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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래한 '빨갱이'의 시대, '빨갱이'에서 계몽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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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칼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한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그간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은 권력자들이 파괴한 헌법적 가치를 시민들이 나서서 복원하는 대항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초기 대항적 성격을 띠던 운동이 국민간의 대립적 양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사건의 성격을 바꾸고 국면 교란에 능란한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있고, 극우와 결합한 기독교 세력이 이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기독교 보수 세력의 전경화(前景化)는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윤석열이 국정의 곳곳에 배치한 극우 인사들, 그리고 유튜버들과 더불어 자신들의 정치적 이슈와 욕망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가히 정치와 결합한 종교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바, 특히 일신교(一神敎)가 드러내는 극단주의, 이에 따른 반이성과 악마화는 현 사태의 해소 가능성을 말소하는 부정적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짧은 글에서 시국에 대한 분석은 난망하지만, 현 국면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현상 하나를 꼽자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2030세대의 발언이나 구호에 ‘빨갱이’와 관련된 표현이 거침없이, 그리고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반동의 지점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우리 청년들이 사용하는 ‘빨갱이’라는 말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빨갱이'의 역사적 기원과 어의(語義)의 변화

주지하는 것처럼, ‘빨갱이’의 어원은 일제강점기 유격대를 지칭하던 ‘빨치산(파르티잔)’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러시아의 붉은 군대, 혹은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빨간색에서 유래했다는 기원설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실정적(實定的)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실제로 ‘아카(あか, 빨강)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주도하던 국회의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국회 프락치사건에 엮어 구속시킴으로써, 그리고 이후 제주4.3과 여순을 통과하며 빨갱이 몰이는 확산된다.

'박금순 여순사건 기록화전-여순의 삶' 전시회(2024.12~17, 대구문화예술회관). 여수 시민들이 '여수군 인민대회'에 모여 "친일파 척결", "쌀 배급" 등을 외치는 모습 / 전시회 사진 촬영.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박금순 여순사건 기록화전-여순의 삶' 전시회(2024.12~17, 대구문화예술회관). 여수 시민들이 '여수군 인민대회'에 모여 "친일파 척결", "쌀 배급" 등을 외치는 모습 / 전시회 사진 촬영.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1920년대 한국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빨갱이’는 대체로 사회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인사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지만, 해방기를 거치면서 극단적인 좌익 일부를, 그리고 정부 수립을 전후로 한 시기를 지나며 좌익 전체를 낙인찍는 멸칭(蔑稱)으로 사용된다. 

불원한 장래에 사어사전(死語辭典)이 편찬이 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하였을 것이었었다.

1948년 10월 《문장》 속간호에 발표된 채만식의 「도야지」의 일부이다. 해방기에 사어(死語)가 될 것이라고 보았던 ‘빨갱이’는 현재와 전혀 다르게 인식, 통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로, 제주4.3과 여순,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과하며 ‘빨갱이’는 반공체제를 강화하는, 결과적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핵심기제로 활용된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고 그 맞은편에 북한이 형식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상대개념으로 설정하여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이적(利敵) 세력으로, 그리고 ‘빨갱이’로 몰아감으로써 자신들의 권력 연장의 가장 유용한 기제로써 사용하였다. 

'빨갱이' 몰이, 혐오(嫌惡)와 광기(狂氣)의 정치학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역사학자 김득중은 『빨갱이의 탄생』(2009)에서 여순사건과 제주4.3을 대한민국 반공주의의 기원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권력에 저해되는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위 죽여도 되는 사람을 만드는 낙인으로 ‘빨갱이’가 활용되었으며, ‘빨갱이’는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임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로 호명되었다고 정리한다.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에 의해 사라진 수십만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반백년이 넘도록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는커녕 국가기관과 공동체의 사법적·사적 폭력의 제물이 되었다. 

빨갱이-낙인찍기와 반공주의를 통한 권력체제의 공고화와 연장은 이승만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까지 지속된 독재 세력의 가장 유용하면서도 강력한 기제였다. 정권의 위기 국면마다 만들어진 대규모의 간첩단 사건과 남북의 위기 상황은 독재 권력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훌륭한 밥이었다. 대한민국의 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은 필연적으로 남북의 평화체제의 도래와 정착을 가장 혐오하고 극렬히 거부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반민족 세력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부패한 독재 권력을 붕괴시킨 혁명의 시기마다 민중들이 남북의 교류와 평화 체제의 정착을 요청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독재는 가고 평화여 오라."

'좌경', '용공'의 시대를 지나 다시 등장한 '빨갱이'의 창궐(猖獗)

독재자 박정희의 사망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에는 ‘빨갱이’라는 호명이 ‘좌경’과 ‘용공’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매카시즘의 잔재인 ‘빨갱이’라는 말을 공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던지, 이전에 잘 쓰이지 않던 ‘좌경 세력’ 혹은 ‘용공 분자’라는 단어가 각종 매체에서 사용되었다. ‘용공(容共)’은 공산주의를 인정하거나 용인한다는 뜻의 단어로서, 정권을 비판하거나 반정부 시위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주로 정부기관이나 이를 받아쓴 언론매체에서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로부터 30년이 지나고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부문에서 중요한 국가로 성장한 2024년에, 1979년 한강을 건너 중앙청과 육본, 국방부를 장악한 12.12 쿠데타 세력이 선포했던 포고문을 다시 들고 나온 비상계엄의 사태를, 다시 우리 공동체가 마주하고 있다. 수십 년의 시간을 뒤로 돌리는 역사적 퇴행과 백래시(backlash) 속에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빨갱이’ 호명이 창궐하고 있다.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제5회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한 시민이 "종북사조직 판사 척결" 피켓을 들고 있다.(2025.2.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제5회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한 시민이 "종북사조직 판사 척결" 피켓을 들고 있다.(2025.2.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어디 빨갱이 뿐인가, 종북과 친중, 반국가세력, 그리고 백골단, 반공청년당까지... 폭력과 테러를 부추기고 헌법기관과 판사들을 향한 협박의 언어들이 난무하는 와중, 그 한켠에 대한민국의 청년들도 자리하고 있다. 탄핵 반대 세력이 쏟아내고 있는 언어와 행동 속에서 정부 수립 무렵, 제주4.3과 여순에서 일어났던 매카시적 광기(狂氣)를 보게 된다. 

2025년 우리의 청년들의 입에서 ‘빨갱이를 척결하라’는 말과 구호를 듣게 되다니, 이 현실이 참으로 생경하다. 우리의 교육을 재삼 돌아보게 된다.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일개 학원 강사의 말이 저토록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우리의 시민교육과 역사교육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근본부터 점검할 일이다. 정치인들과 공적 매체들이 늘 중(重)하다고 떠드는 경제와 민생의 한켠에, 우리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내는, 참으로 엄중한 교육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반동(反動)의 시대, 다시 '빨갱이'를 생각한다

다시 도래한 ‘빨갱이’의 시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빨갱이’ 몰이가 본격화하기 전,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빨갱이’ 호명이 유행하던 무렵에 발표된 한 신문의 칼럼은 ‘빨갱이’에 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빨갱이’를 누가, 그리고 왜 호명하는가. 무려 77년 전의 글이 우리를 계몽한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빨갱이’라는 말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요사이 유행되는 말 중에 「빨갱이」란 말이 퍽 유행된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도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도 있고 토마토나 고추모양으로 안팎 속이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 것은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거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자들이 민족 분열을 시키는 건국범죄자인 것이다.”

- 《독립신보》 칼럼 「거리」(1947.9.12.)중에서

 

[김문주 칼럼 13]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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