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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이야기
오혜경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안심협동조합 엮음 | 동네책방共共협동조합 펴냄 | 2023)
2023년 11월 16일 (목) 12:32:04 오혜경 pnnews@pn.or.kr

안심협동조합 책? 책!

오고 가는 사람도 많은 상가 건물 1층 매장에 1년도 안되어 새로운 점포가 들어선다. 길목이 좋아서 장사도 잘 될 것 같은데, 2년새 벌써 세 번째 바뀌었다. 치킨집도 프렌차이즈 맥주집도 쉬 들어섰다 조용히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요즘 시대에 소비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겠지.

그런데 여기 10년 넘게 율하를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안심협동조합이 있다. 협동조합이라니까 뭐 대단한 자본이 있어서 그런가? 에이, 딱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뭐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해온 걸까? 그것은 별로 알기 싫지만, 일단 책이 나왔으니까 한번 살펴볼 일이다.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이야기를.

안심협동조합 10년의 역사

안심협동조합은 2011년 12월 안심주민생활협동커뮤니티로 첫 출발을 했고, 2012년 6월부터 로컬푸드 매장 “땅이야기”를 운영하였다. 마침 비어 있던 옆의 상가에는 카페 “사람이야기”를 만들어 같은 데크에 같은 주차장을 쓰며 쌍둥이 매장을 운영하였다. 땅이야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사람이야기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 안심협동조합, 로컬푸드 매장과 카페 '땅과 사람 이야기'(대구시 동구 율하동)

매장에는 발달장애청년들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장애 비장애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생활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람이야기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에행복음악회를 개최하여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2013년 3월 안심주민생활협동커뮤니티 전환 총회를 통해 안심협동조합으로 명칭을 정하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2016년 3월, 건물주의 갑작스런 퇴거 통보로 인해 누적된 부채에 이전 장소와 비용 마련의 문제 등이 겹쳐 크게 휘청하였으나 그 위기를 조합원들의 힘으로 해소하고 2016년 8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다. 우리가 세운 친환경 매장과 마을카페를 지켜낸 흔적으로 지금도 안심협동조합 간판은 구터전의 “땅과 사람 이야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안심협동조합을 지키겠다는 조합원들의 마음이 모여 개인의 출자와 차입, 회의, 재능기부, 다양한 품앗이 등 조합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면서 초창기 5년의 대위기를 극복하였다. 그 이후의 5년도 만만찮은 비바람에 흔들렸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것을 보면 ‘끝까지 간다’는 암묵적인 다짐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을 만든 사람들, A.N.S.I.M. story

안심협동조합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고 했을 때 그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힘들면서도 즐겁고, 함께 하다가도 훌쩍 도망치고 싶었던 조합의 수많은 일들이 어떻게 엮어나갈지 기대도 되었다.
 
   
▲ 2012년 '땅과 사람 이야기' 매장 개소식 / 사진. 안심협동조합

안심협동조합 10년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역대 이사장과 임원, 사무국장, 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여기에 마을의 중심이었던 한사랑어린이집 원장님과 당시 어린이도서관 아띠의 사무국장님까지 함께 했다. 마을살이 15년 이상의 경력자들과 당시의 실무자들이 만난 것도 대단한데, 안심협동조합의 설립과 힘들고, 힘들고, 힘들었던 그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갔을지 상상도 안된다.

아마도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시간은 즐거운 회상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겐 상처의 들쑤심이었으리라. 황당한 사건들은 가벼운 농담으로 넘기고 슬프거나 아픈 기억도 이제는 웃을 수 있음을 확인했으리라. 그래도 마지막에는 격려와 축복과 다독거림으로 마무리를 했겠지. 책을 읽으며 그날의 일들이 떠올라 혼자 미소짓다가 몇 번 시큰해지고, 괜히 조마조마해졌다 빵 터지며 나도 함께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안심협동조합 10년의 희노애락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안심협동조합 엮음 | 동네책방共共협동조합 펴냄 | 2023)
   
▲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출판기념회(2023.11.4. 땅과 사람이야기). 책을 엮은 필자들에게 꽃다발 대신 파다발, 무다발을 선물했다. / 사진. 안심협동조합

책은 (A)안심협동조합의 역사부터 시작해 (N)먹거리와 로컬푸드, 생산자와 조합원, (S)사람을 이어주는 놀거리, (I)일자리 창출 챕터로 설정해 안심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M)사진까지 추가해 A.N.S.I.M. story를 완성하였다(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책 출판기념회에는 생산자와 초대사무국장과의 토크쇼를 진행하고, 책을 엮은 분들에게는 꽃다발 대신 파다발, 무다발을 증정하였다. 참가자들에게 호박죽을 대접하고, 뒷풀이 와인파티의 안주는 매장의 먹거리로 즉석 제작한다. 정말 안심협동조합답다.

신기방기한 안심협동조합 이야기

아파트 숲, 여느 동네 풍경과 다를 바 없는 율하동 어디쯤에 위치한 안심협동조합은 로컬푸드 매장이다. 매대에는 과일, 채소, 빵이 줄지어 있고, 뒷쪽 냉장고에는 신선 식품이 진열되어 있다, 어, 한쪽구석에 자리잡은 건 커피머신인가? 여기 로컬푸드 매장이 아니고, 커피를 파는 카페인가? 카페라고 하기엔 테이블이 별로 없고 어수선한데.... 그래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커피를 주문하고, 어딘가 자리잡고 앉는다. 매니저가 물건 정리하느라 바쁘면 손님이 대신 커피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니, 도대체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란 말인가! 체계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미 망했을 것 같은데, 벌써 10년을 살았단다. 정말 신기방기하다.

신기방기 1. 친환경 농산물인데 이렇게 싸다구?!

환경오염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일반 농산물보다 가격이 높은 편이라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안심협동조합에서도 유기농 농산물을 취급하고 있는데, 시중의 물건보다 가격이 싸서 놀랄 때가 많다. 알아보니 안심협동조합에서는 농산물 생산자에게도 적정한 가격을 매겨주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결국, 마진을 최소한으로 한다는 얘기인데... 우리 매니저님들 재능기부인건가? 제발 가격을 올리라고 소비자가 제안을 해봐도 그저 웃기만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조합원도 늘어나긴 하는데, 팔수록 손해일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 '세 봉지 다 사도 7천원 밖에 안돼요'...안심협도조합의 유기농 농산물 / 사진. 안심협동조합

신기방기 2. 머니는 없어도 사람은 많은 참새방앗간

떼지어 날아다니는 참새들마냥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아, 덥다. 물 좀 주세요.”
“와이파이 비번 뭐예요?”
“4차원으로 아이스티 한 잔 마실래요. 어, 우리 엄마 4차원 다 썼네.”
(4차원 제도(p.46): 조합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조합비를 납부하는 한심협동조합만의 제도, 조합은 1만원당 음료 4잔을 제공하는 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우리 아빠 4차원 써라. 내가 쏠게.”
“과자는 우리 엄마 포인트로 해주세요.”
뭐지, 오고가는 돈이 없는데도 뭔가 많이 팔리고 있다. 사이버머니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커뮤니티룸은 이내 참새방앗간이 된다.
“짹짹 짹짹짹 짹째글 짹짹...”

좀 시끄러우면 어떻고, 과자부스러기 좀 흘리면 어떻노. 매니저는 정말 천사다! 귀여운 참새들 덕분에 무료한 토요일 오후, 매장엔 생기가 돈다. 참새들이 밀려 나가면 장보러 온 아줌마들이 잠시 모여 근황토크를 한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리필해서 마시며 꽤 오래 얘기하고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흩어진다.
 
   
▲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행복음악회(2013년) / 사진. 안심협동조합
   
▲ 조합원 기타동아리 공연(2020년) / 사진. 안심협동조합

저녁을 먹고 나서 아파트 주변 산책을 하다가 매장에 한번 들러본다. 무슨 회의를 마쳤는지 한 무리가 문을 열고 나온다. 익숙한 얼굴을 보니 괜히 반가워 수다를 떨다가 그냥 맥주 한 잔 기울여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아니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같은 이곳이 있어서 좋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는 안도감에 미소를 지어본다.

신기방기 3. 안심은 안되지만 인심은 넘치는 곳

“땅근마켓  나눔 물건 찾아갈게요." (땅근마켓(p.167): 안심협동조합 B급 중고시장)
“저도 땅근마켓에 물건 올려두었어요, 수익금 2,000원은 매장에 기부할게요.”
중고거래 사이트를 벤치마킹한 우리 조합원만을 위한 우리동네 중고거래 ‘땅근마켓’에는 나에게는 필요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요긴하게 사용될 물건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해거름에 장보러 온 아주머니, 저녁거리도 살펴보고, 예약한 물건도 찾는다.
“여기 나눔도마에 있는 당근, 무 좀 가져가도 돼요?”
(나눔도마(p.167): 안심협동조합 나눔, 비움, 덜어냄의 실천 공간)

나눔도마 위에는 누군가 놓고 간 채소가 제각각인 모양을 뽐내고 있다. 심하게 날씬한 당근, 양파처럼 생긴 작은 무. 모양은 그래도 맛은 괜찮을 것이다. 초보 농부의 수고로움과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며 두어 개 챙겨간다.
“풋고추가 너무 많아서 조금 남겨두고 갈게요.”
한봉지를 사면 며칠을 먹어도 남아서 냉장고 구석을 지키다 결국 버려지는 풋고추가 늘 골칫거리였는데, 우리 식구들 맛있게 먹을 만큼만 챙기고 나머지는 나눔도마에 올려둔다. 다른 이들에게도 작은 기쁨이 되어주리라 생각하며.
 
   
▲ 조합원들의 안심농장 땅콩 수확 체험(2022년) / 사진. 안심협동조합

신기방기 4. 협동이 뭐 별건가, 함께 하면 되는 거지.

“올해 명절 선물세트는 뭐해요?”
“작년에 레몬생강청 만들 때 레몬 썰고 나서 손목이 나갔다.”
“나는 손에 밴 생강 냄새가 일주일을 가더라.”

조합원들의 정겨운 투덜거림으로 야간 작업의 문을 열었다. 작년에 너무 고생해서 올해는 곡류 세트로 마련했단다. 소분해서 넣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오산이다. 십여 명이 붙어서 한 시간을 해도 끝이 없다. 슬슬 눈이 침침해질 때쯤 새로운 팀들이 들어온다. 격하게 반기며 선수교체를 한다. 조합에서 느린 배송을 맡고 있는 발달장애 청년 직원들과 그들의 친구들도 손을 보탠다. 조금 서툴지만 조합원으로서 한몫을 하려는 마음이 예쁘다. 꼬박 세 시간을 작업을 하고 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의 수고는 시원한 음료 한잔이면 족하다.

안심마을에는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안심협동조합이 있다. 그래서 더 끌린다!

“안심하고 먹고, 안심하고 놀자.”를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안심협동조합이 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안심협동조합이 되었을까? 하루 종일 있어보니, 10년을 바라보니, 돈 되는 일보다는 돈 안되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조합이 수익 창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일까? 안심협동조합이 가진 ‘땅과 사람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노동의 가치와 사람의 소중함을 높게 사는 게 아닐까?
 
   
▲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 사진. 안심협동조합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의 10년의 생존비결이 말한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물류 담당자의 24시 덕분에, 소비자와 판매자를 넘나들며 진정한 주체가 된 조합원들 덕분에, 장애 비장애 구별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덕분에, 무엇이든 발벗고 나설 준비가 된 촘촘한 안심마을 네트워크 덕분에, 안심협동조합은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쉬운 길 마다하고 10년을 100년 같이 둘러둘러 걸어가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은 그것들 덕분에 어떤이는 안심하지 못했지만, 또 다른 이는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또 다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책 속의 길] 222
 오혜경 / 안심협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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