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나온 극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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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 김하현 번역 | 한겨레출판사 | 2021)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극단주의자들과 마주친다. 출근길 혹은 등굣길에서, 기차역 광장에서, 번화가의 집회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을 만날 때마다 회피하거나, 대화를 꺼려왔다. 일상 속의 짜증을 그들에게 전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발심이나 적대감만큼 그들에 대한 탐구심이나 궁금증도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현재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여러 극단주의에 관해 다룬 율리아 에브너의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반(反)극단주의자인 저자가 직접 극단주의 집단에 잠입하여 그들을 몸소 고찰한 일종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 특정 집단 구성원의 삶의 방식, 행동 등을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기술하는 연구 방법)이다. 책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나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처럼 종교적 극단주의와 네오나치즘, 안티페미니즘과 같은 인종·성별적 극단주의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대적 기술과 반현대적 목표

책에서 다루는 2010년대의 극단주의자들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극단주의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들은 홍보전단이나 벽보를 만들어 붙이지 않았고, 한날한시에 어딘가에 모이지도 않았으며, 일반인은 접근·해독할 수 없는 암호체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와 같이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획득·전파하고 나와 같은 메신저앱을 사용해 소통한다. 심지어는 그 누구보다 유튜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독일의 극우모임인 ‘레콘키스타 게르마니카’는 2017년 총선을 앞두고 거짓 정보와 반(反)메르켈 밈, 극우 해시태그를 소셜미디어 상위트렌드로 올려놓았으며,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콘텐츠의 도달범위를 최대화하고 주제를 실제보다 더 중요해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중에서)

이들의 목적은 온라인의 여론을 자신들이 지지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에 유리하게끔 바꾸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한 극우 유튜버를 정신적 지향으로 삼고 디스코드(음성채팅 프로그램)를 통해 마치 한 편의 게임을 플레이하듯 활동을 이어간다. 각자의 기여도에 맞는 등급이 책정되고, 활동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 극우유튜버가 각 구성원을 독려하여 소속감을 고취시키고, 자신들의 활동이 실제 정치현실에 구현되는 모습을 통해 충성심은 한층 강해진다.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율리아 에브너 지음 | 김하현 번역 | 한겨레출판사 | 2021)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율리아 에브너 지음 | 김하현 번역 | 한겨레출판사 | 2021)

홍보전단, 집회, 암호와 같은 과거의 유산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그동안 내가 극단주의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사회와 격리되어 신문물에 어두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SNS, 빅데이터, 알고리즘, 핀테크, 인공지능 등 동원가능한 모든 IT 기술을 활용하여 온라인 세계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 유명 IT기업은 그들에게 패배했거나 그들을 방관했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과 타깃 조종에서 사용자를 보호하지 못했고, 트위터는 가짜 프로필과 봇 네트워크가 일으킨 허위 정보 캠페인을 무시했으며, 유튜브는 극단주의 콘텐츠와 폭력 선동 콘텐츠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유튜브에서 다양한 극단주의 영상들을 추천받게 되었고, 페이스북에서 일부 사람들이 서슴없이 쏟아내는 극단주의적 발언들을 일체의 필터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중에서)

'이대남'이라는 극단의 문턱에서

책장을 넘길수록 그동안 내가 극단주의를 너무나 먼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극단주의가 나와는 전혀 다른 집단이며 그저 역 앞에서 말을 섞지만 않으면 그만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서 소개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성별, 연령,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범위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었다.

20대이자 남성이자 대학생인 나는 자연히 ‘이대남’이라는 신조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대남’은 ‘20대 남성’의 줄임말로 일각에서는 남녀평등이나 공정 이슈에 관심이 많은 20대 남성을 비꼬는 혐오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성평등 혹은 공정한 소득분배를 보장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로 인해 발생하는 역차별에 크게 분노하고 심지어는 타자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총력전적 테러리즘을 자행하고 사안에 따라 다른 극단주의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대남’이 저자가 서술한 극단주의자들과 다르지 않게 느꼈다.

'이대남'의 형성과 활동은 2010년대부터 부각된 ‘디씨’, ‘일베’ 등 청년층 중심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와도 맥을 같이한다. 2010년대에 남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나는 어떻게 보면 ‘이대남’에 해당하는 세대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셈이다. 실제로 당시에 학교나 군대 동기들 중에도 남초 커뮤니티 활동을 개선장군의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풀어놓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의 주장 중 극히 일부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방심했더라면 나도 그들 중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무서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 속의 극단주의

언제든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극단주의가 있고 그들의 수법은 교묘해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극단주의에 동원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극단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됨을 상기시킨다.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는 나 스스로가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준 책이다. 극단주의가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양상을 알아야만 나부터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고, 극단주의를 예방하는 데에 앞장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무엇이 극단주의인지, 극단주의를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러 반면교사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도록 돕고 있다. 나 또한 나의 행동이,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극단주의일까 스스로 되물어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사범대학 졸업을 앞둔 교원임용시험 준비생이다. 교사가 된다면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기본법의 조항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극단주의에 휩쓸리지 않게끔 보호하고 바르게 지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사회교과를 지망하고 있는 만큼 뉴스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어젠다 중 어떤 것이 극단주의적이고 아닌지를 판단해야만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이 좋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 혹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이 극단주의인지 판단해보고 싶은 사람, 혹은 우리 사회에서 접하는 수많은 극단주의의 메커니즘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 속의 길] 221
조재현 / 대학생. 경북대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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