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에 칼럼을 써온 나는 7개월 전인 지난 5월 <윤석열, 검사시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제하의 칼럼을 쓰면서 그가 연구대상이 될 것같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를 잘해도 연구대상이지만 못해도 연구대상이 된다. 윤석열도 연구대상이 될 것같다. 아직은 많이 남아 있지만 못한 쪽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이렇게 시작한 칼럼은 ‘특검을 하자면 해야한다. 의대생 증원문제도 …요구대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헌법개정을 하자면 해야한다. 내가 대통령 아닌 듯이 해야 산다.’고 주문했다. 나는 직선으로 대통령이 된 그가 앞으로 잘하기를 바라면서 칼럼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12.3 계엄·내란 사태를 겪은 지금 윤석열은 중요 연구대상이 돼버렸다. 연구할 분야도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됐다. 12월 3일밤 나는 MBC저녁뉴스를 보고 10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7시쯤 일어나 TV를 켰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무슨 사건인가. 나는 차츰 여의도에서 밤을 새운 시민들, 야당 의원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국민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알게 되었다. 시시각각 하루하루 TV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혼자는 오래 기도(企圖)했는지 몰라도 느닷없이, 사유의 설득력도 전혀 없는,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얼토당토않는, 시대착오적인 계엄령 발동! 이런 윤석열과 동조 동참한 국방장관 방첩사령관 등과 경찰청장 등 군경들! 국회와 중앙선관위 점거 획책! 민주당 등 야권의 거센 반발! 몰려온 시민들! 세계가 놀란 시민들의 참여, 윤석열의 즉각적인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함성! 그런데도 정신 못차리고 정권을 인수받는 양 실속만 챙기려는 어정쩡한 한동훈, 윤석열 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 오히려 두둔해온 노추(老醜) 한덕수, 당정 두 사람의 기회주의적인 꼼수! 여당 퇴장으로 불성립된 탄핵 투표! 전국적으로 내란죄 공범자로 규정된 국민의힘 매도 물살! 검찰 경찰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경쟁 양상! 탄핵으로 향하는 과정, 추종자들의 면모와 행태! ….
알고보니 무서운 인물, 위험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아찔하고 끔찍한 계엄령 발동의 원인과 경과와 앞으로 있을 결과는 무궁무진한 연구소재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는 물론 윤석열의 성장과정 등도 연구대상으로 충분해졌다. 초중고는 어떻게 보냈는지, 어디에서 문제가 대두됐는지. 대학은, 대학생활은, 당시 국내 정치상황은? 교양은? 독서는? 독서량은? 고시공부는? 군문제는? 결혼은? 검사시절은? 이 또한 파생되는 심리적 정신적 연구문제가 무궁무진할 것같다.
신망이 두텁다고 거짓주장을 하며 KBS사장을 갈아치우며 공영방송 KBS를 망쳐버린 그의 언론관도 연구과제이다. 그리고 당선까지 영향을 준 레토릭(이른바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 “누구에게도 부채가 없다. 저를 불러주시고 키워주신 국민 여러분께만 부채가 있다.” 따위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인가?”,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다.” 따위)의 생성의 본질과 진정성과 실제와 허구에 대한 연구 등등 한정이 없다. 윤석열은 이렇게도 많은 연구문제를 내놓으며 생각하게 한다.
며칠 새 TV와 인터넷에 집중하면서 그의 행각을 풀이해 본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을 테지만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그가 왜 그 반대인 불공정과 몰상식의 화신이 되었을까? 무슨 이유로? 목적은? 김건희? 명태균? 국민 직선의 민주주의 국가의 현역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사례가 있는가. 무엇이 부족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무엇을 장악하려 했으며, 장악이 된다고 믿은 근거는 무엇인가. 화두는 이어진다. 서울 여의도에 모인 촛불 시민들을 보면서, 대구 동성로에 모인 대구시민들의 또렷한 눈망울을 보면서, 전국적인 윤석열 탄핵 시위 함성을 들으면서, 글쓰는 사람으로서 간간이 메모를 하며 생각을 이어간다.
윤석열, 이렇게 ‘위험한 짐승’(사실 짐승에게 미안한 표현이다)인 줄 몰랐는데 그는 솔직하지 못했다. 자신의 성향을 이념적 스펙트럼상 극우(極右)라고 인식하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밝혔어야 했다. 그러한 그의 추종자들도,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 장관 등 정부 요직의 각료들도 정치적인 이해득실, 자신의 안위만 챙기지 말고 그의 이념적 성향의 위험성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한 점을 지적(간언)해 줬어야 했다. 특히 서울대 선배이자 하버드대 경제학박사이자 나이도 많고 각료 경험도 많은 국무총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국력을 융성하게 할 도리와 역할을 다 했어야 하나, 반대로 직무를 유기하고 외면한 그는 마지막 국무회의마저 소극적 방관자적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제 ‘내란의 힘’ ‘국민의 적’ ‘내란공범당’으로 패러디되고 있다)의 원내대표 등 의원들도 그에게 그러했어야 했다. 극단적인 극우는 자체의 잘잘못을 떠나 나라 전체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으로선 가져서는 안되는 인식이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보수성향이더라도 진보성향쪽의 사람들을 이해하려하고 국정에 동참토록 해야 하며, 반대로 진보성향이더라도 대통령이 되면 보수성향쪽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국정의 동반자로 대우하며 국가와 세계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윤석열, 그는 독서량이 없었을 것이다. 초중고 때 배운 교과서 중심의 사고, 대학 때 고시중심의 공부가 대부분이었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고민하면서 관련 서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때 만약 고민하면서 역사와 사회를 내다보는 안목을 넓히는 독서를 했다면, 그같은 경직된 사고만이 남아 있을 턱이 없었을 것이다. 논어 위정편에 ‘학이불사 즉망, 사이불학 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문구가 나온다. ‘배우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아둔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학이사, 사이학(學而思 思而學)’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의 위태로움 속에는 이러한 게 깔려있지 않나 싶다.
윤석열, 그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 그는 ‘한 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조언을 해주면 화부터 낸다고 했다. 자신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자신보다 뛰어난 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평생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논문을 써온 대학의 교수들에게 겸손한 자세로 자문을 청한다면 그에게 나라에 진정 도움되는 핵심적인 방안을 거침없이 알려줄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이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계엄령 발표문을 봐도 40-50년 전인 70-80년대 군부독재시기의 문구가 들어있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이니 ‘패악질을 일삼는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이니 하며 이들을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문구는 민주화 이후 입력이 전혀 안돼 있는 듯 시대에 뒤떨어진 천박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다. 아무 말도 듣지 않고(이 말은 자신에게 솔깃한 말만 듣는다는 의미 포함), 자문을 구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사고행각을 해온 윤석열은 자신이 평생을 다루어온 법에 따라 처리돼야 함은 물론이다. 누구보다도 법(法)만은 그가 속속들이 잘 알 것 아닌가. 형법 제87조(내란)에는 내란죄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돼있다. 모의 참여 지휘, 중요 임무 종사자도 사형 무기 5년이상 징역 또는 금고에, 부화수행하거나 단순 관여한 자 또한 5년이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이처럼 국헌을 문란케 하는 내란죄는 매우 무거운 범죄이다.
정치학자들도 헌법학자들도 해답은 탄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그런 범법자인 윤석열을 탄핵 찬성하지도 않고 투표를 거부하고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 또한 비난 매도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 대구경북 25명 국회의원 모두가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들 국힘 의원들은 이 추운 날씨에 광장에 나와 탄핵심판을 촉구하며 울부짖는 시민의 항거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눈 감고 귀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내란죄 공범’이라는 현수막이 네거리 곳곳에 게시돼 있음을 그들도 알 것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이를 간과하지 않을 만큼 위대함을 세계가 알고 있다.
[유영철 칼럼 39]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