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한 작은 방. 할아버지 두 분이 대나무 자리 위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부엌으로 연결된 작은 문 사이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할머니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부엌으로 자리를 비킨 뒤 손님이 갈 때까지 부엌 문 사이에 계속 서 있다.
대구에서 10년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황인모(38.대구 동인동) 작가의 '민중의 초상' 작품 시리즈 중 한 사진이다. "손님이 오면 자연스럽게 음식을 준비한다. 이 할머니도 할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뭘 더 챙겨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남자들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자랐고 배웠을 것이다. 부엌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당연히 요즘에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우리 역사고 서민의 일상이다"고 황 작가는 설명했다.
또 다른 사진. 한 할머니의 좁은 방이 배경이다. 5평쯤 되는 좁은 공간에는 세간이 가득 찼다. 매일 펴져있는 이불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이불 위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손길이 닿는 곳곳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거울 옆, 옷장 위는 물론 서랍 틈새에도 봉지들이 한가득 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가장 중요한 포장용지는 '봉다리(봉지)'다. 이 할머니 방에는 특히나 많았다. 이 공간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널려 있었지만 화각에 들어오지 않았다. 봉다리에는 봄에 캔 쑥, 이름 모를 풀, 실, 옷, 떡, 약. 갖가지 것들이 들어 있다. 할머니들 특성이다. 버리지 않고 모아놓기만 한다. '애껴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 신기한 건 뭔가 들었는지도 다 구분하신다는 거다"
황 작가는 이날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경상도 지역에서 농촌 모습을 찍은 '민중의 초상'을 주제로 강연했다. 또, 포항 구만리에서 어촌 풍경을 담은 '고래 떠난 동해바다의 호미곶 사람들', 전라도 가사도에서 찍은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씻김굿' 작품에 대해서도 강연했다.
황 작가는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 잘 볼 수 없는 농어촌 일상을 통해 희미해져가는 평범한 사람들, 민중, 서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특히, "역사는 왕이나 정치가 등 권력층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범한 서민들의 보통 삶도 포함된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면서 "일제시대나 6.25전쟁 같은 격동의 시기를 지낸 60대이상 세대 모습이 사라지기 전 이들이 지닌 역사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소값파동' 당시 괴로워하던 98세 할머니. 양복에 한복까지 입고도 손도 못 잡던 노부부. 카메라를 들이대니 급히 떨어진 천 허리띠를 두르고 허름한 윗도리를 껴입던 노인. 물질을 마치고 배에 타서는 뱃사람들에게 시원하게 욕을 하던 해녀. 다방아가씨가 방파제로 배달오자 남녀 구분 없이 커피를 나눠 마시던 바닷가 사람들. 250여명 마을주민 전체가 장례 절차에 참여하던 가사도 '씻김굿' 풍경. 한 쪽에선 울고 있는데 한 쪽에선 춤판이 벌어진 장례 모습. 영정 앞에서 술에 취한 삼촌과 싸우는 조카.
"이 사람들이 역사를 지탱해 온 사람들이다. 특별한 상황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도 우리의 역사다"며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이런 평범한 서민의 역사가 미래의 우리를 반추해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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