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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제거된 4대강,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정수근 / 『모래강의 신비』(손현철PD 저 | 민음사 | 2011.08)
2011년 09월 23일 (금) 10:34:42 평화뉴스 pnnews@pn.or.kr

사라진 모래, 위험한 강


평화로운 백조들의 유영, 흑두루미와 재두루미의 고고한 걸음걸이, 개미귀신이 파놓은 깔대기 모양의 함정인 개미지옥의 신기함, 참길앞잡이의 분주한 발놀림, 마치 심호흡을 하는 듯한 재첩의 움직임, 얕은 물가를 헤치며 사랑을 나누는 누치 부부의 격렬한 몸짓 … 이 모든 생명들의 놀라운 움직임을 본 것이 바로 모래의 강 낙동강에서였다. 그것도 4대강 공사가 본격화하기 전의 낙동강과 그 지천에서.

   
▲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해평습지 모래톱 앞에서 작년 봄 백조들이 유영하고 있다. 4대강 삽질로 이 모래톱이 다 사라진 해평습지에 백조들이 다시 날아올지 의문이다 / 사진. 정수근

그러나 2009년 말부터 시작된 4대강 공사가 만 2년 만에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2011년 9월 현재, 낙동강에서는 더 이상 이들의 존재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4대강에서 감행된 대규모 ‘모래 박멸 작전’ 때문이다.

   
▲ 이명박 정부가 올해 초 보여준, 철새천국 해평습지에서의 '모래 박멸 작전'의 모습이다. 월동을 위해 날아온 쇠기러기 무리들이 저 육중한 신종 '철쇠' 무리들에 놀라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 사진. 정수근

   
▲ 낙동강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린 모래톱에는 요런 녀석들도 살고 있었다. 개미지옥을 만들어놓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개미귀신’과 모래톱에서 날래게 달리고 있는 이름도 낯선 '참길앞잡이'의 모습 / 사진. 정수근

단 2년 만에 한반도 젖줄이자 동맥과도 같은 4대강을 완전히 개조하는 4대강사업의 핵심이 바로 모래의 강 4대강에서 그 모래를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래가 사라진 거대한 인공수로에 16개의 초대형 보를 세워, 16개의 거대한 호수를 만드는 사업이 바로 4대강사업인 것이다.

그렇게 파내버린 모래의 양이 자그마치 5억7천만㎥. 특히 낙동강에서만 4억4천만㎥에 이른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가 4대강에서 퍼올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모래를 강에서 제거해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과연 정부가 말하는 대로 모래는 강물의 흐름을 막는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강 모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모래강으로의 순례로 초대하는 책. <환경스페셜> "강과 생명 - 모래강의 신비"편에서 손현철 피디가 못다 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담아냈다. 특히 모래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은 수많은 사진작품과 함께 실려 있는 답사 안내기는 아주아주 유용하다.
모래강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잘 담아냈던, 환경스페셜 “강과 생명 - 모래강의 신비”를 제작한 손현철 피디가 쓴 책 《모래강의 신비》는 그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고,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고 있는 4대강사업이 모래와 하천의 속성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몽매한 상태에서 벌이는 사업인지를 잘 일깨워준다.

“모래톱은 강과 강변 습지 사이에서 생태적 완충지대”가 되고, “물속에 잠긴 모래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천연필터, 거름 장치 역할을 한다” 또 “강바닥의 모래는 강물과 지하수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홍수가 났을 때 빨라진 물살의 에너지를 흡수해 범람 피해를 줄여준다”(8쪽)

그런데 4대강사업으로 이런 탁월한 생태적 기능을 하는 모래톱을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4대강은 올 여름 곳곳에서 홍수피해가 나는 등 너무나 위험하고 파괴적인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를 어쩔 것인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세대는 무차별적으로 강을 파괴하는 권력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나중에 모래톱을 복원하는 힘겨운 일을 자식 세대에게 넘겨버렸다. 너무 무책임하게”

이 책은 우리세대의 그런 ‘비겁함과 무책임’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 책은 “사라져가는 우리 산하의 모래와 모래톱의 지리, 생태, 문화, 정서적 의미를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아직은 그런대로 남아있는, 그러나 그마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모래의 유적을 지키고 찾아 나설” 것을 우리에게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모래의 생태적 기능

그러면 지금부터 4대강에서 ‘박멸된’ 모래. 그 모래와의 이별을 이 책은 “왜 이토록 아쉬워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의 논리처럼 물길을 막는 장애물에 불과한 “모래를 파내고 그 대신 더 많은 물을 채워서 새로운 친수공간, 강변 생태 환경”을 만들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아니오”다. 4대강사업은 모래강의 속성 즉 모래와 강물이 어우러져 “물이 흐르는 강인지, 모래가 주인인 강인지” 종잡기도 힘든, 모래강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진행하는 사업이다. 요컨대 모래는 강의 물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모래 속으로 강물을 유통시키며 “강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다. 

   
▲ 고령과 합천 경계에서 낙동강과 합수하는 회천의 모습. 합수부엔 역행침식 현상으로 이렇게 끊임없이 모래가 쌓이고 있다 / 사진. 정수근

“강변의 젖은 모래를 밟아보면 물이 솟아오르면서 발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모래가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더미는 보통 자기 부피의 30~50퍼센트 정도의 물을 품고 있다. 갈수기에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모래가 머금고 있던 물이 나와서 빈 곳을 채운다. 겉보기엔 말라버린 모래라 할지라도 파 보면 그 속에서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강 속에 잠긴 모래톱은 강과 함께 물을 흘러 보내는 또 다른 통로, 강 속의 강인 셈이다. 강바닥과 연결된 모래 토양층도 양질의 지하수를 머금고 있다가 강 수위가 낮아지면 물을 보탠다”(30쪽)  

이렇게 모래는 강물을 담아두는 ‘저장고 역할’과 강물의 유량을 알아서 조절해주는 ‘유량 조절자’ 역할을 한다. 또한 모래는 강물을 정화하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구미나 대구에서 산업단지 오폐수가 대량으로 유입되는 낙동강이 하류에서 수질이 다시 좋아지는 것은 “강물 속에 퇴적된 모래가 여과 작용을 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가정에서 마시는 수돗물은 모두 모래를 통화한 것”으로, 이것은 교원대 오경섭 교수의 표현을 빌면 ‘자연 수질 정화 필터’로서 모래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래는 쓸모없는 제거 대상이 아니라, 수질 정화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그것도 아무 비용도 필요 없이. 그런데 그 모래를 수질 정화를 목적으로 모두 박멸해 버리는 이 무식한 정부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도 천문학적인 혈세를 탕진해가면서 말이다.

또한 모래톱은 “참길앞잡이, 개미귀신 같은 강변 곤충의 삶의 터전이고, 흰수마자, 미호종개 등 민물고기의 산란 서식처다. 고라니는 모래톱에서 자라는 풀을 먹고 강 주변의 수달, 살쾡이, 너구리는 모래톱을 중심으로 먹이 사냥을 한다” 요컨대 “모래톱은 강과 강변습지 사이의 생태적 완충지대”로서 야생동식물들에겐 생존의 필수적 공간인 것이다. 4대강사업으로 생태적 완충지대인 모래톱이 4대강에서 모두 제거되어버린 것이다. 오호통재라!     

모래가 사라진 강은 파괴적 에너지를 부른다

이명박 정부가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를 들여 모래강에서 제거한 그 모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4대강의 모래톱은 ‘강변의 염전’으로 변해, 지난 2년 동안 수백수천대의 굴착기가 파고, 덤프트럭이 실어 날라 강변 농경지 곳곳에 ‘모래 무덤’을 쌓았다. 또는 그 옆에 ‘거대한 모래 신전’을 만들기도 했다. 초록색 방진포를 덮어씌운, ‘녹색성장’의 위대한 신전을 말이다.

   
▲ MB 씨가 노래하는 녹색성장의 전형으로 보여주는 ‘녹색성장’ 산이다. 모래로 쌓은 녹색성장의 제단이다 / 사진. 정수근

한반도의 모래가 불모의 공간인 사막의 모래와 다른 이유는 강물과 함께 있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그것은 사막의 모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강물 속의 모래를 파내어 녹색 제단을 쌓음으로써, 우리강의 모래를 사막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봄바람을 타고 비산먼지로 날리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한 채.

그런데 그런 모래를 잃어버린 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2011년의 장마는 모래를 잃어버린 4대강이 얼마나 파괴적인 에너지를 생성하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4대강사업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홍수피해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다리가 무너지고, 송수관로가 뜯겨나가고, 제방이 붕괴되고, 무엇보다 지천에서 일어나는 붕괴 현상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4대강의 과도한 모래 준설과 그렇지 않은 지천 하상의 단차로 인한 지천에서의 역행침식이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 4대강사업으로 사라진 모래 때문에 파괴적 에너지가 넘치는 낙동강에서 무너진 왜관철교의 모습이다. 한국전쟁 발발 61주년이 되는 6월 25일 새벽에 다시 무너졌다 / 사진. 정수근

이 대부분의 신종 홍수피해가 바로 4대강에서 사라진 모래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모래의 강에서 모래를 잃어버린 강물은 ‘배고픈 물’이 되어서 파괴적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게 된 것이다.

“강바닥을 파내면 흐르는 물의 운반 능력과 퇴적물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 모래와 자갈을 파낸 만큼 실어 나를 것을 잃어버린 강물은 남는 에너지로 강바닥을 깎기 시작한다 … 실어 나를 퇴적물, 즉 먹을 것이 떨어진 물은 강바닥과 강의 옆구리인 제방을 침식한다. 그중에서도 바닥을 깎아 먹는 것이 더 위험하다 … 강물의 속도가 두배 빨라지면 물이 운반할 수 있는 물체의 질량은 2의 6승만큼, 즉 예순네배 늘어난다고 한다. 홍수 때 빨라진 물살이 집채같이 큰 바위를 옮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힘 때문이다”(238~239쪽)

집채같이 큰 바위를 옮길 수 있는 그 파괴적 에너지가 바로 모래를 잃은 ‘배고픈 강’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를 이번 여름 장마기간에 우리는 여실히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모래 준설을 엄격히 막고 있다. 요컨대 “강바닥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난 달 방한한 독일의 세계적인 하천전문가인 베른하르트 교수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모래를 준설하는 4대강사업이 독일 역사상 가장 비경제적이고 어리석은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인-도나우 운하보다 더 어리석은 사업”이라고 일갈했던 것이리라. 

4대강 복원을 위한, 희망의 단초

4대강사업은 지금 막바지에 와 있다. 모래톱은 대부분 제거되었고, 16개의 댐은 거의 완공단계에 와있다. 급기야 정부는 오는 10월 22일 수백억의 혈세를 투입해서 화려한 준공식을 준비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너무 늦었다고 모두 포기하고 말아야 할 것인가?

   
▲ 낙동강의 과도한 모래 준설의 영향으로 낙동강에서 두번째로 붕괴되고 있는 남지철교의 모습이다. 낙동강을 지나는 수많은 다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 사진. 정수근
그러나 희망의 징후는 아직 있다. 그 징후는 바로 모래를 잃은 ‘배고픈 물’에서 나온다. 배고픈 강이 만드는 이른바 역행침식 현상은 지천의 제방과 하상을 심각하게 침식·붕괴시키며 지천의 모래를 본류로 끊임없이 채워 넣고 있다.
이것은 바로 “모래는 물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고, 따라서 저자가 확신하듯 “4대강 공사는 모래와의 부질없는 싸움”인 것이고, 결코 이길 수 없는 무모한 도전,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둔한 행동”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태적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 보면 하천이 스스로를 복원해가는 과정이다. 동적 평형상태가 깨져버린 하천이 스스로의 복원력을 발동해 평형상태를 찾아가려는, 하천 스스로의 처절한 몸부림 말이다. 본류와 지천 간에 생긴 하상의 단차를 줄이기 위한 지천의 이와 같은 극단의 몸부림은 본류와의 평형상태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것은 희망의 단초로 읽힌다.

이런 사실이야말로 하천이 인공의 구조물이 결코 아닌, 펄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란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4대강사업의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강은 흘러야 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고,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4대강사업이 사실상 준공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16개의 초대형 보를 막지 않고 물길을 터준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강은 스스로의 복원력으로 서서히 본 모습을 되찾고, 그 안의 수많은 생명들도 서서히 제자리를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래강으로의 초대

그렇다. 저자가 말하듯, “심리적 충격을 흡수하는 재로이며 창조의 무대이기도 한 모래의 의미”를 이제라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래에서도 싹이 나는” 진실을 확인하고, 희망을 가지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망의 단초를 가슴에 품고, 저자가 초대하는 모래강의 향연에 빠져보자. 아직은 아름다운 모래톱이 남아있는 모래의 강 내성천으로, 감천으로, 회천으로, 섬진강으로 저자는 우리를 초대한다.

   
▲ 물반 모래반의 모래강 내성천에서 사람들이 물길을 걷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그 유명한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다 / 사진. 정수근
   
▲ 모래의 강 내성천에선 아이들이 이렇게 뛰어논다. 깊지 않고 모래가 많아 안전한 이곳에서 아이들은 오롯이 강과 하나가 된다. 모래톱은 이처럼 강와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 사진. 정수근

그 중에서 특히 내성천 모래강의 향연으로 우리를 속히 불러들인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어쩌면 내년까지가 그 모래강의 향연에 빠져볼 마지막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2년 말 영주댐이 완공되어 2013년부터 담수를 하게 되면 내성천은 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 상류의 오래된 500가구와 300만㎡의 들판 그리고 내성천의 금모래가 그대로 수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성천 모래강의 향연은 어쩌면 올 가을과 내년 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 강물과 함께 흐르는 내성천 금모래의 모습. 투명한 물 밑으로 내성천 금모래가 물과 함께 흘러간다 / 사진. 정수근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모래 위로 낸 물의 산책로’라고 할 만한 이 풍경은 한반도에 얼마 남지 않은 모래의 신전이며 곧 유적이 돼 버릴 비운의 장소다 … 모래의 강에게 남은 시간,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순례를 허락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남아 있는 모래의 강을 마지막으로 목격하고 증언할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33쪽)

그렇다. 우리는 4대강의 복원을 위해서도 모래의 강 내성천을 목격하고 기록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이 가을 저자가 소개하듯 운포구곡(雲浦九曲)의 비경을 간직한 내성천의 그 금모래를 밟으러 길을 나서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성천 답사 생생한 길잡이인 《모래강의 신비》를 옆구리에 낀 채로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강을 찾고 기억하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 “모래에서도 싹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책 속의 길] 36
정수근 /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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