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MZ가 어둠 밝힌 '아이돌 응원봉'...대구 동성로 '윤석열 탄핵' 촛불 현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박주희(전 한겨레 기자)

‘이 나라 국민하기 참 피곤하다’ 생각하며 배낭을 꺼냈다. 4일 집회 때 많이 떨었던 터라 장갑이며 무릎담요까지 챙겼다. 8년 전 쓰던 방석 매트도 챙겼다. 가결 가능성이 적었으니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5시를 조금 넘겨 동성로에 도착했는데 앉을 자리는 물론이고 설 자리조차 잡기가 쉽지 않았다. 대구에서 집회 취재를 해 본 경험에다 드문드문 참여해 본 감으로 ‘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싶었다. 4일도 꽤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무대 바로 앞에 앉았던 것에 비하면 몇 배가 모인 게 아닐까 싶었다. 

같이 간 남편, 친구와 함께 겨우 자리를 잡고 섰는데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번에도 몇몇이 반짝이는 봉을 들고 있길래 참 이쁘다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그런 콘서트 봉들이 꽤 많이 반짝이고 있었다. 관심 있게 들여다보니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봉을 든 얼굴도, 그 옆 또 그 옆도 모두 10대, 20대들이었다. 여성들이 많았다. 긴 머리에 후드를 쓰고 봉을 반짝이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구호와 함성이 하이톤으로 집회 인파를 따라 메아리쳤다.

단체 깃발 수십 개가 펄럭였지만, 그 깃발 아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앳된 얼굴의 청소년, 청년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4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샤이니 팬클럽 샤월드, 빅뱅 팬클럽 VIP, 플레이브 팬클럽 플리 등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나와 촛불 대신 흔들며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4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샤이니 팬클럽 샤월드, 빅뱅 팬클럽 VIP, 플레이브 팬클럽 플리 등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나와 촛불 대신 흔들며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 구호를 외치고있다. (2024 12 7) 사진 /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동성로 촛불집회, 가장 앞줄에 2030대 여성들이 앉아
대구 동성로 촛불집회, 가장 앞줄에 2030대 여성들이 앉아 "내란범죄자 윤석열을 체포하라" 피켓을 흔들고 있다. / (2024 12 7) 사진 /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국대회 중간에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아침이슬> 같은 노래를 부를 때면 휴대폰을 꺼내 가사를 찾아보며 더듬더듬 따라 불렀다. 오른손 주먹을 치켜들며 각도 있게 팔을 올리는 머리 희끗한 어른들을 따라 어설프게 주먹을 올렸다 내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 동작이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그냥 구호만 따라 외치는 친구들도 많았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국회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지만, 이들이 서울 집회에 참석한 친구들의 SNS를 통해 전해주는 손가락 뉴스가 훨씬 생생하고 빨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돌아온다, 퇴장한다, 김건희 특검법 또 부결, 다시 국힘 일부 의원들이 돌아온다, 정족수 미달...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에 탄식과 환호를 반복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국힘 대구시당 당사를 향해 거리 행진을 했다. 준비해 온 무릎담요를 다리에 야무지게 두르고 난생처음 거리 행진에 나선 듯한 친구들 틈에서 함께 걸었다. 처음에는 1차로 그다음 2차로 해서 4차로까지 사람들로 메워졌다. 뒤를 돌아봐도 행렬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참석인원이 5000명에서 1만명, 2만명이라는 말이 들렸다.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구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개사한 노래는 몸을 흔들며 신나게 따라불렀다. ‘서울에는 풍물패도 와서 신난다’며 부러워했다. 아이돌이나 요즘 음악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순간만큼은 세대를 아우르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 반대는 내란 동참, 국민의힘 해체하라" 20대 청년이 촛불과 함께 피켓을 들고 2.28공원 앞 대로를 행진하고 있다.(202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탄핵 반대는 내란 동참, 국민의힘 해체하라" 20대 청년이 촛불과 함께 피켓을 들고 2.28공원 앞 대로를 행진하고 있다.(202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동성로에서 국민의힘 대구시당까지 행진하는 시민들...10대, 20대와 여성들이 특히 많았다. (2024.12.7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 / 사진. 독자 김보람
대구 동성로에서 국민의힘 대구시당까지 행진하는 시민들...10대, 20대와 여성들이 특히 많았다. (2024.12.7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 / 사진. 독자 김보람

차를 타고 가면서 시위 행렬을 반기고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따라하는 시민들, 횡단보도에서 박수를 쳐주는 시민들도 있었다. 물론 자동차 경적을 길게 울리며 욕을 퍼붓는 시민들도 많았지만 그러려니 하며 행렬은 이어졌다.

옆에서 걷게 된 친구가 마치 해리포터에나 나올법한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같은 문양의 망토까지 걸치고 나왔기에 ‘어느 단체냐’고 물었다. “OO중학교 학생인데 그냥 집에 있던 거 들고 나왔다”고 했다. 무거운 깃발을 친구와 번갈아 들고 열심히 구호를 따라 외치며 당사까지 와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5시간째 집회가 계속되어 슬슬 다리도 아프고 지쳐갈 때쯤 옆에 섰던 학생이 가방에서 사탕이며 초콜릿을 꺼내 주변 사람들에게 건넸다. 반가워하며 낯모르는 이들끼리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당사 앞에서 이어진 시민들의 자유발언은 어떤 결연한 연설보다 울림이 컸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됐다. 환자복을 입고 연단에 오른 한 학생은 “너무 오고 싶어서 외출증 끊어서 택시 타고 달려왔다. 전혀 춥지 않다. 탄핵될 때까지 하자”며 웃음으로 결의를 다졌다. 

"윤석열 퇴진", "내란 동참, 국민의힘 해체"...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 선 대구시민들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대의 반역자로 기억될 것"...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시민들(2024.12.7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 / 사진. 독자 김보람
"시대의 반역자로 기억될 것"...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시민들(2024.12.7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 / 사진. 독자 김보람

3일 밤, 중학교 3학년 아들 전화를 받고 계엄발표를 처음 알았다. “엄마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비상계엄을 발표했어요.” 마침 그날 학교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왔다고 해서 잠시 광주 얘기를 나눴었다. 영화를 보고 ‘계엄’이라는 말을 알게 돼 빨리 들어오라고 장난을 치나 했다. 포털 화면을 보고서야 믿었다.

그 이후 분노와 울분으로 괴로운 며칠을 보냈다. 그 감정들을 다 뜯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가장 큰 줄기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민주 공동체와 평화로운 일상을 앗아간 데 대한 분노’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또 ‘계엄’ ‘공수부대 출동’도 모자라 ‘국민을 처단’하는 세상을 경험하게 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4차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2024.12.7)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4차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2024.12.7)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어제 집회에서 청소년, 청년들을 보면서 희망이 분노를 눌렀다. ‘MZ의 축제장 같은 시위’라는 외신들의 분석, 언론들마다 앞다퉈 쏟아지는 관련 기사를 보며 가슴이 벅차다. 평소에 이 세대를 못 미더워했던 마음도 가셨다. 사교육에 찌들어 이기적인 아이들로 키웠다는 기성세대의 반성 섞인 단골 멘트를 그만해도 되겠다. 탄핵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란죄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끝없는 불안한 가정도 그만두기로 했다. MZ가 이끄는 역사의 물결을 믿고 싶어졌다. 그래도 될 것 같다.

밤 10시가 넘어 해산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콘서트 봉을 찾아냈다. 8년 전 쓰던 전기초를 꺼내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다행히 둘 다 불이 반짝반짝 들어온다. 다음 집회 때 나도 후드를 뒤집어쓰고 그 친구들 틈에 끼어볼까 한다. 

[기고] 박주희 / 전 한겨레 기자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