배상 않은 것은 위헌"...헌법재판소 결정문 / 자료 제공.법무법인 맑은뜻
"정신적 손해 배상 않은 것은 위헌"...헌법재판소 결정문 / 자료 제공.법무법인 맑은뜻

김씨는 "전두환을 심판대에 세워 40년째 이어진 고통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싶은데 갑자기 사망해 죄값을 못 묻게 됏다"며 "국가라도 배상하라"고 했다. 김무락 변호사는 "전두환 신군부뿐 아니라 당시 공무원들과 정부가 공동으로 불법행위을 한 것"이라며 "위헌 결정으로 법률상 문제가 없어진만큼 지금이라도 국가가 이들의 기본권을 짓밟아 정신적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무법인 '맑은뜻'은 지난 24일 보도자료에서 "5.18 당시 대구도 광주만큼 치열했다"며 "이 소송을 통해 5.18의 가치가 상식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맑은뜻은 이번 소송 피고로 대통령을 지낸 고(故) 전두환씨를 포함시키려 했으나, 소송을 앞둔 지난 23일 전씨가 숨지면서 피고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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