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이라고 하면 무조건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내 머릿속에 가장 처음으로 인지하고 꺼내 들었던 책이다. 너무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이 책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자면,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나무는 소년이 원할 때마다 사과, 나뭇가지, 나무줄기, 등 모든 것을 내어준다. 본인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까지.
'나무는 참 대단해. 무엇도 바라지 않고 소년에게 아낌없이 뭐든 해주잖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엄마 같았다. 나를 위해 헌신을 해주는 그 모습이 닮았다. 나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게 나의 첫 독후감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도 누군가의 ‘나무’가 되고 싶었고 그때의 나에게 소년은 ‘친구’였다. 얼른 소년을 찾고 싶었다. 그 벅찬 기대감에 쿵쾅쿵쾅 엄마에게 달려갔다.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방방 뛰는 나의 모습에 엄마는 웃었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랍장에 있던 알록달록 무지개색 머리 방울을 가져왔다.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며 사 왔던 거다. 엄마는 살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에게 한 개씩 선물하렴, 그러면 친구들이 좋아할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머리 방울을 가방에 잔뜩 욱여넣고 달려 나갔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소년의 반응을 예상하며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친구들. 나도 얼른 움직였다. 머리 방울은 반 친구들에게 다 줄 수 있는 양이었다. 그 넉넉한 양에 의기양양해지며 어깨가 펴졌다. 여러 명 모여있는 무리부터 다가가 선물을 내밀었다. "안녕 내 이름은 최유정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이거 받아."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가방을 들고 집에 갈 때 방울이 보였다. 내가 친구들에게 준 머리 방울이 바닥에 있었다. 아이들이 밟아 먼지투성이가 된 방울, 우리 엄마가 나에게 준 방울이었다. 나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하나, 하나 주워서 먼지를 털고 다시 주머니 속으로 욱여넣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펼쳐보았다. 처음에 봤던 동화책과 너무 다르게 읽혔다. 우선 나무의 행동에는 기대가 보였다. 소년과 함께 있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소년은 매정하게 떠나갔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런 소년의 행동에도 그를 위해 밑바닥까지 내어준 나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뭐가 있지?’ 더 이상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었다. 소년을 바라는 멍청한 나무였다. ‘나는 이제 겨우 한 번 소년을 찾으려고 했던 행동에 이렇게 허탈한데 이 나무는 몇 번이나 했다고? 너무 한심해. 나는 나무처럼 되지 않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 나무는 바보가 되어있었고 소년은 막돼먹은 사람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내가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는 조금 냉소적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 마음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바라지 않은 척, 그게 멋진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소년도, 나무도 없었다. 단지 혼자 잘나고 싶었다. 그렇다, 중2병이었다.
태권도 겨루기 선수로 나가 금메달을 따고 반장도 해보며 운동부 주장도 하며 전국대회에 나갔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자부심이 별처럼 솟아났다. ‘나 완전 대단한데? 나 잘난 맛으로 사는 게 이런 건가?’ 그렇다, 중2병 말기였다.
드디어 졸업식 날이었다. 정작 나와 사진 찍을 사람이 없었다. 두루두루 다 안면이 있고 친했지만 정작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소년이 떠올랐고 내 곁에 없었다. 서글펐다.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팠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을 펼쳐보니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돌아서는 소년의 뒷모습에도 홀로 서 있는 나무의 형태가 쓸쓸해 보이지 않고 굳건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지?’ 마음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내어준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 나무의 헌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돌아올 거란 확신 없이, 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무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분명 나무도 허무하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받아들였다. 그리고 변치 않았다. 나무가 어느 순간부터 고귀해 보였다. 그런 나무의 사랑을 받는 소년이 부러웠다. 그렇게 얄미웠던 소년은 사랑받는 도련님처럼 보였고 그 옆에 단단한 나무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조금만 노력하면 쑥쑥 성적이 오르던 중학교 때와 달랐다. 기초가 없던 학생에게 벼락치기는 아슬한 낭떠러지였고 오르지 않는 성적은 나를 낙오자로 만들었다. 진로의 방향과 성적을 잡지 못한 나에게 있는 건 오로지 자괴감뿐이었다. 울분이 쏟아졌다. 정말 욕이 나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친구들과 선생님이었다. 나조차 자신을 믿지 못했을 때 그들은 나를 빛내줬다. 그때 그들이 툭툭 던졌던 말들은 깊게 덮어져서 지금까지 나를 굳건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 기억과 말들이 내가 한 번씩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준 나무였다. 내가 무슨 모습으로 있든, 어떤 결과가 나오던 항상 똑같이 나를 봐주던 나무였다.
소년이 결국 나무로 돌아갔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본인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본인조차 자신을 믿기 힘든 세상이니까. 소년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소년은 도련님에서 사연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데?
학생 신분이 아닌 사회초년생이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나무와 소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부질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감성적이고 이성적으로 살기에는 세상은 각박했다. 성적의 잣대는 학생 때나 보여주는 거고 이제는 학력, 연봉, 직책, 회사, 집, 차! 더 높고 아득한 평가들이 있었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과 변하지 않는 현실은 세상의 모든 소년을 행방불명으로 만들었다. 과연 소년은 나무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저기, 사각지대에 있는 것일까. 그건 본인도 알 수 없겠지.
그런 소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말이야. 너무 그 기준에 맞춰 살지는 마. 어떻게 그 입맛대로 다 맞춰줄 수 있냐. 모날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는 게 우리잖아. 너무 변해버리면 나무가 못 알아볼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노인이 되더라도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기억하자.”
[책 속의 길] 215
최유정 / 인스타툰 작가 dj53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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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 『아낌없이 주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