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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
정은정 /『비아캄페시나』(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 한티재 | 2011.08)
2011년 08월 26일 (금) 09:42:17 평화뉴스 pnnews@pn.or.kr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무산되었다. 따지고 보면 남의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동안 정국을 뒤흔들었고, 향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점쳐지면서 정치권은 손가락셈 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급식, 한때는 언론에 등장하는 급식 소식은 부실한 급식 상태나 식중독 사고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 급식은 무상이냐 유상이냐, 친환경 급식이냐를 따지 면서 복지 담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태곳적부터 먹는 것은 생존의 기본인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열쇠말이다. 그리하여 일찍이 동막골 촌장님이 말씀하지 않았던가.

"뭘 먹여야 한다!"


뭘 먹는 문제의 가장 기본은 그 나라 백성들이 주로 무엇을 먹고 사는가인 동시에 그것을 누가 생산하는가 인데 이는 당연히 농어업이다. 물론 농심에서 라면을 팔기는 하지만 밀가루 없이 라면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을 두고 혹자는 자기들이 먹여 살린다며 오바를 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는 식품사슬을 구성하는 초국적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이 오버행보에 테클을 걸고, 손을 번쩍 들어 세상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우리, 자신 ‘소농’임을 선언하는 농민 당사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함께 울고 웃으면서 싸워나가는 기록이 이번에 새로 나왔다.

전세계 소농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영향력 있는  NGO나 국제기구들이 대신 내주기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갖기로 결정하면서 ‘대신하여 말하거나 대표할 필요가 없다. 누가 말할 것인지, 누구를 대신하여 말할 것인지, 또한 무엇을 말할 것이며, 집합적 입장에는 어떤 방식으로 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사회적 실천으로 어떻게 옮기고 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 르뽀이기도 하다. 

스페인 말로 ‘농민의 길’이라는 뜻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는 1993년 출범한 국제농민운동조직이다.

   
▲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 박신규.엄은희.이소영.허남혁 옮김| 한티재
이 책은 비아캄페시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반성하고 곧추 세우려 하는 노력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아네트 데스마레이즈는 비아캄페시나의 초국적농민운동을 함께 해 온 활동가였기 때문에 곁눈질의 관찰기록문이 아니라 면밀한 르뽀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저작은 다른 여타의 사회운동 기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아캄페시나’는 세계화의 거센 노정에 가장 먼저 무너진 전세계 소농들의 존엄한 생존과 기아 10억, 비만 10억 명을 양산하는 현실의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민들이 자신의 의 적은 유럽과 미국,캐나다와 같은 거대 선진국의 농민이 아니라 최후의 하나(종자)까지 독점하고 있는 초국적기업들임을 깨닫게 된다.
 
세계화가 거칠게 밀어붙이는 동안,  유렵과 북미의 가족농들도 함께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의 소농(소작농)들이 방어 가능한 삶의 공간이 곳곳에서 무너지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하나다.

'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하여 전세계의 소농들이 자신들의 특수성(지역현실, 개인의 현실)에서 출발하되, 함께 연대해 초국적기업들의 독점력을 내세워 몰려드는 세계화에 같은 스케일의 정치인 반세계화운동을 선도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비아캄페시나’의 국제농민운동은 지금의 한국 현실에도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들이 만난 과정이 유수의 국제NGO들처럼 주도면밀 했다기 보다는 지역현실에 기반하여 싸워가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누가 가르치는 사람 없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이 모여 소(작)농 정체성을 형성하고 함께 놀고 함께 싸운다. 지도자 없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가는 비아캄페시나이 활동방식은 ‘뽀로로 정신’의 원조를 보여준다.

모든 조직이 마찬가지겠지만 비아캄페시나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국제적연대운동의 현실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륙별 권력문제, 문화적 이질성, 그럼에도불구하고! 선진국 농민들과의 빈부격차, 국제NGO들과의 갈등도 여과없이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국제농민운동의 어려움도 엿볼 수 있지만, 시민사회운동들도 참고할만한 사례들이 많아 NGO참고서로도 유용해 보인다.

비아캄페시나는 먹거리 전반에 걸친 생태적 위험과 만성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식량주권’을 제시한다. 식량주권이란 먹는 문제를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면서 정치적 의무를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량주권은 국가적으로 충분한 양의 먹을거리 생산과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가, 어떻게 생산하는가, 어떤 규모로 생산하는가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식량안보의 개념을 뛰어 넘어 문화적 개념까지도 포괄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식량주권, 투표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아캄페시나는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지키는 투쟁과 만들어 내는 투쟁 모두 중요하며, 다른 세계를 구상하고 만들어 가는 여러 일들을 추진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에 기반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식량주권을 지켜 나가기 위한 각국의 노력들은 실로 다양하다. 비아캄페시나의 회원조직이면서 선도 조직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과 제철꾸러미사업을 통해 ‘만들어 내는’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먹는 것을 빼앗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여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은 투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내 밥그릇을 챙겨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면서 지역의 문화를 지켜내려는 부단한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비아캄페시나의 여정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너

치솟는 물가와 식품안전문제로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인 요즘,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명제를 넘어 이제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너’임을 직시할 때인 것 같다. 내가 먹는 순간 누군가 죽고 누군가 산다. 지역먹을거리(로컬푸드)를 먹음으로서 ‘너’인 지역농민을 살리고, 다국적기업이 떠넘기는 정크푸드를 거부함으로써 먼 나라 농민인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임을 새길 수 있다면, 거기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첨언 하나.
이 책을 출판한 한티재 출판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 척박한 문화현실에서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를 내세워 어려운 출판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이런 ‘돈안되는’ 책을 기꺼인 출판한 한티재야 말로 지역의 큰 보물임을 강조하고 싶다.

책은 한티재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로컬푸드가 좋은 것처럼 우리가 읽는 것도 지역산이 좋지 않겠는가. 왜 우리가 읽어야 할것들은 모두 서울을 거쳐 내려 오는지도 고민해 볼 문제다. 

그리고 또 하나. 비아캄페시나 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성주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지역농민 윤금순씨다. 지역에 탁월한 국제농민운동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책 속의 길] 32
정은정 / 대학 시간강사, 농어촌사회학.지역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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