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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만화에 비춰진 정치 현실의 역설
윤규홍 /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1.2.3권 (에드 브루베이커 저ㅣ최원서 역ㅣ2011)
2011년 08월 12일 (금) 09:07:17 평화뉴스 pnnews@pn.or.kr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가 있다.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출판사가 창조한 초인적인 영웅 캐릭터들은 따로 인명 도감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와 있을 정도로 숫자가 많다. 이들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스파이더맨, 헐크도 있고, 영화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아이언맨, 토르, 엑스맨, 판타스틱4도 있다. 지금 소개하는 캡틴 아메리카 또한 영화 <퍼스트 어벤저>를 통해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캐릭터다.

캡틴 아메리카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유명세를 덜 탄 이유는 분명하다. 그 이름과 겉모습부터 너무나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마블 코믹스의 라이벌 출판사 DC 코믹스의 대표주자인 슈퍼맨도 미국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온 몸을 성조기 문양으로 휘감고 있는 캡틴만큼 꼴불견은 아니다. 최근에 나온 영화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원 제목을 포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만화라는 건 처음부터 황당한 설정이다. 과학이나 의학 기술의 힘을 빌어서 힘이 세지고, 사고를 당해 힘을 얻고, 애당초 외계에서 우월한 능력을 가진 채 지구에 오는 것도 모자라 과거의 神이 현실계에 등장하기도 하는 게 마블 코믹스의 세계다. 그런데 이 세계관의 이면에는 매우 현실적인 묘사도 있다. 현실 속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비례해서 세계 곳곳에 슈퍼 히어로들, 그리고 악당 슈퍼 ‘빌런’들이 존재하며 여기서 미국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뿐이다(예컨대 캐나다 국적의 슈퍼 히어로 그룹은 미국 정부와 히어로들을 은근히 견제하는 스토리가 곧잘 등장한다).

   
▲ 에드 브루베이커 저ㅣ 최원서 역ㅣ시공사ㅣ2011

만화나 영화를 본 독자 관객들은 모두 수긍할 만한 흥미로운 점이 있다. 각각의 작품 속에서 그 주인공 초능력자는 세상에 단 한 명뿐으로, 몇 명의 조력자들과 힘을 합쳐 악의 세력에 대항하고 지구를 구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활약에 놀라워하면서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슈퍼 히어로 마니아들은 그와 같은 단편적인 구조에 싫증내며 각각의 영웅과 악당이 임무를 서로 바꾸거나 한 자리에 모이는 걸 원하기 시작했다.

중년층에겐 익숙한 슈퍼 특공대(원제 : 저스티스 리그)의 경우는 DC 코믹스의 작품으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같이 힘을 모은다. 여기, 마블 코믹스 판 슈퍼 특공대라 할 수 있는 그룹은 어벤져(Avengers) 혹은 실드(S.H.I.L.D.)다. 여기에서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서브마리너, 헐크, 판타스틱4, 토르, 엑스맨의 울버린 등이 함께 등장한다. 이러한 창작물은 과거의 성취에 대한 자기성찰적인 비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캡틴 아메리카(본명, 스티브 로저스)는 이러한 슈퍼 히어로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마블 코믹스를 처음 접했을 땐 나는 그들 조직을 아이언맨이 이끄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들의 제도적 수장은 초인이 아닌 닉 퓨리이며, 이들 셋은 각자가 가진 리더십으로 서로 암묵적인 경쟁을 벌인다. 2차 대전 당시, 몸은 허약했지만 애국심에 불타는 청년 스티브 로저스는 번번이 징병 검사에 떨어지던 중에 미 국방부의 기밀 프로젝트에 실험 대상자로 뽑혀 엄청난 힘과 체격의 소유자가 된다. 캡틴 아메리카가 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싸우다가 얼음에 갇혀 동면상태에 들어간다. 세월이 흐른 후 그를 구낸 것은 전우였던 전쟁 영웅 닉 퓨리(그는 노화를 늦추는 주사를 맞으며 슈퍼 히어로를 관리하는 정부 요직을 맡아 출세한)와 토니 스타크(돈과 두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서, 스스로 갑옷을 개발해 아이언맨으로 행세하는)였다.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에게는 열정만 있을 뿐이지 두 사람이 가진 조직적인 힘이나 자금력이 없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알레고리가 발생한다. 공간을 옮겨 가상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제 강점기 시절의 무장 투사가 지금 부활하여 정치적 상황 속에 던져졌다면 이들은 과연 어느 정당이나 결사체를 지지할까.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슈퍼 히어로의 가상현실에서는 시빌 워가 벌어진다. 우연한 사건 이후 초인들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를 따르는 측과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를 추종하는 측으로 편을 갈라 싸운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토니 스타크는 악당 빌런들의 힘을 빌리기까지 한다. 대의명분과 이상이 같은 진영이 견해의 차이에 의해 분열되는 것은 현실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노동권, 여성해방, 환경보호, 지방분권에 관한 공감에도 운동 세력은 분파가 나누어지고 심지어 보수정당 권력과도 손을 잡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함의를 품은 채 <캡틴아메리카의 죽음>은 초인들의 내전-시빌 워가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저항 세력을 이끌던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는 싸움을 끝내고 미국 사법권의 심판을 받겠다며 법원에 출두한다. 그 길에서 괴한이 쏜 총탄에 암살당한다. 책은 한 영웅의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그의 후계자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이어받는 과정을 역동적인 그림체로 다룬다. 개혁진보 진영의 전직 대통령은 반대쪽의 거대 보수 세력에 의해 죽음에 내몰렸는가, 아니면 같은 진영 스스로가 살해한 것인가. 새로운 영웅에 대한 요구에는 이상화된 전직 지도자의 이미지를 누가 많이 이어받을지, 혹은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폐기하느냐는 정치적 고려가 뒤따른다. 비현실적인 내용의 만화가 지금 그 어떤 텍스트의 재현보다 더 정치 현실에 관한 알레고리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은 역설적인 사실이다. 이 패러독스가 시공사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는 것 또한 이중의 역설이다.

   

 

 

 

[책 속의 길] 30
윤규홍 / P&B아트센터 아트디렉터, 영화평론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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