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기념조례'를 폐지하라는 시민 1만여명 청구에도, 대구시의회가 안건을 상정하지 않아 논란이다.
대구시의회(의장 이만규)는 오는 10일부터 25일까지 16일 동안 제317회 정례회 일정에 들어간다. 2024 회계연도 대구시 결산 승인 건 등 제·개정 조례안 모두 38개 안건을 심사한다.
심사하는 안건을 보면 ▲대구시 공공기관 유치 지원 조례안 ▲대구시 무인점포 안전관리 조례안 ▲대구시 갑질 행위 근절 및 피해자 지원 조례 일부 개정안 ▲대구시 노인교육 지원 조례안 ▲대구시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 관리 조례안 ▲대구시 산불예방 및 진화의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이다.
하지만 이번 달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의 폐지조례안'은 상정하지 않았다. 폐지조례안은 대구시민 1만4,754명이 청구한 조례다. 대구시가 홍준표 시장 재임 시절인 지난해 발의한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를 폐지해달라는 내용의 조례안이다.
대구시는 이 조례를 근거로 지난해 8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이라고 부르고,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22일에는 예산 6억여원을 들여 3m 높이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했다. 이 밖에도 해당 조례를 통해 대구시는 박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시민단체는 "친일, 독재자 우상화 사업"이라고 반발하며, 대구시에 맞서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를 꾸렸다.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부터 반년간 온라인과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받아 기념사업 폐지 청구안을 접수했다. 주민조례청구 제도상 필요한 1만3,000여명을 넘긴 1만4,000여명의 대구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해, 올해 1월 대구시의회 사무처에 서명부를 넘겼다.
서명부가 규정을 지켜 문제 없는 것으로 판명돼 대구시의회는 의안을 해당 상임위원회로 넘겼다. 이에 따라 의회는 회기 중 조례를 상정해 심의를 할 수 있게 됐다. 6월 중 회기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에 회부만됐고, 이달 의안에 조례를 상정하지 않았다. 주민청구조례는 수리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필요한 경우 1년 이내의 범위에서 한 차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현행법상 대구시의회는 조례를 상정하지 않고 내년까지도 미룰 수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절대 다수(33석 중 32석 국민의힘, 1석 더불어민주당)인 대구시의회에서, 박 전 대통령 기념조례를 본인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1년여 만에 폐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월 기획행정위원회 조례 심사 당시 해당 상임위 소속 대구시의원들도 "근거와 내용 부실", "홍준표 시장 독단과 독선"이라고 비판했지만, 이어진 표결에서는 전원 '찬성'으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박정희 기념 조례폐지안이 상정되기 전 많은 제.개정안들이 상정돼 스케줄상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윤영애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은 "어떤 조례를 넘겨받았다고 꼭 이달에 상정해야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의원들끼리 어떤 조례를 올릴지 말지 이미 의안 스케줄이 다 짜여져 있는데, 갑자기 올라와서 지금으로선 상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답했다.
또 "어떤 조례를 상정할지 말지는 의회와 해당 상임위가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며 "6월에는 불가능다. 이달에 안되면 오는 7월에도 상정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조례를 만들어놓고 왜 폐지하냐고 '반대' 측(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유지)에서도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생각이 다른 시민들도 있으니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반발했다. 대구시의회가 법을 핑계삼아 조례를 불상정하고, 일정을 지연시킨다는 지적이다.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지난 5일 성명에서 "박정희 기념조례 폐지안을 상정하지 않은 대구시의회를 규탄한다"며 "상정하지 않은 구체적 이유를 밝히고, 상정 일정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1년 이내라는 법 조항을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면서 "대구시의회 역사상 두번째로 주민이 발의한 안건에 대해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