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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慘憺)과 암울(暗鬱)한 전망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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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소통 불가능성, 그 암울한 전망 앞에서

글을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우리 공동체가 처하고 있는 불안한 시국 앞에서, 나는 말을 잃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빈번하게 떠올렸던 말은, 참담(慘憺), 마음 심(心) 부수에 간여할 참(參)이 더해진 ‘참(慘)’이라는 글자는 불필요한 간여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헤아려 보면 이 말은 생각지 못한 일, 뜻밖의 사태로 인해 고통을 겪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정치가 일상을 멈추게 하거나 재난으로 인해 일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작금의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 이 말만큼 적확한 어휘는 없을 듯도 하다. 참담은 ‘끔찍하고 절망적이다’, 혹은 ‘몹시 슬프고 괴롭다’는 뜻으로 비슷한 의미의 말을 찾는다면 ‘지옥살이하다’ 정도가 있을 터인데, 이 말은 기본적으로 외부 사태에 대해 자신의 내면 상태를 표현한 언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참담’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최근 이 말의 원인제공자 측에 속하는 이들의 인터뷰에 이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윤석열 측 변호인들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말이 더 이상 내 정념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뜻밖의 사람들의 입에서 그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당혹스러운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이들의 말에 담겨 있을, 어떤 자기진정성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도 함께 느끼고 있을, 최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하고 심각한 사태들의 총체는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이는 엄정한 법적 절차에 따라 혼란한 사태를 정리하고 위법한 대상들에 대해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차원, 이 사태에 책임 있는 정당이 아닌 다른 진영에서 정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차원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현 사태들 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연유한다. 단순히 신념과 가치의 이질성의 차원이 아닌, 보다 근원적인 논의나 소통의 불가능성이 가로놓여 있다는 암울한 전망, 그것은 우리 공동체를 위해 좀더 장기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관련된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政體)

2000년대 들어 많은 사람들이 묻기 시작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래서 수없이 회자된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언명은 우리 공동체의 정체(政體)에 대한 두 개의 기둥, 즉 민주(民主)와 공화(共和)의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전자는 헌법 제1조 2항이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언명에 담긴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으로, 이를 실천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투표를 통해 선출된 권력을 국민이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좀더 실질적인 방법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느냐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후자의 문제, 공화국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수없이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이에 관한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공화국은 법적 정의와 이익의 공유에 기초한 공동체라는 것, 여기에서 법적 정의란 특권을 용납지 않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며, 이익의 공유란 국가가 소수 특권의 이익 추구를 위해 사유화되지 않고 국가의 권능의 결과가 구성원들에게 두루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하고 무능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합니다" 경북대 시국선언(2024.12.3)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부정하고 무능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합니다" 경북대 시국선언(2024.12.3)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법적 정의와 이익의 공유에 기초한 공동체의 실현,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로서 정치적 진영과 무관한 듯 보이는 당연한 가치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강고한 기득권 정치에 포획되어 진정한 공화국을 향한 실천적 방법들을 추진하고 실현하는 일은 매우 지난하다.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수없이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가장 과격하게 실천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도 우리 공동체의 진일보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총체적 난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영의 논리를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고 논의하는 일의 엄중함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의제(agenda)나 실천이 수권(授權)을 목표로 하는 정당 정치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뿐만 아니라 최근의 사태를 통해서도 거듭 확인되는 내용이다. 이는 특정한 사태의 변화를 단순한 정치적 승패의 차원을 넘어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민그룹의 확대와 지속성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진영과 정당에 갇혀서는 우리 공동체가 마주하고 있는 이 판이한 대립과 갈등, 불통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우리 공동체의 위기는 비단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훼손하는 일부 극단주의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주의를 비호하고 부추기는 작태들이 용인되는 사회, 기회주의 세력들이 수시로 준동할 수 있는 위험사회에서는 언제든 역사적 퇴행과 반동을 맞을 수밖에 없다. 좀더 근원적으로 공동체의 가치에 관해 공부하고 논의하며 공유하는 사회적 소통에 대한 노력과 실천이 절실해 보인다. 그 점에서 우리 공동체의 방향과 가치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시민) 교육의 내용과 프로그램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과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들이 촛불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 구호를 외치고있다. (2024.12.7. 대구 동성로. 제4차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 사진 /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민들이 촛불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 구호를 외치고있다. (2024.12.7. 대구 동성로. 제4차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 사진 /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정책의 효과를 단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야에 현실 정치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민생과 경제라는 이 오래된, 그러나 단기적인 정치 논리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우리 공동체가 당면한 근원적인 문제들, 구성원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인식과 가치의 격차, 이 엄중한 사회적 크레바스(crevasse)는 해소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 더디더라도 사회적 가치와 방향에 관해 학습하고 논의하는 실천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설계가 절실해 보인다. 곧 시작될 다음 정부의 과제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그룹 내에서 우리 공동체에 대한 좀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공동체가 진정으로 진일보(進一步)하기를 원한다면, 진지하게 숙고하고 논의하는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될 듯하다.  

[김문주 칼럼 12]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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