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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우연히 순이삼촌을 만나다
박인규 / 『순이삼촌』 ( 현기영 | 창비 | 1979 초판, 2023 개정판)
2023년 08월 31일 (목) 15:17:21 박인규 pnnews@pn.or.kr

우연히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겼다. 한달 전, 지난 1년간의 연구활동과 연구의 결과로서 새로 제정할 조례안을 발표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제주도에서 마을공동체 단위를 기반으로 하는 마을공동돌봄 제도를 만들어보려고 자치조례를 새로 제정할 모양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의원, 공무원, 제주지역의 아동, 장애,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1년 동안 토론하고, 다른 지역의 사례도 살펴보며 공부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대구 변방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 뭔가 잘못 알고 연락하신 것은 아닌지 다시 되물어 보았다. 대구의 안심마을 이야기를 들으려고 초대하는 것이 맞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가겠노라고 했다.

토론용 자료로 조례안을 받아보고 놀랐다. 사람의 살이를 중심으로 한 ‘마을’, ‘마을공동돌봄’ 등과 같은 주요한 개념들은 다른 지역의 어느 조례보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어느 법령보다도 더 확장된 개념이었고, 처음 세상에 나오는 법규로서의 말들이었다. 이런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던 희망사항과 그를 표현하는 언어들을 제주도는 조례라는 그릇을 통해 세상에 실물로 꺼내놓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는 접고 1년간 수고하신 분들, 나아가 제주가 참 훌륭하다는 칭찬만 하고 와도 되겠노라고 참석여부에 대한 답을 주었다.

제주에 가기 며칠 전, ‘책 속의 길’ 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치매 노인들과 함께 지역공동체에서 좌충우돌 살아온 일본의 어느 지역 노인요양시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몇 년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하는 일과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 요량이었다. 금요일 오후 열리는 토론회는 그 시간이 참 아리송한 시간이었다. 혼자 출장으로 다녀와도 되지만 뒤에 붙어오는 주말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턱에 결국 제주를 가고 싶어하는 둘째아이와 아내와 함께 셋이서 배를 타고 조금은 멀고 느린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목포에서 늦은 밤 출발한 배는 다음날 해 뜰 무렵 우리를 제주에 내려주었다.

오후에 토론회가 있으니 점심 무렵이 지날 때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평일 아침 이른 시간에 갈 곳은 크게 많지 않았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바닷가 마을을 이래저래 둘러보면서 정한 곳 없는 여행을 나섰다. 잠시 아침잠이 든 아이는 삼양해수욕장 옆 단물 샘터에서 세수를 하고 나서야 겨우 잠이 달아나는 듯했다. 그렇게 함덕해변에 와서 맑은 물빛을 본 아이는 달려가서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제주와 4.3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 좋은 아이가 “아빠! 저기, 4.3 그거, 박물관 같은거 있는데!” 하면서 아직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게 일러준다. ‘아. 북촌마을 근처구나’ 하는 생각에 ‘그럼, 가볼까?’ 하면서 북촌초등학교 앞에서 차를 돌렸다. 아직 아이들 등교시간인지라 선생님도 교문밖에 나와 있고, 아이들도 따문따문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 제주 너븐숭이4.3기념관 / 사진. 박인규
   
▲ 제주 너븐숭이 애기무덤 / 사진. 박인규

학교를 지나 아이가 말한 곳에 도착했다. 북촌 너븐숭이로 불리는 4.3의 현장이다. 10년쯤 전에 이곳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인듯 한데 그 새 나무들도 훌쩍 자란 듯 했다. 기념관이 문을 열기 전 시간이라 우리 세식구는 애기무덤을 보고 위령비에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첫 방문객으로 기념관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지금의 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든 슬프고 아픈 역사와 그 안에서 희생당하고, 또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에게는 물론이고 아내에게도 생소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현기영 작가와  소설 ‘순이삼촌’을 만났다. 십년보다 더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도 순이삼촌의 이야기를 대강 들었다. 그런 후에는 ‘순이삼촌’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계획에 없던 이곳에 홀연하게 들러 순이삼촌을 만났다. 이틀 후에 집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저기 한라산 중턱에 있는 4.3 평화공원에 잠시 가보기로 한 것이 그나마 4.3에 대한 우리 계획의 전부였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 섬에 발을 디딘지 두어시간 만에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서는 흘러 온듯이 그저 흘려 보고 떠나지를 못하고 한참을 눌러 앉아 있었다. 아이는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기록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겠노라고 끝까지 앉아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그닥 재미가 없을 내용일 것이데, 자식이지만 그 속을 잘 모를 일이었다.
 
   
▲ 『순이삼촌』( 현기영 | 창비 | 2023 개정판)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게 인간이란 거지.”(현기영, ⌜제주작가⌟ 22호 73쪽)

기념관 한쪽에는 소설 ‘순이삼촌’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작가 자신의 말도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작가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나오면서 가족들에게 말했다. 며칠 뒤 쓰기로 약속한 책이야기 소재는 치매 노인들의 요양시설 이야기를 담은 책 말고 오늘 본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으로 바꿔야겠다고.

그날 오후, 내가 도의회에서 토론회에 참석하는 시간에 아내와 아이는 제주시내에 있는 남문서점을 찾았다. 그리고, 딱 한권 재고가 남은 순이삼촌 책을 샀다.

나는 제주도의회에서 칭찬과 감사, 응원으로 토론의 마무리를 메꾸었다. "제주만 할 수 있는 일, 아니, 제주라서 실제 이렇게 실제 법규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실제 제도를 설계하면서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겠지만, 어쨌든 이런 용어, 개념, 도전적인 상상이 담긴 지방자치 조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제주라는 특수한 조건과 역사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부디 좋은 사례로 잘 만들고 정착시켜서 다른 지역들도 제주를 본보기로 삼아 따라갈 수 있게 해주기를 부탁하고 응원한다.”고 말이다.

그저 공치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이런 개념과 용어들은 소위 육지에서는 자치법규로 실물화 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사는 대구도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돌봄은 이념도 아니고 편을 갈라 싸울만한 꺼리도 아닙니다. 인권, 돌봄 이런 것들은 이념보다 더 너머의 근본에 있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에게 마땅히 있는 것, 사람이 살면서 꼭 필요한 것,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지칭하는 말들은 늘 색깔로 덧칠되거나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립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개념과 상상이 실제 조례나 정책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념의 과잉상황’이라고 봅니다. 이는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제주는 그런 이념의 과잉을 부드럽게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자치의 바탕이 조금 더 튼튼한 이런 환경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부럽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좋은 사례가 잘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정당 저 정당을 막론하고 제주라는 바탕을 깔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느낌은 참 이색적이고 특이하였다. 나는 그런 제주스러움에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1948년 제주에서 비극으로 분출되었던 이념의 과잉은 삼십년이 지나도 사그라 들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들의 입을 붙들어 잡고 있었다. 제주출신의 작가는 그런 시절에 삼십년전 자신의 옴팡밭에서 죽지 않고, 아니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순이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4.3을 세상으로 불러냈다.
 
   
▲ 『순이삼촌』 저자 현기영 선생의 대구 강연(2018.3.31. 대구문학관) / 사진. 정수근

그리고, ⌜순이삼촌⌟ 외에 ⌜도령마루 까마귀⌟, ⌜해룡이야기⌟에서도 작가는 폭도에게 끌려가고 죽임당하고, 토벌군에게 희롱당하고 죽임 당하는 사람들, 너무나 흔해서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져 버리는 4.3의 그 숱한 죽음들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돌을 던졌다. 순이삼촌 등이 실린 소설집 단행본을 출간한 1979년 그해 11월, 작가는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서 삼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한 달 동안 갇혀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과잉된 이념은 삼십년이 지나도 그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를 잡아다가 매질을 해대며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반세기를 훨씬 넘긴 시간이 지나서야 북촌리 너븐숭이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하나가 만들어졌다. 겨우 산 자들과 죽은 자들 모두를 위로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여년이 더 지났다. 4.3에서 75년이 지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잉된 이념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하다. 옛날의 그것처럼 어디로 폭주할지 모를 과잉의 상태는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듯 하다. 무슨 무슨 주의, 무슨 무슨 세력, 자꾸 뭔가를 나누어 이름을 붙이고, 너와 나를 가르고, 우리편과 적으로 사람들을 갈라내는 저 과잉의 정치는 여전히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듯 하다.

이런 과잉이 정치를 넘어 시민사회라고 칭해지는 곳에도 스며있지는 않은지 곱씹어 살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제주에서는 그런 과잉을 조절해 줄 수 있는 힘이 더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제주에서 돌아 온 다음날. 내친 김에 얼마 전 새로 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소설집을 구입했다.
제목이 ‘제주도우다’라고 한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고 ‘제주도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더 이상의 정보는 차단하고, 그냥 책을 보기로 한다.

계획 없이 다다른 그 날 아침의 너븐숭이로부터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일과 배움이 생겨났다.

 
   
 








 [책 속의 길] 220
 박인규 / 안심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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