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직접 뽑은 대통령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도 아니고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하여 집권한 독재도 아닌, 우리 국민이 뜻을 모아 뽑아준 것임을 윤석열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었다.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더하고 싶어도 더 할 수가 없는, 상식적이고 정상적이라면 5년을 채우고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 알았을 것이었다.
대통령은 임기 동안 그야말로 자신을 뽑아주었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직선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어 중의를 모아 마련한 헌법을 무엇보다 준수해야 한다. 여야 구분없이 국민의 선량이 모인, 민주주의가 정착된 의회를 존중해야 한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도 안된다. 초·중·고 동문이라고 해서, 심복검사라고 해서, 내맘에 드는 성향이라고 해서 요직에 앉히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조심하고 신중하고 마음을 비우고, 그래서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불편부당함이 없도록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퇴임후에도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으면 더욱 좋다.
그런데 윤석열이, 우리 일반인은 이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검사에서 2016년 탄핵정국에서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 → 문재인 정부하에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한 다음 임기 3개월 남기고 하차 → 초년생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가 바로 야권의 강력한 대권주자로 → 드디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으며, 마침내 2022년 20대 대선 때 투표자의 48.56%인 1천639만여 표를 얻어 당당히 당선된 대통령 윤석열이 이렇게 추락할 줄은, 아니 이렇게 타락할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 그는 자업자득에 옴짝달싹 못하고 우리 안에 갇힌 신세, 임기도 못 채우고 2년여 만에 쫓겨날 운명이 돼버렸다. 평생 법을 다룬 사람이 법을 이탈하여 그토록 멀리 가버린 윤석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이 잘못되었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잘못되었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잘못되었나? 무엇이 잘못되었나? 잘못은 누구에게 있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직선 대통령이 법에 따라 탄핵을 받아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엇이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잘못되었는지 가리는 것도 후세를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터이다.
당선 당시를 찾아보니, 윤석열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당선인 신분으로 법조인답게 다음과 같은 첫 메시지를 자신있게 밝힌 것으로 기록돼 있다.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민생을 살피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국격과 책임과 자유의 연대를 다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KTV국민방송 2022.03.10.)
윤석열이 검사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대통령이 되고나서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명태균 사건 · 김건희 특검 촉구 시위 · 시국선언 · 탄핵촉구 집회 속에서 지난 12월3일 갑작스레 선포한 비상계엄과 국회의 탄핵에 이르기까지, 그가 했던 말을 수집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는 언행일치 여부나 진정성의 유무보다 그때그때 사실과 다른 말을 했거나 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사례로 분류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제 윤석열의 거짓말이라는 항목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이번에 아찔했던 12.3비상계엄 사태에서만 해도 윤석열은 ‘소수병력만 투입했다’,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려 했다’, ‘국회 관계자의 국회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사병 투입 없었다. 부사관 이상 정예병력만 이동시켰다’, ‘계엄군에 실탄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은 지난 2022년 5월 보선전에서 명태균에게 “…김영선 해주라 했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 사실이 명태균의 휴대전화 통화에 의해 드러났고 검찰이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데도 “그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항간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탄핵 국면에서도 그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후 행동은 그게 아니었다.
지난 3일 오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을 체포하기 위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도착해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으나 대통령 경호처가 막는 바람에 5시간 30분 문앞에 대기하다 집행을 중지하고 철수했다. 공수처가 법원에 청구하여 발부받은 체포영장을 갖고 집행에 나섰는데도 출석요구를 거부해온 윤석열은 또 정면으로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체포영장 집행 관련 업무를 경찰에 일임하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윤석열이 이렇게도 헌법을 외면하는 길로 갈 줄은 몰랐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비롯해 전례 없는 기록을 이렇게도 많이 세울 줄도 몰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여 요즘 진짜 드라마를 보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윤석열이 관저에서 버티면서 기록을 경신하더라도 갈 길은 외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내놓은 길이기에 갈 길은 그 길밖에 없다. 이제 남은 건 탄핵이다. 파면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성향이 진보이건 보수이건 관계없이 갈등없이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냐하면 이미 탄핵요건은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절차와 비상계엄 선포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만 해도 헌법과 계엄법을 위배한 것이고, 법원 발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만 해도 이미 헌법 수호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며, 이로 인해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왔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듯 눈을 감고 귀를 씻고 평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어느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왜 이토록 갈 데까지 가게 됐나하는 서글픔은 남는다. 윤석열의 친한 친구의 아버지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어느 방송(JTBC 2024.12.24.)과의 인터뷰에서 한탄조로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부친과도 친교가 깊은데 그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이 뭐 모르고 자라서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에 집착하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을 잘 얘기해줄 사람은 철우아버지 밖에 없다. 문제가 있으면 꼭 좀 충고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돌아가셨다고 소개하며 가슴아파했다.(서울신문 2024.12.25. 보도) 지금 말하면 뭐하나.
윤석열은 최고권력의 현직 대통령이면서도 종북좌파의 유령에, 부정선거의 유령에 매몰돼 망상을 쫓다가 그만 대통령 신분을 망각한 채 총부리를 국회에 선관위에 언론에 들이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말았던 것 같다. 국회의장 우원식, 야당대표 이재명, 전 여당대표 한동훈을 우선 체포하라는 것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위 강성지지자인 ‘애국시민’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대선 때 자신을 지지한 1천639만여명의 의사는 왜 물어보지 않았는지. 1972년 10월유신이나 1979년 12.12쿠데타를 꿈꾸었는가. 그런 환상을 거두어 줄 옳은 국무위원조차 하나 없었나?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 간언할 정신이 바른 측근조차 하나 없었나?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은 지금 뭘하고 있나? 두둔 모드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언론은, 기자는 그때 무엇을 했나? 검증은 왜 못했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나?
우리는 우리 손으로 그런 대통령을 뽑았지만 뽑은 우리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다시 대선에 나타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차제에 사리사욕 당리당략의 이상한 정치꾼, 삐딱한 법꾸라지들, 1960·70년대에 머물고 있는 철지난 사고행각들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유영철 칼럼 40]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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