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손배' 몰린 해고자 2명, 구미 공장서 이틀째 고공농성 "고용승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4.01.09 17:55
  • 수정 2024.02.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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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투기업 닛토덴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청산
200여명 희망퇴직, 거부한 노동자 11명 1년째 농성
손배소송까지...해고자 2명 9m 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노조 "노동자 생존권 보장" / 사측 "고용승계 불가"


경북 구미시 구포동 (주)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9일 오전 9m 높이의 출하장 위에 4억 손배소송에 내몰린 해고노동자 2명이 이틀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정혜(39)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42) 조직2부장이다.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8일 오전 6시 40분부터 "손배가압류 중지", "고용승계 보장" 등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장 철거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공장 위에 올랐다.
 

고공농성 중인 해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2024.1.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고공농성 중인 해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2024.1.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천막농성 341일차"...공장 앞 해고자들의 농성장(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천막농성 341일차"...공장 앞 해고자들의 농성장(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9m 아래 동료 노동자들은 하룻밤을 추위 속에서 보낸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괜찮냐", "춥지는 않냐" 등의 안부를 물었다. 농성자들은 9m 아래 동료들에게 "옷을 2, 3겹 껴입었는데도 웃풍이 들어 춥긴 하지만, 아직 괜찮다"고 소리쳐 답했다.

고공농성장 옥상에는 옷을 갈아입을 작은 텐트와 잠을 잘 큰 텐트가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로 없이 핫팩과 전열기구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식사는 노조 조합원들이 음식을 만들어 동아줄에 바구니를 매달해 고공농성장으로 전달한다. 다른 해고노동자들도 공장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천막 앞에는 "천막농성 341일차"라는 문구가 붙었다.

공장은 지난해 10월 화재가 발생한 뒤 아무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렸다. 주위에는 "고용승계 없이 공장철거 없다", "닛토덴코는 고용승계 책임져라" 등 현수막이 붙었다.
 

'한국옵티칼 고용승계 쟁취 고공농성 긴급 기자회견'(2024.1.9.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한국옵티칼 고용승계 쟁취 고공농성 긴급 기자회견'(2024.1.9.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민주노총 경북본부(본부장 김태영)와 금속노조 구미지부(지부장 김준일)는 9일 오전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공농성자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닛토덴코는 고용승계를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주)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는 업체다. 일본 '닛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인투자기업이다. 2022년 10월 구미공장 화재를 이유로 사측은 한 달 만에 청산을 통보했다. 노동자 210여명이 갑자기 해고 대상이 된 것이다.

사측은 청산을 통보한 뒤 희망퇴직을 받았다. 노동자 193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17명은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회사에 남았다. 이중 11명은 경기 평택에 있는 닛토덴코의 자회사 '한국닛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지난해 1월 30일부터 1년 가까이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배가압류'와 '철거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을 냈다. 지난해 8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10명의 노동자에게 인당 4,000만원씩, 모두 4억원의 손배가압류를 인정했다. 노조는 지난해 9월 손배가압류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한국옵티칼 공장 뒤편에 화재 잔해들이 남아 있는 모습(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한국옵티칼 공장 뒤편에 화재 잔해들이 남아 있는 모습(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구미시는 지난해 12월 7일 한국옵티칼 공장 건물 해체 허가 신청을 심의했고, 지난 8일 오후 공장 철거를 승인했다.

노조는 "청산 선언 이후 1년 3개월 동안 교섭 요청 공문을 보내고 청산인과 사측 변호사에게 대화 자리를 갖자고 제안하는 등 꾸준히 사측과 대화를 시도했다"면서 "하지만 사측은 교섭은 없다, 우리 건물에서 나가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는 오로지 청산만을 목적으로 어떤 고용유지 노력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며 "고용승계를 얻기 위해 고공농성을 엄호하고 공장철거를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은 "사측은 화재가 발생하자 일방적으로 청산을 통보했고, 193명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다"며 "회사는 공장 철거가 승인됐으니 곧 철거를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닛토덴코가 직접 나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며 "고용승계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공장에서 12년을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에게 우리는 쓰다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면서 "특혜만 누리고 해마다 수백억의 돈을 벌어들인 외국 기업이 노동자들의 생존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춥고 외롭겠지만, 잘 버텨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고용승계 없이 공장철거 없다"...공장에 걸린 현수막(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고용승계 없이 공장철거 없다"...공장에 걸린 현수막(2024.1.9)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한국옵티칼 측은 "철거와 관련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며 "노조와 꾸준히 이야기는 해왔지만, 고용승계를 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고용 승계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구미시 노동복지과 관계자는 "공장 철거 승인은 행정적인 절차일 뿐이다. 조합원들이 고공농성과 천막농성을 공장 안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철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다음 주 중으로 안전과 관련해 경찰 등 유관기관과 대책 회의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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