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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
박성익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펴냄 | 2020)
2023년 05월 03일 (수) 11:15:56 박성익 pnnews@pn.or.kr

여러 사람을 만나며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언제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주인공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겪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고 후반부엔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는 ‘로고테라피’ 이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 몸이 쇠약한 사람보다 건장한 사람이 오래 살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고, 종종 수용소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이 올 거야!”란 소문이 돌다가 막상 그 시기가 되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무엇이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을 살고 죽게 하는가를 찾아가는 빅터 프랭클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생사를 가른 기준은 ‘자기 삶의 의미가 있는가?’의 여부였습니다.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은 이상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해!’, ‘나의 연구를 마무리해야 해!’ 등 반드시 여기를 살아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반면 해방과 관련된 유언비어는 오히려 남아있던 삶의 의지를 잃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프랭클은 해방 이후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고테라피 즉 의미 요법을 만들게 됩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토르 E. 프랑클 지음 | 청아출판사 | 2020)

책과의 인연

저와 이 책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지금은 '아울러'라는 단체에서 나름 정서적 안정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지만 10대 20대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선 늘 손대지 못하는 문제아로 찍혔습니다. 친구들과 싸우거나 야자 땡땡이를 친다면 체벌하겠는데, 기존의 문제아 범주에는 속하지 않은 신종 빌런(?)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다시 그때를 되돌아보아도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당시 학창 시절의 제 별명은 사이비 교주(?)였습니다. 제 손에는 항상 동·서양을 번갈아 가며 철학서가 들려 있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국·영·수 대신 이상한(?) 책을 읽고 쉬는 시간이 되면 혼자 학습한 걸 친구들에게 설교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종교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길 다니며 ‘여기라면 뭔가 제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겠지?’란 기대로 열심히 다니다가 나중엔 가지 않아야 할 사이비 종교까지 찾아다니며 뭔가를 늘 찾았습니다. 20살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발이 자유로워져서 전국에 철학 공부 마음공부 하신다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풀어보려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에 함원신 선생님을 만나며 저의 방황은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당신께서도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고 성익이 너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거 같다.’ 하시며 이제는 절판된 옛 버전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저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전히 답을 찾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방황의 시간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혼자 이리저리 방황하며 ‘늘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더 이상한 길로 빠지는 건 아닐까?’라고 늘 의심하고 부정적으로만 제 삶의 해석하던 저에게, 이 또한 경험이고 다른 시야로 그리고 저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쌓아온 과정이다는 새로운 의미가 저에게 생겼습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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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

책을 읽은 시간 이상으로 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책을 기점으로 이전의 제 삶의 근간이 불안과 부정이었다면 이후로는 매 순간을 밝은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함께 찾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은 아울러를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늘 아울러를 설명할 때 인터뷰를 통해 회복탄력성을 찾는 과정이라 설명해 드립니다. 회복탄력성은 ‘고난 역경으로부터 점프업 하는 힘’이란 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정리하되 살아온 모든 일대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중에서도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순간 의미가 있었던 순간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아울러 인터뷰의 핵심입니다. 막연한 긍정과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살아온 삶의 경험에서 논리적인 근거를 찾고, 찾은 경험을 증폭시켜 지금의 삶에서도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행복을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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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 경험을 나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의 삶은 달라진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의 삶이 달라졌듯이, 다시 아울러를 통해 제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는 게 저의 미션입니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라 늘 자부합니다. 한 자리에서 벌써 12년이란 시간을 서 있다 보니, 아울러를 작은 마음의 고향처럼 종종 찾아와주는 사람들, 그리고 아울러와의 만남으로 다시금 힘을 얻어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큰 원동력입니다.

이전에는 하나의 절대가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회구조였다면, 이제 갈수록 정보공유 속도가 빨라지고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하나의 가치에서 유사한 여러 절대가치가 등장하며 자기 삶의 목적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물론 저나 아울러가 더욱 혼란스러워져 가는 사회에 답을 주는 곳은 아니지만, 함께 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나누어 주는 작은 안식처가 되길 바랍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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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

 
   
 











 [책 속의 길] 218
 박성익 / 아울러사회적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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