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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박정희 동상' 만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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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대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는데

홍준표 시장은 3월 1일에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앞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 검토를 말하더니 3월 11일에는 4월 중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과 동상건립위원회를 만들고 새로 건립되는 대구도서관 공원도 박정희 공원으로 명명하고 대형 동상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조례안은 발의되어 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4월1일까지 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을 접수하고 있다. 

대구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은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다. 2014년 민주당 대구시장 김부겸 후보는 '박정희 컨벤션센터‘ 설립을 공약했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한 자유한국당 이진훈 후보는 홍준표 시장 보다 먼저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공약했었다. 

박정희 기념사업은 구미에서 새마을운동 테마 공원, 박 전 대통령 역사자료관, 박정희 체육관을 만들었고 매년 박정희 탄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5미터가 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터에 있는 박정희 동상 / 사진. 평화뉴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터에 있는 박정희 동상 / 사진. 평화뉴스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했던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은 2012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으로 개관했고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과 박정희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구미를 비롯해 박정희 동상이 있는 곳은 7곳으로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에 서 있는 흉상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문래공원은 육군 6관구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등 쿠데타 세력이 군 지휘를 했던 곳이다. 그밖에 철원 군탄 공원 동상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 서쪽, 경북 청도군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광장과 경기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내부에 박정희 반신 동상이 있고 비슷한 시기에 구미 동상도 세워졌다. 박정희 생가에서 6㎞가량 떨어진 구미초등학교까지 길을 ‘박정희 등굣길’이라며 길가에 소년 시절의 박정희 모습을 담은 동상을 설치했으며 구미초 안에도 1991년 설치된 동상이 있다고 한다.9경향신문 「박정희 동상, 그만 좀 세웁시다」, 2017.11.18). 이밖에도 한번 다녀간 곳에도 기념관을 만들 정도로 박정희 기념사업은 차고 넘친다.  

박정희를 기념하는 이유 

표면적인 이유는 보릿고개를 없애준 대통령, 산업화의 영웅이라는 인식과 역대 대통령 중 인기 순위에서 1위 또는 2위(출처: 나무위키, 대한민국 대통령/인기 순위 2011년 ~ 2023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하는 대중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는 시민들의 호감도만이 아니라 계속적인 기념사업, 2011년 유력한 대권 후보로 박근혜가 등장한 상황과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 늘어난 기념사업예산 등 만들어진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기와는 다르게 2017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성인 51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에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66.5%였다. 

지역별 결과를 보면 광주·전라(반대 81.4%), 경기·인천(73.4%), 서울(68.2%), 부산·경남·울산(59.6%), 대전·충청·세종(57.5%), 대구·경북(54.2%) 순으로 대구·경북(TK) 등 영남권을 포함해 든 지역에서 반대가 더 많았다. 연령별로는 30대(반대 86.3%)와 20대(80.2%)에서 반대 응답이 80% 이상이었고, 40대(77.2%)와 50대(60.5%)에서도 반대가 다수였다.(출처: 연합뉴스, 「국민 3명중 2명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리얼미터] 2017-11-16) 반면 60대 이상에선 찬성이 56.7%로 과반이었다.

먼저 박정희 기념사업은 수도권 보다 지역에서 더 많이 진행되며, 많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빈곤한 지역 관광사업에서 콘텐츠가 없을 때 쉽게 박정희 기념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2023년에 1천억 원 규모의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구미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를 보면 박정희 기념사업은 성공적인 지역 콘텐츠가 되기보다 오히려 예산낭비로 비판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박정희 기념사업은 매우 정치적인 일이며 ‘박정희’라는 상징을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 사용된다. 2014년 김부겸 후보는 한나라당 일색의 대구에서 민주당임을 내세우지 않는 선거운동을 했었고 2018 이진훈 후보 또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박정희 기념사업에 진심인 보수는 독재하는 사실을 숨기고 영웅시하거나 '반신반인'(출처: 한겨레, 「"박정희 대통령은 반신반인" 구미시장의 신격화 찬양」, 2013.11.14)이라며 신격화하고 있다. 때문에 동의하기 힘든 ‘동상’이라는 방식의 기념사업이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동상은 함께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도하는 내용의 상징을 압축한 구조물이다. 동상은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시민들은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박정희, 업적의 이면 '독재'

학교 때 잘 배우지도 않았고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는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정리해 보자. 박정희는 4·19혁명으로 성립된 민주당 정부를 무능·부패 정부로 규정하고 1961년 5.16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 삼권을 장악했다. 그들이 만든 혁명주체세력은 의장을 박정희로 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2년 7개월간 군정을 실시하며 전권을 휘둘렀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61년 말까지 3,000여 명의 용공분자와 4,000여 명의 폭력배를 체포했다고 한다. 군사정변 1개월이 안되어서 전국적으로 보완관계 범법혐의자 검거 수가 3만 5,000여 건이라고 하니 시민들에게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후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버리고 1963년 제3공화국의 통치권자가 된 박정희는 한일협정 체결, 1968년 3선 개헌을 했다. 1972년 10월에는 헌법효력의 일부 정지, 국회해산, 정당활동 금지 담화를 발표 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따라 제8대 대통령이 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정리)

정당하지 않은 5.16군사정변으로 시작한 박정희는 집권 동안 계엄 3번(31개월), 위수령 3번(5개월), 각종 비상조치 9건(69개월)을 실시했다.(출처: 경북대학교 대형과제연구단 『근현대 대구·경북지역 사회변동과 사회운동Ⅲ p199)

 이러한 비정상적인 기간은 모두 105개월로 이는 집권 기간 220개월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박정희 정권은 억압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에서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1975년 인혁당 사건 사형집행 등 박정희 정권하에서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가속화되었고, 1979년 8월 9일 YH 무역회사의 여공들이 신민당사 점거농성 진압과정에서 김경숙 열사 사망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항의한 김영삼 가택연금과 제명파동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10.26으로 박정희 정권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보릿고개는 모두의 힘으로 없앤 것

박정희 기념사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발전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에 대해 “국제적 호황과 국민의 경제발전 열망, 높은 교육열 등 국내외 요인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고 했으며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도 그의 저서《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에서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높은 착취율에 기반 한 것이며 실제 국민생활의 개선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5월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2.3%를 기록했고, 석유제품의 가격은 59%, 전력요금은 35% 상승한 반면, 저임금 정책이 지속되어 경기가 위축되었다.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76년에는 14.1%, 1977년에는 12.2%, 1978년에는 9.7%를 기록했다.(출처: 위키백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 및 논란' 문서) 

 또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이때 생기게 되었다는 평가 또한 많다. 한국사회 경제발전의 성과는 누구 한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그 시절 졸음과 배고픔을 참으며 일한 산업화 세대 모두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대구에 박정희 기념사업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구경북지역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넘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경제와 고물가 극심해지는 양극화를 해결할 대책이다. 해결책을 마련할 능력과 의지가 없으니 박정희 동상으로 이목을 끄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동상 세울 돈이 있으면 자영업자와 청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하면 좋겠다. 

[남은주 칼럼 52]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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