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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이어도 당신의 삶은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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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금호강 팔현습지의 폭력 사태를 목전에 두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1991년 11월에 창간된 <녹색평론> 창간사의 첫 문장이다. 여전히 사회과학적 사유와 상상력이 뜨거웠던 당대 상황에서 편집인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회의적인 물음으로 창간사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약하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이 <녹색평론>을 구상한 계기라고 밝혔다. 그가 ‘어려운 상황’으로 지목한 것은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 즉 ‘일종의 묵시록적 상황’이 임박해 있다는,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김종철 선생의 위기의식은 현상적인 환경재난과 생명훼손의 엄중한 현실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사태를 초래한 인류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부연하자면 인류의 문화적 위기가 우리 자신이나 다음 세대들에게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을 필연적으로 불러오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가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혁파하려는 진보적인 사회사상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본 것은, 인간의 삶을 경제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바라보는 인간중심의 시각으로는 인류가 처한 묵시록적 상황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목전에 당도한 전면적 위기란 결국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영성의 문제에 닿아 있다는 판단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해마다 우리는 미증유의 기후 위기를 겪고 있다. 거의 실시간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재난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12월 중순의 날씨가 영상 20도에 육박하고 있는 올해 겨울도 여지없이 전에 없던 기후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따뜻한 겨울이 우리가 겪게 될 다음의 봄과 여름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위기, 그것이 일으킬 환경재난은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인류의 기술진보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 요인이다.   
 
금호강 팔현습지. 대구시 동구 방촌동에서 수성구 고모동 팔현마을을 이어 형성된 금호강 하천 습지 / 사진. 김문주
금호강 팔현습지. 대구시 동구 방촌동에서 수성구 고모동 팔현마을을 이어 형성된 금호강 하천 습지 / 사진. 김문주

대구의 3대 습지이자 수많은 철새들의 도래지,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팔현습지가 대구시에 의해 사라질 위기가 목전(目前)에 있다. 2015년에는 대구지방환경청이 람사르습지 등재를 고려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생명의 땅이었던 이곳을 대구시가 앞장서서 포크레인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자 한다. 이곳에는 너구리, 족제비, 두더지, 멧밭쥐, 고라니를 비롯하여, 수달, 삵, 담비, 얼룩새코미꾸리, 남생이, 원앙, 수리부엉이, 흰목물떼새, 큰고니, 큰기러기, 황조롱이, 새매, 참매, 하늘다람쥐 등 14종의 법정보호종 동물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려 4백년 동안 이 습지를 지켜온 왕버들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자연환경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구지방환경청은 부실 환경영향평가로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토건사업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지난 달 제방공사가 결국 시작되었다.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의 이름은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왕버들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이 야생의 습지를 훼파하고 우리 국토에서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운 소중한 동물들을 이 땅에서 모두 쫓아버린 뒤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사색을 하려고 하는가. 하천을 정비하는 사업이 야생동물의 터전을 훼손하고 인간의 길을 내는 일이여야만 하는가.   
 
금호강 팔현습지 / 사진. 김문주
금호강 팔현습지 / 사진. 김문주
팔현습지 교통통제 안내판 / 사진. 김문주
팔현습지 교통통제 안내판 / 사진. 김문주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데 자연을 훼손하는 토건사업은 끝이 없다. 토건사업의 저 멈추지 않는 욕망이 나는 두렵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땅만으로 우리의 터전은 아직도 부족한가. 400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저 왕버들나무의 군락을 걷어내고, 이 야생의 습지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14종의 법정보호종들의 터전에 인간의 길을 내어 그들을 기어코 몰아내어야만 우리의 사색이 깊어지고 대구시민들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흰목물떼새와 수리부엉이가 날고 두더지와 담비가 지나간 둔덕들이 함께 펼쳐진 ‘금호강의 생명공동체’야말로 우리의 삶과 상상력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아니겠는가.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미국 서부지역에 거주하던 두아미쉬-수쿠아미쉬 부족의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 중의 한 대목이다. 대지에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깊은 형제애로서 서구의 산업문명에 내재한 반(反)생명적인 야만의 원리를 성찰하게 하였던 그의 연설문이 재삼 ‘지금-이곳’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고층의 아파트 불빛과 자동차의 소음을 피해 습지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쉼을 호흡하는 저 사라져가는 멸종동물들을 끝내 쫓아내어야만 하는 이유를 대구시는 반드시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대구시가 “내 고장의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서로가 이해로써 아끼고 가꾸어, 우리 모두의 것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스스로 ‘대구시민헌장’에서 약속했던 그대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법정보호종 야생동물들이 팔현습지의 참 주인을 알리는 주민등록증과 이를 담을 거대한 편지 봉투. 예술행동팀 '아티스트 콜렉티브 간질간질간질'과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는 12월 10일 팔현습지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편지 봉투를 들고 팔현습지에서 도보와 지하철로 이동해 대구시청에 전달했다. /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법정보호종 야생동물들이 팔현습지의 참 주인을 알리는 주민등록증과 이를 담을 거대한 편지 봉투. 예술행동팀 '아티스트 콜렉티브 간질간질간질'과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는 12월 10일 팔현습지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편지 봉투를 들고 팔현습지에서 도보와 지하철로 이동해 대구시청에 전달했다. /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수백 년 된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야생 동물들을 모두 몰아낸 뒤에 그곳에 또 다른 파크골프장을 짓고 인간의 길을 낼 것인가, 아니면 자본이 추동하는 과잉 욕망을 덜어내고 서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더 큰 생명공동체의 삶을 살 것인가. 우리들은 모두 “바다의 파도처럼” 이 땅에 잠시 왔다 가는 작은 존재들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대구 금호강의 팔현습지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폭력의 사태들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펴봐 달라. 이 폭력의 사슬은 비단 저 야생의 동물들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애틀추장의 예언처럼,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는 것이니까.

 
 
 








[김문주 칼럼 5]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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