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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을 찍고 수모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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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대구에 살면서 대선후보 이재명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좀 이상한, 비정상적인 사람의 성향으로 분류된다. 6.3대선 1주쯤 지나서 바로 위 누님과 전화할 일이 생겨 오랜만에 전화를 한 끝에 “이번 선거 누구 찍었노?”라고 물어왔다. 분이 안 풀리는 기색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사실대로 “1번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번에 “니, 미쳤나?”라는 고함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애엄마(집사람)는 누굴 찍었는지 물었다. “내하고 같다.”고 하자 말을 잇지 못했다. 좀 가라앉힌 다음 서울 사는 큰아들 내외와 대구 사는 둘째아들도 궁금한 듯 물어왔으나 걔들한테 한번도 누굴 찍어라고 한 적도, 알아본 적도 없기에 모른다고 하고는 ‘끝난 선거’라며 좀 진정시킨 뒤 통화를 끝냈다. 누님은 초등교장 출신으로 내하고 친하고 말이 통하는 편인데도 이렇게 꽉 막혀 있었다. 

 내 주위는 온통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초등동기, 중고동기, 그 외 서클모임 등 단톡방에는 계엄령을 발동했더라도 윤 탄핵 반대, 윤 파면 반대를 노골적으로 내세웠다. 교장 출신, 대학교수, 의사, 한의사, 회사 사장 등 내노라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이해심·배려심 많은 동기 선·후배이지만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생각이나 견해가 내하고 달랐다. (물론 대구이지만 윤 탄핵과 파면을, 이재명 지지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 

 대선 두어달 전 6-7명이 자주 보는 어떤 공적인 모임이었다. 배려 차원에서 정치 얘기는 잘 하지 않는데 그날따라 막간에 정치 얘기가 나오게 됐다. 윤석열을 두둔하고 이재명을 매도하는 게 주였다. 듣다 듣다 너무한다 싶어서 내가 물었다. “계엄령을 발동해 국회를 해산하려 한, 탄핵 윤석열을 파면 안 시키면, 원대 복귀시키면 이 나라가 뭐가 되겠어요? 기강이 서겠습니까? 파면돼야 마땅하고 헌재도 그렇게 할 겁니다.”(헌재도 4월 4일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윤의 파면을 결정했다.)

 60일 이내 조기대선이 확정된 뒤에도 대구에서는 김문수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반면 이재명은 ‘좌빨! 전과4범 범죄자!’로 그전부터 틀지어졌다. ‘지금도 여러 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당선되더라도 다시 치러야 하므로 절대 찍어선 안된다’고 프레이밍(Framing)돼 있었다.

"대구도 제발 쫌 바뀌자"...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동대구역 광장 유세 당시 지지자들의 손푯말(2025.6.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도 제발 쫌 바뀌자"...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동대구역 광장 유세 당시 지지자들의 손푯말(2025.6.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왜 이번에 임기도 못 채우고 조기대선을 하게 됐는지, 이번 대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이뤄져야 바람직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국내는 물론이지만 비상한 관심을 쏟는 해외 여러나라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어떤 각오로 어떤 결과의 대선을 치러야 할 것인지 숙고하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국가의 권위를 올리는 대선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동기들 단톡방은 특정후보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으로 연일 도배되고 있었다. 교장 출신의 한 친구는 카톡방에 “죽어도 이재명은 안찍는다!”는 ‘우리집 가훈’을 소개했다.    

 대선 1주 전쯤 친구들과 모임을 한 뒤, 가까운 아파트에 사는 한 친구와 같이 30-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 친구가 나에게 “이번 대선에 누가 될 것같나?”라고 조용히 물었다. 나는 그래도 속으로 신문기자 출신인 나를 좀은 인정해주는 줄 알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엔 당연히 이재명이 된다! 안 돼선 안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 친구는 몸가짐을 바로 하면서 “안 그렇다! 김문수가 되는 게 확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때 이미 전국적인 여론은 이재명의 당선으로 기울어졌음에도 대구는 그걸 외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 주 6.3대선이었다.   

 선거 결과 이재명은 49.42%, 김문수는 41.15%, 표차는 8.27%포인트였다. 대구는 이재명 23.22% 김문수 67.62%였다(경북은 이재명 25.52% 김문수 66.87%). 그래도 대구에도 10명중 2.3명은 이재명을 찍었다! 찍으면서, 찍고나서도 수모는 당했을지라도!   

 만약 서울에, 경기에, 인천에, 대전에, 세종에, 충남에, 충북에 살았더라면 오히려 이재명을 찍은 게 더 힘주는 일이 됐을 것같다. 부산에, 경남에, 울산에, 강원에 살았더라도 조금도 혐오스런 눈길을 받지 않았을 것같다. 광주에, 전남에, 전북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제주(이재명 54.8% 김문수 34.8%)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제주는 경기, 인천, 세종과 비슷한 지지율)

<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  >

자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자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왜 전국적으로 다른 지역은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으로 또는 과반이상으로 당선될 정도로 투표행위를 했는데 대구·경북은 20%선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했을까. 섬처럼 고립돼 버렸을까. 정기적으로 대선후보 지지율을 여론조사로 발표했는데도, 그것을 참고하면 전국적인 투표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 데도 대구·경북은 끝까지 김문수가 되는 줄 알고 있었을까. 쿠데타, 계엄령, 내란획책, 내란동조, 탄핵, 파면, 조기대선과 같은 일련의 사건의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원인제공자의 동조자가 바뀌는 정권을 다시 또 계승해야 한다는 게 바른 논증인가.         

 대구·경북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 특정언론, 특정종교 지도자, 그리고 시민들 모두 이번 정치사태를 두고 한번 자성해 봄직하다. 어떻게 했길래 시민들의 의식도 이렇게 됐는지. 최근에 어느 신문의 기사를 보다가 마지막 댓글을 접했다. 하나만 인용하면 이러하다. ‘oooo가 언론이면 우리집 화장실은 성당이다.’

 댓글을 단 사람은 이 언론을 이렇게 정의하는구나하는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언론도 바른 언론이 있지만 바르지 못한 언론도 있다. 바르지 못한 언론을 건성으로 바른 언론인줄 알고 아무 비판 없이 대한다면 그 또한 언론이 유발한 공해의 피해를 입는 게 된다. 

 우리에게 가짜뉴스가 밀려와도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감별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가짜뉴스 살포의 의도대로 우리 스스로가 피해를 입게됨은 자명하다. 

 나도 한 30년 신문기자를 했고 퇴직후 언론학을 공부한 언론학도이지만 주위의 누님부터 배려심 많고 술 잘 사는 친구를 포함해 아는 분들이 많지만 대부분 이재명을 찍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들도 알고 보면 그들의 잘못이 아니듯 나도 내 잘못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이재명 정부의 기적적인 성공을 빈다.

[유영철 칼럼 43]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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