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자국(自國) 노동자의 생계를 짓밟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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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 일본계 니토덴코그룹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사태를 목도하며


일본계 다국적기업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두 명의 노동자가 또다시 공장 옥상으로 올랐다. 2023년 1월 8일 박정혜, 소현숙 두 노동자가 옥상에 오른 지 한 달 십일이 되었다. LCD(액정표시장치) 핵심부품인 편광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해온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22년 10월 구미공장 화재 발생 뒤 주주총회를 거쳐 해산결의를 하였다. 일본계 다국적기업 니토덴코그룹의 계열사인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03년 220억 원을 투자하여 2021년까지 18년 동안 7조 7천억의 매출을 올렸고, 그 중 82%인 6조 3천억 원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고노동자 2명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경북 구미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2024.2.16)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해고노동자 2명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경북 구미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2024.2.16)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2003년 공장 설립 당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해 구미시로부터 1만3천 평의 공장 부지를 50년간 무상으로 제공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 본사로부터 매입한 원재료(5조 9279억)의 수입관세를 비롯하여 각종 세제지원 혜택 등을 받아왔으며, 그 기간 동안 회사가 한국에 부담한 법인세비용(지방소득세 포함)은 410억 원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요구와 외국인투자기업의 대응

화재 당일에도 신입사원 채용까지 진행하였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22년 10월 화재 발생 뒤 곧 회사 해산결의를 하였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여 노동자 210명 중 현재 11명이 남은 상태이다.

퇴직하지 않고 남은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모기업 니토덴코그룹의 또다른 자회사인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을 승계해달라는 것이다. 물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산거점으로 구미에는 LG에 납품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평택에는 삼성에 납품하는 한국니토옵티칼을 설립하였으니, 쌍둥이 회사에서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 승계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게다가 화재 이후 구미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모두 평택으로 옮겼고 1천명이 일하는 평택 공장에서 신입사원도 채용 중이니 숙련된 노동자 11명의 고용을 승계하는 것은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도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2024.2.16) / 사진. 김문주 칼럼니스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2024.2.16) / 사진. 김문주 칼럼니스트

노동자의 잘못으로 불이 난 것도 아니고 화재보상금을 1,300억이나 받고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전격적으로 해산하다니, 그것도 고용 승계만을 바라는 불과 열 한 명의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되려 공장철거를 방해한다며 사측은 노동자들의 전세보증금 등 4억 원을 법원에 가압류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외국인투자촉진법과 벌거벗은 생명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해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모기업 니토덴코그룹은 불과 220억을 투자하고 무려 6조3천억 원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18년 동안 그들이 대한민국에 낸 세금은 불과 410억이다. 지자체인 구미시가 1만3천 평의 토지를 무려 50년간 외투기업인 한국옵티칼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각종 세제 혜택을 준 것은 이 땅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이를 유지해달라는 요구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공장을 해산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11명의 고용 승계 요구를 일절 거부하였다.

현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은 공장 철거를 마무리하기 위해 구미시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토지의 원상회복 절차를 진행하려 하고, 옥상에서 농성중인 두 노동자를 포함한 남은 노조원들은 이를 반대하며 노조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중인데, 지난 16일 경북경찰청이 공장 노조사무실을 장악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하려다 노동자들의 저항에 물러선 상태이다.
 
'강제 철거'로 맞선 법원 집행관과 노동자들. 집행관은 이 날 강제집행을 중단하고 철수했다.(2024.2.16) / 사진 제공. 금속노조
'강제 철거'로 맞선 법원 집행관과 노동자들. 집행관은 이 날 강제집행을 중단하고 철수했다.(2024.2.16) / 사진 제공. 금속노조

십수년 간 시간당 9천장의 편광필름을 보며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이어온 성실한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는데도 한국의 고용노동부는 이땅의 노동자를 위해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공장 철거에 관한 승인권한을 갖고 있는 구미시는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이른바 먹튀한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의 공장철거승인을 해주었으며, 법원은 사측이 제기한 철거공사 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공장 인도를 집행하고자 수백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을 노조사무실에서 끌어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도대체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이 땅의 노동자는 대한민국 헌법이 지켜야 할 국민이 아닌가. 외투기업이 이 나라의 온갖 혜택을 받은 뒤 먹고 튀는 자유는 허용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의 권리를 왜 대한민국은 막아서는 것인가. 이게 과연 우리들의 나라인가.

30여 년 이상 외투기업의 이른바 ‘먹튀’(먹고 튀기)가 자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의 노동자를 지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대한민국 국회는 고용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해산하는 외투기업의 행태 방지를 위한 어떠한 법도 만들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법원은 노사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회와 법원, 그리고 공권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자신의 육체를 갈아 넣으며 성실하게 일한 죄밖에 없는,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는 자국의 노동자들, 그 벌거벗은 생명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는 이 눈물겨운 싸움은, 왜 불법(不法)으로 몰려야 하는가.
 
배태선 민주노총경북본부 구미지부 교육국장이 한국옵티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2024.2.16) / 사진. 김문주 칼럼니스트
배태선 민주노총경북본부 구미지부 교육국장이 한국옵티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2024.2.16) / 사진. 김문주 칼럼니스트

나는 내가 낸 세금이 외투기업의 이익을 수호하고 이 땅의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대한민국 경찰이 고공 농성하는 저 두 명의 노동자들을 끌어내리고 노조사무실을 빼앗는 데 동원되는 것을, 나는 분연(奮然)히 반대한다. 내가 낸 세금을 이 땅의 노동자들의 삶과 생계를 짓밟는 데 쓰지 말라.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일본계 니토덴코그룹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일본어로 반성문을 쓰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없이 고통스럽고 쓸쓸하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자신의 주거지를 옮기더라도 해오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고용을 승계해 달라는 저 노동자들의 소박한 요청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 정부는 우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의사단체의 오만한 경고 저편에서 울려오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짓밟지 말라’ ‘고용을 승계하라’는 외투기업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처절한 요구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봄의 길목이다.

 
 
 








[김문주 칼럼 7]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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