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3.12.5 화 21:37
> 뉴스 > 환경/문화 | 책속의 길
   
동물의 무기를 통해 인간을 보다
탁기홍 / 『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 데이비드 터스 그림 | 승영조 번역 | 북트리거 펴냄 | 2018)
2023년 02월 08일 (수) 10:39:37 탁기홍 pnnews@pn.or.kr

처음엔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이라는 부제보다는 특별하고 우람한 무기를 달고 있는 동물의 삽화에 더 끌렸습니다. 아직까지는 ‘유명’하지 않은 작가에게는 책표지 디자인과 광고문구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표지와 삽화만으로도 충분히 보유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 책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흥미로 펼쳐 본 진화론 과학서적이지만, 인간사회와 핵과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인문학적인 내용도 다분합니다.

 다양한 동물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 것 같은 거추장스러운 무기를 가지고 있는 종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로 경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려집니다만, 대부분의 동물들이 경쟁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무기를 가지는 건 아닙니다. 자연은 지독한 절약꾼이어서 동물의 무기는 크기에 대한 타협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균형 잡힌 선택의 족쇄가 깨지고 무기가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합니다.
 
   
▲ 『동물의 무기』(더글러스 엠린 지음 | 데이비드 터스 그림 | 승영조 번역 | 북트리거 펴냄 | 2018)

 이렇게 무기가 극한으로 발달하게 되는 발현조건이 무엇인지가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동물의 자연사를 관찰하여 발현조건을 하나씩 찾아내고 가설을 만들고, 쇠똥구리 실험을 통하여 증명해냅니다.

 동물의 무기의 발현조건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경쟁이 있어야 하고, 경제적인 방어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1대1 대결이어야 합니다.

 왜 무기는 대부분 수컷에게 있고, 덩치는 수컷이 클까요? 임신과 육아로 가임이 가능한 암컷이 적어 수컷끼리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수컷이 육아를 담당하는 ‘자카니’라는 새는 오히려 수컷을 두고 암컷들이 경쟁해야 하므로 덩치가 크고 무기가 발달합니다.
 
   
▲ 자카니는 수컷이 육아를 담당하기에 가임 가능한 적은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암컷끼리 경쟁한다. 그래서 암컷이 덩치가 크다.(사진.『동물의 무기』 책 본문)

 경쟁에서 이기고 짝짓기가 성공하려면 이성을 경쟁자로부터 지키기 쉬워야 합니다. 무기를 키워서 희생되는 면보다 경제적 이득(짝짓기 성공 가능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무기가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동굴이나 나뭇가지처럼 좁은 공간이면 큰 어려움 없이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또, 무기가 유용하게 쓰이려면 1대 1로 대결해야 합니다.
 
   
▲ 쇠똥을 굴리는 쇠똥구리는 뿔이 없지만, 굴을 지키는 쇠똥구리는 뿔이 있다.(사진.『동물의 무기』 책 본문)

 이런 발현조건이 생기면 동물은 여지없이 무기를 키웁니다. 물론, 동물이 의도적으로 무기를 키우진 않겠지요. 이런 시스템에서는 무기가 큰 놈들이 더 많은 짝짓기 기회를 얻게 되어 자손을 남기고 그 자손 중에서도 더 큰 녀석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 무기는 점점 거대해져 갑니다. 언제까지? 무기 너무 커져서 생존에 거슬릴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발현조건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동물의 무기도 서서히 작아지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동물은 생존과 짝짓기를 통해 무기의 유전적 정보를 자손으로 이어줍니다. 인간이 만든 무기는 동물과 다릅니다만, 저자는 인간의 무기 또한 동물의 진화와 같은 속성을 가져서 진화처럼 발달한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유전정보가 아니라 학습정보로 이어져서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무기가 극도로 커지는 조건도 동물의 상황과 같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고대 지중해에서의 1대 1의 충각전을 펼쳤던 목선이 한두 세기만에 이십여 미터에서 126미터까지 커진 걸 들고 있습니다.
 
   
▲ 사진. 『동물의 무기』 책 본문

 최근 역사에서도 1대1 경쟁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냉전 시대입니다. 미국과 소련은 핵과 더불어 무기를 경쟁적으로 키웁니다. 두 나라 모두 엄청난 군사비로 사회복지, 교육, 건강지원 비용까지 희생해야 했고, 경제 곤란을 겪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소련은 GDP의 15~17%(일설에는 40%)에 육박할 정도의 군사비를 위해 자유재량 자원 이상의 지출로 거대한 뿔을 위해 뼈에서 칼슘과 인을 뽑아내는 큰뿔사슴처럼 모든 사회 분야가 약해졌으며, 결국 해체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양대 정당 체제를 생각해 봅니다. 무기의 발현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승자독식 구조이고 1대 1의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정치의 도라는 게 없습니다.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이용해 반대편을 죽이려 듭니다.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정책은 뒷전이고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본연의 임무인냥 소통력을 아깝게 허비하고 있습니다. 승리하였을 시에 얻는 혜택이 너무나 커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큽니다. 적을 무너뜨리고 비록 내가 타격을 받더라도 제 3세력의 어부지리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판을 깔아준 건 현재 소선거구제가 한몫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제도에서는 거대 당 소속이라는 거대한 무기에 소신있는 소수당 정치인은 마치 집게발이 작은 농게가 싸워보지도 않고 싸움을 포기하듯이 출마를 포기합니다. 집게발이 가장 큰 농게는 도전자와 싸우지도 않고 자손을 남기며 집게발이 강화되듯이 거대 당들은 소수당과 싸우지도 않고 의원을 배출하고 당을 강화합니다. 소수당들이 유명무실해진 후 남은 2개의 거대 정당은 본연의 임무보다 싸움의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모습을 없애려면 승자독식 구조와 1대 1 경쟁 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과학자이지만, 이 책은 한 편의 수필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저자와 같이 숨은 진리를 찾아 책 속에서 여행을 하며 아프리카와 남미로 사막으로 정글로 떠나고 별이 쏟아지는 캄캄한 숲속에서 새벽까지 곤충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여행지는 농게 군집지에서 절정을 달하게 됩니다. 여행이 끝날 즈음, 자연의 원칙은 인간세계에서도 관통한다는 걸 깨닫고 인간사회와 경쟁에 대해 사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책 속의 길] 216
 탁기홍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대한산업보건협회 대구센터 원장
 
평화뉴스 <책 속의 길> 모두 보기
(http://www.pn.or.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55)
     관련기사
· 빨치산 아버지, 뭉클한 인간의 향기· 생애구술기록, 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 이주노동자의 목숨으로 일구어지는 사회·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노자에게 길(道)을 묻다· 잊고 싶지 않은, 나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 하면 안되는데 자꾸 하는 사회에서...'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새로운 생존 방식에 대한 사유
· 평화의 길, '선을 넘어 생각하자'· 골짜기로 가면 희망이 있다
· 내가 언젠가 서게 될 그들의 자리· 지금 당신의 눈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 우리도 호감받는 말기술을 사용할 줄 안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선 당신에게
· 세상 부러움 없는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 기본소득, 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속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헤매다· 매번 반복되는 비슷한 부동산 투기대책
· 반대를 앞세워 손익을 셈하는 한국 정치· 어디에나 있으나 특별한 그대들, 청년활동가!
· 고통을 통한 연대는 끝나지 않았다· 내일 지구가 기후위기로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자
· 법은 멀고 제도는 느리고...공장에서 플랫폼 노동까지· 광해군의 길
·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퍼해야 합니다
· 진부한 폭력, 저항은 언제나 진부하지 않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해
·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통념에 대한 치열한 팩트체크· '예의바른 무관심'으로 잘못된 삶을 톺아보다
· 친절한 사람들이 지지 않고 싸우는 법· 우리 관계는 순서 없이 귀한 것 - 이 세상 모든 꼴찌들에게
· 말하는 돼지는 인격체일까?· 공감, 나도 옳고 너도 옳고
· 느슨한 연결의 힘...그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아기 엄마의 그 밤은 어땠을까...· 법에도 눈물이 있어야 한다
· 헤어짐이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탁기홍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