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MZ, 투쟁가 대신 다만세·응원봉...50대들이 겪은 "기분 좋은 변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지역 노동, 시민사회, 학계 인사
50대 세 사람이 느낀 대구 탄핵집회
이길우 "MZ, 기성세대보다 더 절실"
"우리 안의 적당주의 반성하는 계기"
남은주 "외면 않고 광장에 나온 이들"
"젊은 세대 혐오 그만...꼰대짓 말자"
김문주 "2030 여성들 참여 두드러져"
"권위주의 붕괴→공동체 이끌 원동력"

모두 열번의 밤. 대구의 윤석열 탄핵집회는 많은 새로운 것을 남겼다. 

촛불 대신 좋아하는 아이돌 응원봉의 가지각색 불빛이 광장을 밝혔다. 결기에 찬 민중가요가 아닌 다만세(소녀시대-다시 만난 세계) 등 케이팝(K-Pop)을 불렀다. 정체성을 드러낸 재밌는 깃발과 피켓은 웃음을 더했다. 

커피값, 밥값을 대신 내주는 선결제 문화는 시민들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조직과 단체에 소속된 이들이 아니라 사회관계망(SNS)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유튜브 등을 보고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온 개인들이 나왔다. 공동체 위기 속에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매일 밤 촛불을 들었다. '12.3 비상계엄' 하루 만에 동성로에서 열린 1차 시국대회에 1천여명(주최 측 추산), 4차 집회에는 2만여명,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10차 집회에는 4만5천여명이 모여 8년 전 박근혜 탄핵 집회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 

끝이 안보이는 대구시민들의 행렬...제9차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응원봉과 피켓, 촛불 등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다.(2024.12.13.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끝이 안보이는 대구시민들의 행렬...제9차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응원봉과 피켓, 촛불 등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다.(2024.12.13.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30 젊은 여성들이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5차 윤석열 퇴진 탄핵집회에서 "윤석열 구속, 윤석열 퇴진" 피켓을 들고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30 젊은 여성들이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5차 윤석열 퇴진 탄핵집회에서 "윤석열 구속, 윤석열 퇴진" 피켓을 들고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광장을 열어준 것도, 힘을 실어준 것도 모두 대구시민들의 힘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을 깨뜨린 무도한 권력자에 준엄한 경고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촛불 광장에서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그 중심에 2030세대와 여성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구 탄핵집회에도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집회를 주도하는 세대와 성별, 단체가 교체되는 듯한 느낌마저 줬다. 기존 남성, 50대 이상 86세대 중년, 노동조합·정당·시민단체 중심 집회에서 탈바꿈한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했다. 케이팝 콘서트와 삼성라이온즈파크 야구 응원석을 방불케하는 축제의 장이였다. 엄숙주의 틀을 깬 것이 이번 대구 탄핵집회의 특징이다. 

윤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후 딱 열번의 집회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과연 '집회의 민족'이다. 물론 대구경북 90개 시민사회노동단체·정당이 모인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대회'가 집회를 준비하고, 무대를 설치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정·법적 주최가 되었지만, 그 수고와는 별도로 수천명, 수만명이 모인 탄핵집회의 주인공은 역시나 시민이었다.

"TK 딸들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왔다" 피켓을 든 20대 대구 여성 시민(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TK 딸들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왔다" 피켓을 든 20대 대구 여성 시민(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TK 콘크리트 TK 딸들이 부순다' 대구 20대 여성이 집회에 들고 나온 피켓 문구는 집회 상징이 됐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여성들이 더 이상 불의한 정치세력을 두고 보지 않고 심판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그 탓에 대부분의 언론들은 2030 여성에 초점을 맞춘 분석 기사를 앞다퉈 내놨다. 그렇다면 50대 이상 중년, 기성세들은 이번 집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민주노총 노동운동가도 '응원봉' 들고, '케이팝' 부르며, 광장 '오픈런'

"옆으로 밀린 아재들, 처음엔 뻘쭘...청년세대 절실함·진지함 알게 돼"


이길우(56)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장은 항상 집회 앞자리에 앉았다. 노조 대표자로서 다른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앞줄이 지정석이다. 이번엔 달랐다. 회차가 쌓이며 연령이 낮아졌고 여성이 늘었다. 지정석은 사라졌다. 순서대로 광장을 채웠다. 

그 역시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 마자 줄을 서서 구매)을 해 앞자리에 앉았다. 동료인 민주노총대구본부 성민아 국장에게 난생처음 가수 응원봉도 빌렸다. 팔뚝질 대신 응원봉을 흔들었다. 케이팝 가사도 외워 따라불렀다. 어느 날은 초등학생이 옆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뻘쭘했지만 간단한 대화도 나누었다. 집회의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가 30여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이길우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장이 대구 시국대회에서 '미스터트롯'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송을 부르며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길우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장이 대구 시국대회에서 '미스터트롯'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송을 부르며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탄핵집회가 열린 국채보상로 중앙 무대 앞 자리가 아닌 옆 인도에 앉은 40~60대 중·장년층의 모습(2024.1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탄핵집회가 열린 국채보상로 중앙 무대 앞 자리가 아닌 옆 인도에 앉은 40~60대 중·장년층의 모습(2024.1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본부장은 "이전 집회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경험했다"며 "2030 청년세대와 함께 하고 싶어서 나부터 바뀌어야 겠구나 생각해 적극적으로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들에게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만 했는데, 이번에 계엄 사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세대가 학생과 청년, 특히 여성들이었다"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로 집회에 호응해준 게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옆에 잘 앉지 않으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서스럼없이 앉았다"며 "행진 때도 학생들이 현수막을 들고 앞장섰다"고 했다. 또 "오히려 우리(노조)가 틀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무대 발언권을 달라'는 정치인에게 과감히 '안된다'고 했다"며 "섭섭하겠지만 주인공은 정치인이 아니다. 청년세대가 많은 만큼 오로지 공정하게 진행했다. 탄핵집회에는 직급도, 유명세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몇회차 집회에서는 어떤 여학생이 어설프게 붉은 머리띠를 하고 있길래 '몇살이냐' 물어보니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충격 받았다"며 "항상 어리다고 생각해 가르칠 대상으로만 봤는데 그 또래끼리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해 집회에 왔더라. '아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고 말했다. 또 "과연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만큼 비상계엄에 대해 불안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절실함과 진지함이 있었던가? 적당주의가 있지 않았나?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탄핵집회가 열린 동성로 무대 중앙 앞에는 젊은 여성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자리를 차지했다. 응원봉과 광선검까지 들고 나와 집회에 알록달록한 색을 더했다.(2024.1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탄핵집회가 열린 동성로 무대 중앙 앞에는 젊은 여성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자리를 차지했다. 응원봉과 광선검까지 들고 나와 집회에 알록달록한 색을 더했다.(2024.1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의의 이름으로 탄핵을 뾰로롱"...한 시민이 대구 탄핵집회에 가져온 마법봉. 직접 '탄핵' 글자를 붙이고 자신만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의의 이름으로 탄핵을 뾰로롱"...한 시민이 대구 탄핵집회에 가져온 마법봉. 직접 '탄핵' 글자를 붙이고 자신만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열심히 2030에 동화돼 광장의 중앙을 사수(?)한 이 본부장과 달리, 대부분의 기성세대 조합원들은 옆자리로 밀려났다. 그는 "기분 좋은 밀려남"이라고 표현했다. 이 본부장은 "그렇게 많은 집회를 해도 시민들로부터 댓글 한줄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케이팝을 틀면 '이건 성적 비하가 있는 가사니까 가능하면 틀지 말아달라', '이런 이런 말은 부적절하니 안했으면 좋겠다' 등 바로 바로 반응이 SNS에 올라와서 신기했다"면서 "우리도 그들을 배우고, 그들도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를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아재들만의 집회가 아니다. 반면교사 삼아 운동의 수평성, 대중성을 더욱 확장해 접목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상에 분노·변화 갈망 2030 여성 '광장 주인'임을 외면 않고 거리로

다양한 정체성·민주시민 책임감 갖춰..."세대 혐오 그만, 꼰대짓 말자"


8년 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대구 촛불집회' 당시 사회를 봤던 남은주(52)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이번 윤석열 탄핵집회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을 들었다. 그는 "이 같은 변화가 이미 우리들의 곁에 성큼 다가와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이번 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남 전 대표는 자신을 '낀세대'라고 했다. 91학번인 그는 '열사정국' 당시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학생운동을 했다. 이전 선배들은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독재타도를 외치다 거리에서 쓰러져갔다. 숨어서 모이고, 생사를 넘나들며 집회하는 소위 '학생운동권'들의 집회 문화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집회 등을 거치면서 집회는 시민, 대중의 것으로 번졌다. 그리고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를 맞아 전환의 정점을 맞았다고 남 전 대표는 분석했다. 과거 운동권 집회 문화가 사실상 희미해지고, 케이팝 콘서트처럼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됐다는 것이다. 

그 원인 중 하나가 2030 여성이 집회 중심에 있는 것이다. '미투(Me Too.성폭력 고발)운동'과 '혜화역 시위(2018년 서울에서 있었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로 4만여명의 2030 여성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 이후 최근 몇년동안 젠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2030 여성들이(10대에서 40대까지)이 그 응집력을 갖고 이번에 다시 모였다는 것이다. 또 '덕질(아이돌 팬클럽) 문화'도 한몫했다. SNS 계정을 통해 '모임' 공지를 띄우고, 웹포스터를 만들고, 모금을 하고, 사흘 안에 재정 보고를 하고, 영상을 찍어 올리고. 덕질하는 아이돌 팬덤의 완벽한 실무 코스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이번 집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제5차 대구시국대회에서 20대 여성들이 '윤석열 퇴진', '윤석열 멸종기원', '윤석열 탄핵' 등 직접 만든 피켓과 함께 방탄소년단(BTS) 아미봉을 흔들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제5차 대구시국대회에서 20대 여성들이 '윤석열 퇴진', '윤석열 멸종기원', '윤석열 탄핵' 등 직접 만든 피켓과 함께 방탄소년단(BTS) 아미봉을 흔들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남 전 대표는 "광우병, 박근혜 집회 때 쌓였던 집회 공력이 하나 둘 빌드업돼 있다가, 갑작스런 계엄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집회에 나온 것"이라며 "2030 여성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SNS를 통해 집회 장소를 검색해서 직접 나왔다"고 했다. 이어 "어쨌든 최근 있었던 대부분의 시위에는 여성들이 광장 중심에 있었다"면서 "우리가 '젊은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 없어. 둔감할거야'라는 편견을 갖고 인식하지 못한 것이지 현실은 달랐다. 지난 대선 때 2030 여성 투표율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 둘 바꿔가던 집회 문화를 이번에 와전히 그들의 문화로 바꾼 것"이라며 "촛불을 들고 나와도 이제는 그들의 응원봉에 빛의 세기가 밀린다"고 했다. 

또 "최근 20년간 많은 집회 현장에서 불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를 아무리 틀어도 뒤에 앉은 1020 여성들은 아예 노래를 모르더라"며 "이제는 '대한민국 헌법 1조' 같은 민중가요나 투쟁가 뿐만 아니라 다만세도 틀어야 한다. '투쟁, 투쟁' 구호에서 라팍에서 외치던 야구장 구호로 바뀐 것이 그 신호"라고 봤다. 이어 "실제로 지난 7일 후 시국대회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여러 단체의 깃발이 대구 탄핵집회 광장에 휘날리고 있다.(2024.1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여러 단체의 깃발이 대구 탄핵집회 광장에 휘날리고 있다.(2024.1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면서 "조직의 거대하고 엄숙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깃발을 들고 나왔다"면서 "'화분 안죽이기 시민연합', '외향인모임', '내향인모임', '고양이집사연합', '집에 누워있기 연합', 'TK 장녀 연합' 등이 예시"라고 했다. 또 "집회 때 모두가 동일하게 드는 피켓(탄핵집회 때는 '윤석열 퇴진' 등) 대신 자신이 생각한 독특한 문구를 피켓에 적어 들기 시작했다"며 "8년 전 박근혜 탄핵 집회 때는 활동가들이 하루 2만여개 촛불을 종이컵에 뚫어 끼우고, 수만장 피켓을 옮기고 했는데 MZ(1980년대에서 2000년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부르는 말)들은 각자 들고 싶은 걸 가져오더니 이제는 누가 더 튀는 아이디어를 쓰는지 경쟁까지 하면서 금방 적응하더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에 대해서는 "팔뚝질에 익숙한 87체제 세대들은 (2030)세대 혐오를 하며 '우리가 사라지면 광장은 누가 지킬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 젊은 세대들은 민주주의가 위협 받을 때 자신들이 광장의 주인임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뛰쳐나왔다"면서 "특히 이미 세상에 분노해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응원봉을 갖고 거리로 즉각 뛰쳐나왔다.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민주시민으로서 자각하고 길러져 책임까지 다한 MZ들이 아니라 우리만 잘하면 된다. 가능하면 광장, 집회 문화에 꼰대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문제를 나의 것으로 인식하는 2030 여성들...캠퍼스→광장을 '축제'로

'시국선언'에도 가장 적극적..."권위주의 붕괴, 공동체 이끌 원동력이 될 것"     


김문주(56.'민주평등사회를 위한 대구경북교수연구자 연대회의 의장)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가 "만우절 풍경 같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전두환 폭압정치를 청년기에 직접 겪은 윗세대들은 계엄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고, 그 아래인 우리 세대는 그보다는 덜했다"며 "그래서인지 이번 계엄이 굉장히 이해할 수 없는 만우절 풍경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 같은 87학번들은 백골단을 피해 도망다니며 대학교 1학년 내내 거리에서 지냈다"면서 "이한열 열사의 죽음 무렵이어서 대학생들 죽음을 보았고,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대에 사명하지 못한 부채감을 늘 안고 있다"고 고백했다. 

익명의 한 20대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한 아이돌팀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들고 무대에 올라 "내란범 윤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익명의 한 20대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한 아이돌팀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들고 무대에 올라 "내란범 윤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2024.12.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탄핵하실분 급구합니다. 괴담전문대기업 ~미친 대통령 지금 출근하세요"
"탄핵하실분 급구합니다. 괴담전문대기업 ~미친 대통령 지금 출근하세요" 20대 여성이 직접 만든 피켓 전광등. 제9차 대구 탄핵집회에서 피켓을 흔들며 "탄핵"을 외쳤다.(2024.12.1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면서 "이번 탄핵집회는 최루탄이 날리고, '넥타이 부대'가 빌딩에서 그걸 닦으라고 휴지와 수건을 던져주고, 백골단을 피해 도망다니던 과거 풍경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특히 계엄 이후 2030 세대들이 대거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특징은 10명 중 6~7명은 2030 여성, 10대 여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세대인 2030 남성들의 참여율은 현격하게 떨어졌다"면서 "대구 집회를 면면히 보면 젊은 여성 또는 중년 여성, 그것도 아니면 중·장년 남성이 많이 차지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불려지는 노래와 구호가 확실히 과거 집회와는 사뭇 달라졌다"면서 "달라진 풍경을 집회 지도부가 잘 받아들인 면도 크다"고 봤다. 또 "예전 집회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이겨낼 수 있다는 건강한 분위기가 집회를 지배했다"면서 "마치 축제 같았다"고 말했다. 집회 풍경이 바뀐 주요 원인으로 2030 여성들의 대거 참여를 꼽았다. 

변화는 이미 캠퍼스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김 교수는 "2010년 중반 이후 등장한 여성 인권문제에 대해 특히 20대 여성 청년들은 익명의 피해자들에게 발생한 여성 대상 폭력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 안고 있었다"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젠더갈등, 성별 갈라치기로 인해 더 극심화되자 여학생들은 강의 시간 내 발표와 토론뿐만 아니라 이번 계엄 규탄 시국선언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청년명령, 윤석열 탄핵" 피켓을 든 여성...제10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중구 국채보상로 대로에 수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속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2024.1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청년명령, 윤석열 탄핵" 피켓을 든 여성...제10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중구 국채보상로 대로에 수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속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2024.12.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5차 대구시국대회 당일 동성로 광장에 휘날리는 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깃발(2024.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5차 대구시국대회 당일 동성로 광장에 휘날리는 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깃발(2024.1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또 "타자에게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미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젠더, 인권 문제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목소리 내는 것이 이 세대 특징"이라며 "정치, 사회, 문화가 다 연결된 '가부장 체제'를 포함해 계엄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 대한 반발심이 2030 여성에게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같은 세대 남성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면서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모든 권위에 대해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랑하며 저항한 과거 유럽 '68혁명'과 이번 집회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구 탄핵집회 때 '무지개(LGBTQIA 성소수자 상징)' 깃발이 계속 동성로 광장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국민의힘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를 뚫고 붕괴시키는 것이 이들 세대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그런 부분에서 "목소리 없는 자로 살아갈 것인가, 나의 목소리를 내며 자존이 있는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갈림길에서 2030 여성들은 후자를 택했다"며 "과거 노총과 정당 중심 '투쟁'이 아니다. 민주주의 '축제'처럼 광장에 선 원체험이 있는 이들이 우리 공동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아...앞으로 이 세대가 세상을 바꾸겠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